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춘기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아들이 별안간 눈에 띄게 퉁명스러워진 참이어서 아들의 기분이 독기운처럼 공기 중에 퍼지고, 올리브도 크리스토퍼 만큼이나 변하고 또 변덕스러워 보이던 때였다. 모자는 순식간에 격렬히 싸우다가도, 그 분노는 이내 무언의 친밀감처럼 둘을 감싸버려 영문을 알 길 없는 헨리만 멍하니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13)



케빈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운전대를 내려다보며 가능한 한 표시 나지 않게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며, 잠깐 동안 거대한 코끼리가 곁에 앉아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 왕국의 일원이 되고 싶은 순진하고 순한 코끼리, 앞다리를 무릎에 포개고 기다란 코를 살며시 움직이는 코끼리. (82-3)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108)



심한 생리통으로 양호실에 온 소녀들은, 아파서 입술이 바짝 말라버린 채 잿빛이 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엄살부리는 거래요." 이런 말을 하는 소녀들이 적지 않았다. 그 말에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소녀로 사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그녀는 때로 오후 내내 양호실에 있다가 가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233)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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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1-02-20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올리브 나이 근처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왜 저 모든 것들이 마악 가슴에 와닿는겁니까.

유부만두 2021-02-20 18:16   좋아요 0 | URL
가슴에 와 닿고 스윽 들어오죠? 특히 봄 이야기 저 단락, 오늘 낮에 자꾸 생각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