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목소리
대니얼 고틀립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조용한 적이 거의 없는 우리 집 거실에서 가만히 고개를 돌리면 저쪽에서 헤드셋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큰 아이의 등이 보인다. 저 녀석의 속엔 무엇이 들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아마 자기도 모르겠지. 매일 매일 늘 똑같은 일과에 교복에, 학교에, 시험에, 오락에 시간을 보내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미래' 라는 것과 '어른'에 대해서 막연히 겁을 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겁을 먹고 있는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한두 살 더 먹어가면서, 아직도 내 눈엔 여린 아이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래봤자 학교에) 놓아보내고 전전긍긍하다가 석차가 매겨진 성적표에 부르르 떨었다. 나는 내가 열심히 하면 (밥차려주고 가르치고 으름장도 놓고) 내가 원하는 만큼 아이의 성적이나 행동이 나오리라 믿었는데, 아니,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수 많은 가족심리 지도책들과 세상 사람들이 말해도, 우리집에서는 그럴 거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겁이 난다.

내 맘 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혀에서 뭉쳐진 다음 독한 낱말로 튀어나오고 아이의 귀에 들어가거나 튕겨나와 사라진다. 아이의 멍하거나 차가운 눈빛, 슬쩍 넘어가는 거짓말(혹은 비밀)은 내 가슴을 타들어 가게 하는데, 차라리 하루만 내가 저 아이 대신 학교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서 해결을 봐주고 싶다가도(이런 영화가 있었지.) 저 아이의 인생이니 놓아주어야 한다고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놓아준다는 것은 버린다거나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잖아. 내가 놓아준다는 건 저 아이의 인격일까, 인생일까, 성적일까, 행동일까, 아니면....나 자신일까. 그럼, 여지껏 여기 저기서 배우고 읽었던 내용은 현실에선 전혀 소용이 없는 걸까. 내가 바뀌어야, 내가 바꾸어야 하니까. 그래야 나도, 아이도, 우리 가족도 행복할 테니까. 그렇다면 사고로 사고로 장애인이 된 고틀립 박사는 뭐라고 하는지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은 부족한 내 아이가 만든 것이 아니란다. 내 욕심이고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높은 탑이 내게 드리운 무게일 뿐이란다. 그리고 그 배경엔 어린시절 내가 목말라했던 애정과 욕구가 풀리지 않고 자리잡았단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나의 부모에게 뭐라 불평을 한다거나, 내 과거를 탓하거나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 없단다. 그저 그런 사실을 드러내 살펴보고, 만약 내가 상처받았다면 토닥여주고, 지금 내 앞에 내 가족에 있는 것을 바로 보고 받아들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고 했다. 두렵다면 두렵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내 가족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이야기 하라고. 무엇을 바꾸겠다고 덤비는 대신, 가만히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주라고.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용서나 사랑이라는 게 아니라, 가족 각 개인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각 개인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겁이 난다. 아직도. 하지만 이 책 한 권이 내 상처도 드러내고 위로도 해 주었기에 고맙다. 산뜻한 표지 속 가족들은 발을 한가롭게 흔들면서 나누고 있을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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