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의 홍한별 번역가의 사전 이야기는 이 얇은 책 한 권에 담기기엔 너무 풍성하고 깊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전과 단어 이야기, 사람이 우리말과 외국어 단어들을 익히고 잃어가는 과정과 인생사가 담겨있다. 번역가의 가족은 모두들 단어의 중요함을 잘 알고 그 단어들을 소중하게 (하지만 엄숙하게 묶이지는 않으며) 다루었다. 이런게 바로 가풍이겠지. 남자친구를 처음 집으로 데려온 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한 보드게임이 영단어 맞추는 스크래블이라니!
저자는 사전의 태생적 모순, 살아있는 단어들을 모두 담는 '완벽한' 사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언중의 선택으로 생사가 결정되는 단어가 오용과 편견으로 차별적 무기가 되는 폐해도 짚어낸다.
이 책 덕분에 여러 다양한 사전들의 특성 (롱맨이나 옥스퍼드 사전이 어떻게 다르고 특별한지)을 새로 알았다. 유료 사전 사이트 natmal.com과 재미있는 현대어 사이트vocabulary.com를 따로 즐겨찾기 표시를 해두었다. 이토록 사전을 가깝게 두고 (사전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양이 없어도 행복하기' 방식도 알려주며 '한국어기초사전'의 용례의 등장인물들 사이의 애정의 사각관계를 풀어주는 멀티버스-즐거운 책!) 단어를 모으며 사는 저자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사전 만드는 일에 대한 책들과 단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1984의 '정반대 의미'의 사전 포함)을 따라 읽다보면 (주섬주섬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아, 내가 가진 사전에 대한 애정은 진정 애송이의 풋사랑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재미있게 읽은 다른 '사전류' 책이 홍한별 번역가의 친오빠 역서였다는 걸 알게 되니(이 사실은 편집자K 유툽에서 번역가가 직접 얘기한 것), 더욱 완벽한 사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책이 얇아서 더욱 아쉽고 looseleft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라는 이 책에만 나오는 특별한 단어.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