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고 해서, 중학생 방학 숙제라고 해서, 이 책이 쉽겠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우습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 도덕 시간, 또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계속해서 나오는 철학사. 철학 사상 정리를 한두 줄로 해서는 안돼는 건데, 시간에 쫓기고 내용은 어려워서 대충 땜질 공부만 했던 탓에 아직도 나는 철학이 어렵고 무섭다.  

전 3권으로 나온 <소피의 세계>는 소피라는 (우리 나라 나이로 중2) 여자 아이가 의문의 엽서, 철학사 내용 설명이 담긴 편지와 비데오 테입등을 받고 공부도 하고 미스테리도 풀어가는 이야기다. 1권에선 상황이 점점 미궁에 빠지는 데까지 나오고 철학사는 제일 처음 문제, "세계의 시작은 어디인가?"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에서 시작해서 기독교의 시작, 헬레니즘 문화와의 충돌 및 융화, 바울의 전도 까지 다루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인 요슈타인 가아더는 중간 부분 철학과 신화를 비교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북유럽 신화를 다루고, 영혼이나 종교 이야기를 다룰 때도 철저하게 비종교인의 입장을 취한다.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비교도 언급되는데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설득력이 있었다. 철학사와 종교사를 따로만 봐와서인지 기독교의 시작을 이렇게 인류사의 입장에서 다루니 교인도 아니면서, 왠지 불경스런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참신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다. 책 속의 철학선생님이 말한대로 우리는 마법사가 모자에서 꺼내드는 토끼, 그 털 속에 사는 진드기인지도 모른다. 진드기에겐 토끼가 모자안에서 따뜻하게 웅크리고 있어주면 만사형통일텐데. 그렇지만 모자 밖으로 나와서 두 긴귀를 웅켜잡은 마법사의 손을 알아볼 수 있는 진드기라면 정말 더 없이 멋진 일이고.  

책은 옛날식 편집이라 (1994년 초판) 행간도 빡빡하고 말투도 뻑뻑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갑작스레 편지나 엽서를 받는다는 설정이 진부하기도 하고. 하지만 두어장을 넘어가면 철학사를 공부하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생겨서 계속 읽게된다. 한 번만 읽어서는 내용도 정리가 안 될거고 두세 번은 반복해서 읽어야한다. 설명이 친절하지는 않지만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중학생 아들도 열심히 읽는다. 어느정도 이해했는지 의문이지만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한다. 이제 시작이다. 진드기가 토끼털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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