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의 문장은 초지일관 공손하게 '당신'만을 바라본다. 지극히 공손해서 진짜 같지 않다. 

 

너무 짧지 않은 이야기고 호흡도 급하지 않게 병원, 여성, 전문직, 갈등이 천천히 드러나는 편이다. 그래도 공손하고 예의 바른 문장이 이야기 속에서 영 아귀가 맞질 않는다. 작가 이름을 다시 살폈다. 어쩐지. 

 

왜 하필, 작가는 여성 화자에 '임신중지'라는 여성의 주제를 택했을까. 작가의 설명을 읽었지만... 흠... 소설 중간 중간에 들어간 설명 만큼이나 길고도 공허하다. 화자 지수의 행동은 힘이 없고 희진 언니도 뭔가 다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을 것만 같다. 해수의 밝고 낭낭한 사투리 대사는 생활감 대신 전형적 가면으로 보인다. 그들의 전문직 '의사'는 이름 뿐, 설정으로 쓰인 응급실 말고는 대부분 이야기는 골목에, 거리에, 광장을 벗어나, 스터디 카페에, 업무 시간 외에, 전화로, 밥을 차리면서, 병원에서도 휴게실에, 아니 이 소설 안 말고 '다른 세계에' 있다. 취재와 조사, 그리고 여러 인터뷰와 논리로 조립해 놓은 '소설' 속에. 인권이나 법률 설명이 나오면 여성 목소리는 사라지고 자꾸 들먹이는 '당신'만 도드라지게 '서늘한 느낌'을 더한다. 그리고. 희진 언니는 한 모금 빨았던 담배를 지수에게 건넨다. 어쩐지.

 

여성 화자에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이 여성이다. 그런데 아무도 여성 같지가 않다. 주된 소재는 낙태죄의 위헌 판결인데 결말이 "다행이야...." 가 아니고 찜찜하다. 평론가의 해설은 "오래된 논란을 되풀이 하는 것 처럼 보여도 아니다!'"라고 착하게 변명해준다. 임신중지건 선택이건 그 결정은 여성, 여성의 몸을 가진 '나'가 해야한다. 그런데 왜 소설의 '여성' 목소리는 끝까지 경어로 '당신'만 부르고 애정과 행복 타령만 하며 감싸고 있는가.

아들인갑네. 


 

2020년에도 여성 흡연은 혐오와 공포, 그래서 임신중지와 연결되는 이미지인가,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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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1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12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0-04-12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수전 선택이네요~ :-)

유부만두 2020-04-13 07:43   좋아요 0 | URL
강렬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