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붙잡고 있다. 아니, 오늘은 펼치지도 않았다. 오늘이 말일인줄 알고 이번 달 독서 목록이나 정리해야지 생각했는데 시월의 마지막날은 내일이다.
표지에 미술 작품이 불탄다고 보여주는 것 같은데 제목만 듣고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생각했다. 불타지만 불타지 않는 작품. 지난 번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새 소설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둥.
미술가 안이지는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재단으로 부터 예술가 레지던시 (4개월) 후원을 받게 된다. 한국에선 안 풀리는 상황에서 음식 (도보) 딜리버리를 하면서 우울하던 차여서 어딘가, 뭔가, 찜찜한 느낌이지만, 이거 사기는 아니겠지, 하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로버트 재단에서 4달 동안 숙박과 작품 제작에 관한 모든 지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작품들로 전시회 까지 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다. 그리고 그 중 한 작품은 전시에서 불태워야 하는데 그 "불타는 작품"은 재단의 주인인 "로버트"가 선택한다. 현대 미술에서 이런 식의 작품 파괴가 이루어 지기도 하지만 주인공 안이지의 심정은 안 easy하다.(소설에도 나오는 말 장난)
지금 소설의 절반을 읽은 상태인데 이 이야기는 빌드-업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처음엔 로버트 재단이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그 사연이 꽤 여러 단계로 정리되어 나온다. 특히 로버트가 얼마나 특별한 미술적 "안목"을 지녔는지 칭송이 자자해서 그 지점에선 의문 품지 말라고 주인공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단단하게 이른다. 다음 빌드 업은 안이지의 선택 아닌 선택, 로버트 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행이다. 이 여정이 소설의 1/3까지 이어지도록 긴데 여러 사건 사고가 얽혀있다. 뭔가가 계속 엇갈리고 어긋나고 오해와 의심은 쌓인다. 여름의 이상 고온과 산불에 독자인 나의 마음까지도 짜증에 불탈것만 같다. 여러 악재들과 산불, 간섭, 오만한 태도, 거짓말 같은 멀티플 통역, 이런 연극에 참여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에 주인공은 갈등한다. 도망갈까. 주인공 안이지는 미국의 "허허벌판" 한가운데 호화 외딴 성 로버트 재단에 초대 혹은 감금되어 있으며 무언가를, 의미를, 이야기를, 그것도 불타버릴 어떤 것을 만들라는 독촉을 받는다. (드라큘라도 비슷한 설정에서 시작하지 않나?) 읽는 나도 갑갑하고 조급하다. 빡빡하게 굴며 독자를 쪼아오는 소설이 재미가 없는건 아닌데 또 아주 재밌지도 않다. 애매함.
내일은 다 읽겠지. 조금 더 강한 압박으로 쌓고 그다음엔 화르륵 불타는 결말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