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긴 단편 '지옥변'을 읽었다. 어제의 뜨거운 날씨에 꽤 어울리게 뜨겁고 시끄러운 소설이었다. 화공 요시히데는 밉살스럽고 오만하며 소란스러워서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많은이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생생한 그림은 기괴한 소문을 만들어낼 정도의 수준이다.

 

화자는 수십 년 전의 '그 사건'을 둘러싼 문제의 '그 인물'이 그려낸 '그 그림', 지옥변, 지옥의 그림을 이야기로 보여준다. 악인의 영혼을 태우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불타는 마차, 화차, 를 생생히 그리려는 화공 요시히데의 예술적 욕망과 그에게 고통을 주려는 호리카와 대신. 그 사이에 낀 요시히데의 딸. 병풍의 여러 면 만큼이나 접을 수도 넓게 펼 수도 있게 인물들이 쓰인다. 비열하고 욕심 많은 화공과 대신, 천하고 소란스럽지만 애착하는 대상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화공과 원숭이, 자존심에 있어서는 신분에 맞지 않게 오만한 화공과 딸. 죄악과 징벌이 뒤엉키고 징벌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지옥도와 이 세상.

 

지옥을 표현하려 애쓰다 지옥을 만들어버리는 화공과 대신은 김동인의 소설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수십 년 전의 그 '자애로우신' 대신님 댁에 끔찍한 지옥도를 바친 비열한 화공과 여러 인물들을 모두 뒤집어 이야기의 선후(인과)를  멋대로 배열해 놓는 화자는 이 그림, 이야기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얼핏 예술지상주의 소설로 읽혔지만 여러번 뒤집어 놓은 인물과 사건 관계도, 지옥에서 쭈뼛 거리며 눈치껏 숨죽여 모든 것을 보고도 침묵하며 살아남은 화자, 소설가의 자신 만만한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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