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앗아가 버리는 반짝이는 그대와 모든 것들...
작가 배삼식,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로 시작하는 이야기, 옛스런 이야기 한 번 읽어보자, 싶었어요. (민음사 유툽이 나를 홀렸음) 여성들의 하루 나들이 이야기라고 하니까요.
화전은, 화전민의 화전이 아니라 찹쌀 잘 빻아서 물에 적당히 개어 위에 진달래를 얹어서 곱게 지져내는 화전이더라고요. 손이 많이 가는 화전은 젯상이나 차롓상 보다는 나들이 때 많이 만드나 본데, 먹어본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어요. 꽃을 먹는 건 박완서 작가님 시절 까지나 하지 않았나? .... 가만, 나도 어릴 적 사루비아의 꿀물을 빨아먹어 본 적이 있어요. 그게 분꽃이었나, 까만콩 같은 것도 맺히는 꽃이었는데.
예상을 다 빗나가서 배삼식 작가는 현재 활동하는 작가이고 이 이야기는 1950년 4월, 육이오 나기 두달 전 경북의 어느 시골 마을의 있는 집 이야기에요. 독립운동 열심히 한 가장은 소식이 끊겼고 큰 아들은 (사연 있게) 실성해서 죽어 청상 며느리만 남았고, 둘째는 (역시 사연을 안고) 감옥에 둘째 며느리는 산달이 가깝고, 첫 사위는 사상 운동 하느라 월북했고 둘째 사위는 잘나가는 사업가인데 (사연 넘치게) 여기 저기 쓴 술 먹어가며 접대하기 바쁜 집안입니다. 늦둥이 셋째 딸은 서울서 대학 다니는 봉아. 시집간 지 일주일 만에 청승되 친정으로 돌아와 식구들을 챙기는 고모, 집안 살림은 독골할매가 맡아서 해주고 그 수양딸로 홍다리댁이라고 (사연 많은) 여자가 나와요. 이 모든 '사연' 혹은 스토리가 사투리, 것도 억씨게 씬 갱상도 사투리로 적혀있어서 눈으로 읽어선 전혀 의미가 와 닿질 않아서 소리 내서 읽었더니 경북이 아니고 강원도도 아이고 저어 이북같다고.
집안 남자들이 다 자리를 비운 상태, 여자 여덟이서 각기 조금씩 사연들 (일제 강점기, 간도 독립운동기, 광복 그리고 혼란과 불안)을 풀어 놓으면서 밤이 깊도록 화전놀이 준비를 하고 또 다녀옵니다. 그런데 재미있고 (열심히 소리내 읽으면서 '해독'하는 재미) 가족들, 여자 인생 이야기에 맘이 따땃...해지면 뭐합니까. 두달 후 난리가 나는데. 어쩐지 읽으면서도 계속 불안 하드라고요. 그래, 낭중에 하지....라는 말 다 소용 없어요. 왜 나중이래? 지금. 카르페 디엠! 지금 열심히 사랑하고 말하고 챙기고, 또 화전도 지져 먹고 해야하는 걸.
시작 부터 처연하게 셰익스피어의 노래로 시작하고 연극의 마무리도 그렇게 됩니다. 아주 새로울 건 없어요. 서로 살갑게 챙긴다 해도 엄연히 어른과 아이, 주인과 종, 부자와 가난뱅이가 구별이 되는 이야기에요. 기대만큼 '여자들만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조금 아쉽습니다.
가슴에 사연을 끌어안은 일곱 여자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노래를 입으로 나불거리고 커피와 촥릿을 허세 부리고, 청보리죽 추억하며 어리광 피우는 봉아, 혼자서 반짝였던 봉아, 철부지 아가, 자기만 다르고 영원할 줄 알았지. 그 봉아가 의미도 모르면서 불렀던 노래가 연극 내내 천천히 여물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