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서 정세랑 작가가 추천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었다.


여러 겹으로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끌러가면서, 그 안에 든 복잡한 문양의 퍼즐을 푸는 기분이었다. 문제 풀이 보다 장식과 설정에 자주 눈을 빼앗겼다. 


소설 초반에 세 겹 이상의 준비 단계가 있다. 


살인 사건의 시작은 시체 발견이 아니라 그 범죄의 설계와 주변 인물들이 한 자리, 범행 현장으로 모여드는 것 부터 시작이다, 라는 '새로운 범죄/추리 소설의 정의'를 준다. 인생이 꼬여서 벼랑에서 몸을 던졌지만 목숨을 건진 한 남자가 있고, 주위 상황에 치여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고백해버리는 심약한 소녀도 나온다. 그리고 차분하게 범죄를 설계해서 시나리오를 써 검토하고 외운 다음 태워버리는 범인이 나온다. 물론, 계획에는 차질이 생긴다. 


엎치락 뒤치락 사랑하고 배신하고 속땅해하고, 범인이 얘, 쟤, 걔로 화살표를 바꾸다가, 갑툭튀, 아니 아까 아까 설정들의 그 상황이 재연되면서 '나쁜넘'이 밝혀진다. 신체 특징을 가지고 이런 저런 유사과학 썰들이 나오고 '심리학'이 어쩌고 하는 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이 지독한 건, 피해자가 미운 게 아니었다니?! 얼마나 증오가 크면, 얼마나 자기애가 크면 사람 목숨을, 그것도 '철퇴'를 써가며 앗을 수 있을까. 


자 이렇게 끝나도 되잖아요?! 그런데 그토록 정성스레 포장하고 차곡차곡 겹쳐서 쌓아 놓고는 (섬세하기 보다는 그냥 습관 같긴 했지만) 마지막에?!!! 으으잉? 스럽게 커플 만들기라니요? 아이고 촌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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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런데 말입니다, 

    그 '금사빠' 여성이 마지막에 그를 만나서 아마도 함께 타국으로 떠난다면 그 후에도 사건이 날 것 같은데요? 허... 이거 애거서 크리스티 님께서 만드신 또 한겹의 이야기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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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1-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옛날에 0시간으로 라는 제목이었던듯??

유부만두 2021-01-23 23:08   좋아요 0 | URL
아, 언닌 안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없을 거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