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과 그 애틋한 마음은 잘 알겠다.

일본이 천황의 이름으로 끔찍한 일을 무수히 저질렀다고 해도, 나치와 소비에트 정권이 저지른 일들에 비할 바는아니다. 일본은 종교나 계급 때문에 수백만의 자국민을 죽이지는 않았다.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에서 벌인 잔혹함이나 전쟁 포로에 대한 끔찍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레닌그라드 침공 때나 바르샤바 항거를 진압할 때 보인 독일의 행위와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조가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와 같은 성자는 아니지만(도조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군국주의자였다) 나치 전범인 헤르만 괴링 같은 악인도 아니었다. 도조는 광적인 신념에 사로잡혀 일본의 국가기관을 탈취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의 의무라고 생각한 일을 성실히 수행한 군인이었고 관료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동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을 뿐이다.
국가사회주의와 천황 숭배와 인종 차별주의가 뒤섞인 위험한 사상의세례를 받고 자란 이 젊은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특유의 정치적 수법을 동원했다. 집권 정부를 당혹시켜 확실한 입장을 취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국가주의와 인종 혐오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일본보다는 중국과 한국에서 두드러지지만, 전쟁 전 일본에서는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당시 벌어졌던 일의 원인을 찾다보면 궁극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중국 대륙에서의 모험주의와 제국주의적 야심, 소련에 대한 두려움, 나치에 대한 동경이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