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1 - 눈동자의 집, 개정판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한지희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검은 표지, 기괴한 분위기의 어른 앞에 주눅들어 보이는 세 어린이. 게다가 뒷 표지에는 작가의 경고성 글까지. "읽지 마시오. 이 글은 위험하고 슬픈 이야기요."  

얼마전 완역된 13권의 스니켓의 대 서사시(!) 의 첫 권을 읽었다. 6년 쯤 전 영어로 읽은 기억이 가물거리기도 하고, 짐캐리 주연의 영화 장면들도 드문 드문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책에서 누굴 만났던가? 귀여운 세 꼬마도, 교활하게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명배우 올라프 백작도, 그에게 당하는 후견인들도 아니다. 난 장난꾸러기 레모니 스니켓을 읽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의 윙크하면서 "넌, 알지? 내 말?" 하는 그 능청스러움을 읽었다. 책은 마치 그가 단테인양 베아트리체에게 헌정되었고, 아이들 이름은 보들레르. 또 유산 관리자는 포우 아저씨, 그의 아들 이름은 에드가 이런 식이다...그래서 아이들이 당하는 온갖 비극들이 덜 무섭고 - 아, 난 애엄마지만 어린이 소설이나 영화를 읽을 때 완전 회춘해서 초등생이 된다는! - 아이들 뒤에 이 힘센 (그렇다, 펜은 칼보다 세다) 스니켓 아저씨가 버티고 있어서 듬직했다.  

부모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이 풍진 세상에서, 맏이가 법정 성인이 될때 까지, 세 아이들은 못된 후견인의 탐욕을 피해서 버텨야 한다. 그렇다. 이 세상은 어른들의 것이니, 아이들은 억울할 뿐이다. 아이들은 당하고, 또 당한다. 착한 어른들은 게으르거나 어리석고, 나쁜 어른들은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술수를 쓴다. 아이들이 이기는 방법은 어서 어른이 되는 거다. 그 새 나쁜 어른들은 힘이 빠지고 늙어버릴테니까. 이런 괴씸한 아이들의 속내를 스니켓이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주니 아이들이 (그리고 나처럼 나이를 잊은 어른들도) 좋아할 수 밖에.

우리말로 읽는 스니켓은 많이 달랐다. 분위기는 여전히 슬픈 비극으로 가득찼고 첫 장부터 타버린 집에서 올라오는 재와 연기로 자욱했지만, 뭔가 달랐다. 영문을 그대로 직역하는 대신, (안타깝다. 조금만 더 직역을 했다면 영문합본으로도 나왔을것을) 우리말 분위기와 흐름에 맞도록 문장을 새롭게 편집한 덕에 세 어린이 주인공들이 더 생생하게 자신들 목소리를 낸다. 종종 글 속의 "나"는 스니켓이 아니라 빅토리아나 클라우스가 되기도 한다. 스니켓이 슬쩍 사라지니 어쩐지 섭섭하기도 했고, 책 표지 안쪽에 턱하니 써있는 그의 본명과 실제 나이에 그간 내가 품었던 그림자 사나이 스니켓의 환상이 홀딱 깼다. 아니, 아자씨, 나 보다 젊었어요? - -;; 물론 그동안도 인터넷 검색으로 이 작가의 본색을, 아니 인적사항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건 실제 인물이라기 보다는 소설 전체에서 독자들과 상호 작용을 벌이는 스니켓이었는데....  

그래도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세 아이들이 예쁘다. 빅토리아의 절망과 결심의 독백 (아니, 방백)은 절절하고 클라우스의 목소리도 힘차다. 서니의 "아아앙"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 아이들이 나머지 열두권에서 얼마나 더 자라고 더 용감해져서 이 나쁜 어른 (의 종합세트인) 올라프에 대적하는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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