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절판


그때 거기서 나는, 총살되지 않으려면, 교수형을 당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견디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더 이상 나는 무관심에 빠져 허탈해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나는 외모를 사람답게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은 좀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다. 내가 새로이 발견한 정신적 저항력과 내 몸에 걸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누더기와 무슨 관계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묘하게도 그것들은 관계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수용소 생활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주위를 살폈다. 그 결과 어떤 여자든 세수를 할 기회가 있는데도 하지 않거나, 신발 끈 매는 것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생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123쪽

우리들이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우리들의 불꽃같은 눈동자들이었다. -135쪽

잠을 깨는 순간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139쪽

살아남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요행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이 성취해야 하는 일이었다.-219~220쪽

신은 집단 강제수용소를 떠나버렸다. 정말 기적과 같이 보이는 일이지만, 거기에서 일어난 일은 인간의 정신과 의지로 성취한 일이었다. -229쪽

어떤 형태를 취하건 음식물을 나눠 먹는 일은 인간성이 상호 교환하는 한 증거였다. 이것을 통해 생존자들은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자세를 되찾을 수 있었고, 스스로를 인간답게 유지할 수 있었다.-251쪽

사실상 인간의 '불굴의 정신'에 대한 찬양과 피해의식을 인정하는 것은 뿌리가 같은 '사상적 기원', 곧 인간의 굴레는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는 서구문화에 근거한 것이다. 죽음은 지상에서 얻을 수 없었던 완성의 세계로 향한 문이며, 타협에 의해 정복되지 않는 영혼을 입증한다. 매일매일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두 가지가 다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의 생명은 언제나 보다 높은 것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려고 모든 수단을 다한다는 이유 때문에 협박 받고 모멸당하는 그런 인생이다. -287쪽

나는 비탄에 잠기지도 않았으며 기운을 잃지도 않았다. 생명이란 우리의 육체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이 나의 살과 피 속으로 흘러들어 왔어, 그래, 그것은 사실이야! 고결한 예술 활동을 해 왔던 나의 머리가 영혼의 지고한 요구를 알게 되었고, 재인식하게 되었어. 이제 내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심장이 남아 있고, 사랑하며, 고통 받고 갈구하며 기억할 수 있는 살과 피가 남아있는 한, 결국 이게 삶이 아닐까? 보라, 태양이 보인다! -294쪽

생존의 핵심적 의미는 '죽음을 통과하여 살아남는 것'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문학적 은유로 들리지만 생존자에게는 현실이었다. -309쪽

생존행위는 '인간다움' 그 자체에 생물학적 근원을 두고 있는 일정한 활동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3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