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애슐리의 현타와 좌절, 꿈꾸는 넋두리. 하지만 스칼렛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다. 애슐리는 배고픔을 모르는가. 이 둘은 다른 두려움에 좌절하고 있다. 당장 세금은 누가 내지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나을까.

「결국은 한 문명이 붕괴될 때마다 벌어졌던 상황이 다시 벌어지겠죠. 두뇌와 용기를 타고난 사람들은 극복을 하겠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를 당하기 마련이에요. 괴터데머룽을 목격한다는 경험은 비록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흥미롭기는 해요.」

「괴터 뭐요?」

「신들의 황혼이라는 말이죠. 불행히도 우리 남부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벌거벗은 그대로의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 ─ 그것은 저주예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삶이란 나에게는 커튼에 비친 그림자 연극 이상의 현실감을 주지 못했어요. 그리고 난 그런 쪽을 더 좋아했고요. 난 사물의 윤곽이 지나치게 선명하면 좋아하지를 않았어요. 약간 희미하고, 약간 지워진 모호함을 난 좋아했으니까요.」

그는 말을 멈추고는 마치 엷은 셔츠 속으로 찬 바람이라도 들어간 듯 몸을 약간 부르르 떨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하면, 스칼렛, 난 겁쟁이예요.」

「전투란 샴페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전투는 영웅이나 겁쟁이를 따로 가리지 않고 똑같이 빠른 속도로 취하게 만드니까요. 용감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에서라면 어떤 바보라도 용감해지게 마련이죠. 내가 한 얘기는 의미가 달라요. 그리고 내가 얘기하는 비겁함이란 첫 포성을 듣자마자 도망치는 행동보다도 훨씬 더 나빠요. [...]

그런데 이제 과거의 삶은 사라졌고, 새로운 삶에서는 내가 끼여 들어갈 자리가 없고, 난 그래서 두려워하죠. 이제야 나는 옛날에 내가 보았던 세상이 그림자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림자가 아닌 모든 대상, 그러니까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지나치게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꺼렸어요. 나는 그런 요소들이 나의 현실에 끼어들면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당신도 피하려고 했어요, 스칼렛. 당신은 삶으로 충만했으며,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던 반면에, 난 그림자와 꿈을 더 좋아할 정도로 겁쟁이였어요.

전쟁은 인간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지만, 그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그런 지혜를 절대로 터득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드는군요. 지금 나는 아내와 아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하고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의 세계로 뛰어들어 내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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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8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을 읽을때마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게이블과 비비안 리에 모습을 떠올리게 되네요 그만큼 영화가 원작 만큼 강렬했나봐요 ㅎㅎ

유부만두 2020-12-19 09:44   좋아요 1 | URL
강렬하죠!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보면 감상이 다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