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으로 읽었다. 집에만 있는 주제에 (난 명랑한 은둔자니까 - 하지만 혼자 못 있는다는 게 함정), 바쁜 척하면서 핸드폰으로 짬짬이...는 아니고 어제부터 줄창 읽었다. 노안의 가속화. 나도 안경을 쓰다 벗다 하면서 읽었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종이책으로 살걸 그랬지.
여성은 왜 원하는가, 라고 부제처럼 적혀있는데, 책은 저자의 이십대 초 거식증 경험부터 이야기한다. 왜 굶는가, 굶으며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를 상처 주고 싶었나, 를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말/글솜씨가 유려해서 후루루룩 이야기가 전개된다. 쉬운 해답이나 이유, 혹은 핑계나 악역을 찾는 걸 경계한다. 강박적인 쇼핑, 체중조절, 도벽, (나쁜) 연애에 빠지는 습관 등은 그 자체가 물질주의/가부장제 사회/문화가 여성에게 강요한 뒤틀리고 대체된 욕구로 인해서 생겼다. 그 욕구는 '허기'에서 오는데 이 인과 관계를 인정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이 치료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어째 익숙한 전개다) 이 결론을 말하기 전에 무수한, 적나라한 여성들의 케이스들이 묘사된다. 처절하고 민망하고 측은하고 슬퍼지기까지 한다. 그 많은 얼굴들에 어쩌면 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하야, 제대로 긍정하는 '나의' 주체적 욕구는, 허기를 채우는 만족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케바케라고 한다. 결국엔 사랑인데 그것 역시 완성이나 종결이 아니다. 긴 과정으로 보아야하고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좋다는 ..... 캐럴라인 냅의 뜨겁고 날카로운 챕터들이 따숩게 마무리 된다.
911 테러를 겪으며 쓴다는 언급이 증명하듯 벌써 이십 년 전 글이다. 중간에 얼핏 '제3세계' 여성의 목숨 걸린 고난에 자신들의 '투정'을 비춰보는 백인여성 이야기가 들어있기도 하고, 페미니즘 연구의 변이와 위기, 한계를 짚어가는 것은 좋지만 결국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싶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정신과 전문의라서 더 그럴까, 이 책은 꽤 정석적인 문제제기-탐구-해법-희망 의 공식을 착착 밟는다. 내용 하나 하나 디테일은 펄떡거리지만 전체적으론 얌전한 느낌이 드는 건 저자가 생을 정리할 시기의 글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냅의 책은 '드링킹'을 사두었다가 - 그 시절, 나도 꽤 드링킹 했었... - 괜히 찔려서 안 읽고, 이번이 처음 책이다. 솔직한 이야기들이 넘치고, 그 하나 하나가 아프게 와 닿았다. 이렇게 여성들의 욕구들/사연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작가는 (요즘 범람하는 일기 엣세이들의 징징대는 솔직함과도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리 잘 엮어서 (유우머 감각도 좋다. 번역이 잘 살린 듯) 큰 주제 아래로 묶어 큰 울림을 만들어 낼 작가는 흔치 않다. 낸 캐럴라인 냅, 역시 대단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