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근대화' 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4권은 해방이후 근대화 시절의 무지하고 폭력적인 노동의 현장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소설들이 담겨있다. 한승원의 등단작 '목선'을 읽었다. 꾸역 꾸역 읽었다.

 

겨울 동안 과부 양산댁의 김 채취를 도우며 머슴을 사는 석주는 서른이 다되어서 미루고 피했던 군대를 다녀오는 새에 부인이 배를 팔고 도망간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야무지게 일하며 아들 하나를 키우는 양산댁과 김채취를 하던 어느 날, 양산댁의 소변 누는 것을 (배 위에서 작업 하다 보니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나) 보고 맘이 동한다. (아니 왜!) 어느새 슬금슬금 양산댁의 말투가 명령조에서 청유형으로, 그 자신도 말을 놓고 있었다. 석주는 멋대로 양산댁을 범하려 든다.

 

 

불법 카메라 영상을 찍고 돌리는 범죄자들의 논리가 이것이다. 육체를 보아버린 피고용인 그가 어느새 고용주 양산댁의 육체에 권력을 가진 '남자'가 되어있다. '홀로 사는 여자를 홀로 사는 남자가 한 번쯤 만져주었다고 죄가 되면 얼마나 되랴 싶었다.' (409)

 

하지만 양산댁은 강렬하게 저항한다. 강간에 실패하는 강간미수범 석주. 의외의 '정조' 관념으로 자책하며 양산댁 집을 몰래 떠나려고 한다.

 

 

그에게 양산댁은 일을 마저 다하고 가라며 말린다. 하지만 김채취가 끝나고 배를 빌려주기로 한 약속을 깨버리는 양산댁. 화가 난 석주는 양산댁에게 뭔가를 꼬드긴 태수를 패버린다. 태수는 예전 자신의 부인과 바람 난 김장수와 겹쳐지고 그에 넘어가 약속을 깬 양산댁은 부정한 전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논리 낯설지가 않다. 분기탱천해 양산댁도 패버리려는 (죽일 수도 있었겠지, '욱해서' 혹은 '순정을 받아주지 않아서') 순간, 배를 포기하는 양산댁은 '나는 배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 자신을 꼬여내는 말로 받아들이며 멀리 바다를 쳐다보는 석주.

 

하아.....토가 밀려온다. 이게 한국문학의 '절창'. 다시 한 번, 폭력의 문학을 확인했다. 남은 '한국명단편' 전집을 덮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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