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노동가치의 보상체계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만을 보장할 뿐 미래를 위한 임금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반면, 자본가는 보상받지 못하는 집단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부를 축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독립과 안전, 미래의 이익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재생산의 맹아, 삶의 영원한 근원, 생산도구이자 생산의 원천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 자본가는 생산하는 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면서도 결코 이에 대해 보상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노동자의 빈곤, 유한계급의 사치, 조건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기만적인 거부이다. 우리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라고 적절하게 명명했던 것은 이 기만적인 거부에 다름 아니다." 178

소유! 그 확장의 필요성

 

프루동이 자본주의적 소유를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소유를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는 소유가 국가의 권력을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 다음에 그는 자본주의체제에서 소유권에 결부되어 있는 불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이 권리를 보편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유는 " 모든 사람이 합의하고 있기"때문이다. 모든 시민은 생산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프루동은 주저하지 않고 '평준화'에 대해 말한다. 헛되이 소유체제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끝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까지 소유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루동은 노동조합에 기반한 새로운 '계약'을 제안한다.  179

 

 

진보, 그 어리석음의 뿌리

 

해방된 노동계급은 "관점이 결여"되고 "사업상으로 미숙할"수 있기 때문에 "사업이라는 종목"에 필수적인 입문을 하기 위해서는 "산업게와 상업계의 유력자들"과 동료가 될 필요가 있다. 프루동은 여기서 혁명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기교의 결여, 충분한 경제 지식의 부족과 결부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를 건드린다. 레닌은 이 딜레마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량할 수 있고, 근본적으로 정직하고 대의에 헌신하고 죽음을 무릅쓰지만, 상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업가가 아니라서 사업을 배운 적이 없고, 사업을 배울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첫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공산주의자는, 지난 4세기 동안 세계가 주시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유럽 40개 나라가 주시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세계 혁명을 이룬 혁명가라 할지라도, 10년 동안 가계와 창고를 분주하게 뛰어다닌 것밖에 한 일이 없는 평범한 점원에게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점원은 자신의 일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책임감 있는 공산주의자, 헌신적인 혁명가는 자신의 일에 능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이 점에 무지한 것조차 미처 모르고 있다." 183

 

사회계약론의 그늘

 

루소 이론의 영향을 받아 "전제정치의 통치 형태를 모방하면서 본능의 정치를 원리의 정치로" 대체한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실패하기 전까지 전체주의에 빠져 있었다. 모든 일방적인 정치관은 혁명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아주 크다....하나의 원리가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자마자 제도가 망가지기 시작했음을 경험적으로 논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흡수, 숙청, 배제, 수구, 몰락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혁명은 이런 식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사회나 자연에 이미 존재하거나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은 "대립하는 요소들의 결합이나 그 요소들의 운동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원주의적 변증법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는 정치만이 진정한 진보를 실현할 수 있다....프루동은 아나키 속에서도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나키가 무질서도 동의어도 아니고 조직화의 부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191

 

프루동에 따르면, 사회계약설은 "전적으로 정부의 사상"이다. 본래 사회계약은 계약 당사자에게 외부에서 부과된 권위를 세우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계약 당사자들 간에' 체결된 협약이다. 계약은 뼈와 살을 가진 개인들이 정해진 범위와 기간 안에 그들 간에 '거래'하기로 합의한 행위이다. 사회계약이란 충분한 권리를 지닌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 사이에서 매우 공정하고 상호적인 관계가 수립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계약은 사회집단 내부에 제한되며, 제삼자의 손에 그들의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할 필요가 없게 된다....루소가 계약의 요점을 무시한 채 부차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보이면서 시민들 간의 정치적 관계만을 언급하는 데에서 그쳤다.192

 

프루동은 개인만이 선하고 사회는 개인을 타락시킨다고 믿은 것이 루소의 가장 큰 오류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사회를 "거짓으로 가득찬 날조자, 약탈자, 살인자"로 간주하는 것에서 출발한 루소는 "법을 인간 위에 놓는" 정부 형태에 도달할 수밖에 없고, 이는 루소 자신도 인정한 바이다. 달리 말해서 사회적 권리가 새로운 초월성에 종속된다. 법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법을 위해서 존재하게 된다...."국민이라는 추상적 집단은 항상 소수의 기생과 다수에 대한 압제를 은폐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묘한 기만을 동원하여 사회적 무질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국민으 주권에 기초해서 가난을 인정하는 것이다." 194-5

 

만약 18세기가 "루소의 고전적이고 회고적이며 과장된 공화주의에 의해서 진로가 변경되지 않았더라면", '합법적으로' 즉 계약 사상의 발전을 통해서 정부에 대한 부정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시몽이야말로 역사적 고찰과 인간교육으로부터 이러한 부정을 추론해냈다. 196


법과 정의, 왜 다시 시작해야하는가

 

프루동은 법의 타당성에 대해서 "유력하고 부유한 자들을 위한 거미집,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결코 끊을 수 없는 강철같이 단단한 사슬,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잡아들이기 위한 그물망"이라고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단순한'법, 그것도 극히 적은 수의 법에 대해서만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만사를 장악하고, 만사에 대해서 법률을 제정하려는 유혹을 억제할 수 없는 반면, 세상에는 이에 대해 가장 단순하면서 자연스러운 진술인 단 하나의 법만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지 말라. 타인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타인에게 행하라"는 것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장 단순하면서 자연스러운 법이다. 그런데 이 원칙은 명백히 법이 아니다. "이것은 정의에 대한 기초적인 공식이고, 모든 타협을 위한 규칙이다. 198


프루동은 정의가 모든 종교적 의미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의는 인간적이고, 전적으로 인간적이며, 인간적인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정의를 인간성보다 우월하거나 선행한다고 생각되는 원리와 가까이나 멀리 혹은 직간접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정의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정의의 정신은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고 프루동은 주장한다. 혁명 이후에 저마다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정의의 이념이 사회생활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201

 

철학, 왜 헤겔과 마르크스가 잘못되었는가?

 

자연과 사회 안에서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은 자연과 지성의 법칙이고 오성의 현상이다. 이율배반이 영향을 미치는 모든 개념처럼 이율배반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이율배반은 대립항들을 통해서 모든 운동의 제1원인, 모든 생명과 진화의 원리로 이제까지 그렇게 존재해왔던 것처럼 영원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이율배반은 대립항들의 균형을 통해서이건, 다른 이율배반들과의 대립을 통해서이건, 단지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뿐이다." - 헤겔과 마르크스의 삼원적 변증법에 반대해서 프루동은 이원적 혹은 다원적 변증법 사상을 내세운다. 203

 

 

뱀발.

 

1. 딴청을 부리다가 손길의 지근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책을 편안히 읽다. 막스 슈티리너의 약사가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다. 그가 극단으로 나아간 이유와 삶이 번갈아 교차된다. 하지만 역사의 강줄기에서 저끝으로 나아가본 삶이나 사상, 그 막다른 골목, 아니 바닥으로 인해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후세에 논하는 일이니 평론가의 자세에서 자유롭지 않다. 헤겔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으나 결국 헤겔의 그물망 안이었다는 비평은 지극히 냉혹하다.  암흑같은 어둠을 몸소 여는 몸부림이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싶다. 고무같이 탄성이 있는 막을 찟고 막후를 보려했지만 결국 보지 못한다.

 

2. 그 다음장이 프루동이다. 다른 책에서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을 유려하게 설명해서 마르크스와 비교해서 행간을 읽을 수 있었다. 프루동은 어떨까? 몇몇 요약 꼭지를 옮겨본다. 아쉽게도 아직 소유란 무엇인가를 읽지 못했다. 혹시 다른 책들이 있을까 싶은데 마땅한 번역서들이 없어 더 아쉽다. 찰라처럼 비추는 것이지만, 철학적인 배경,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자본주의의 속살에 대한 긍정, 협동조합의 근간이 되는 이론적 모색들 역시 탐이 난다.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한번 새겨야 될 부분들이 총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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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유는 도둑질인가? / 노예는 인간인가? ing
    from 木筆 2013-04-04 11:29 
    1. 아마 이 책을 보지 못하고 죽었더라면? 후회막급할 것 같다. 미리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더 절판을 핑계로 읽지 못하고, 짧막한 소개서만으로 궁금했다면 시간에 바래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재발간(4쇄)되어 저렴?한 가격에 인류가 쌓아놓은 금자탑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뭉클하기까지 하다. 솔직한 심경..... 처음부터 호들갑을 떠드는 이유는 나름대로 다짐이다. 헛갈리는 개념때문에 아직 정의수준에도 범접하지
 
 
 


 지지난해 청소년 아카데미에서 수학관련 강연을 했구 부모들이 참관을 했다. 안탑깝게도 기본적인 취지가 공감이 되지 않은 것인지? 전달하려는 강사의 의도가 애초에 잘못된 것인지? 아쉬움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어제 비가 촉촉 맞기에도 그저그렇게 내렸다. 안식처를 빙빙돌다 수학꼭지에 멈칫섰다. 유난히 기술, 이공계 서적이 많아 반갑기도 하지만....이렇게 원하는 책들이 많은지 몰랐다. 수학, 철학에 미치다라는 저자의 생각도 그렇고 책들 사이, 이야기를 잘 꾸미고 엮으면 좋겠다 싶다.

 

수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에세이식으로 잘 썼고, 수학에 부담없도록 하는 과정들을 만날 수 있겠다 싶어 모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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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차로 도시의 이름있는 곳을 다녀보니 관통하는 도로의 줄기를 어림잡아 알 수가 있다. 책마실보다 몸을 풀어줄 겸 나선다. 나서기가 무섭게 바람이 차다. 잠시 강변을 나서니 열심히 공사중인 곳 말고는 보도와 자전거로로 차도와 강둑을 따라 따로 나서니 편안하고 좋다. 휘황한 불빛과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작은 배가 있어 낯선 곳임을 알려준다. *포와는 사뭇 거리이름 부터 다르다. 철강대로, 중흥로.....평화대로......

 

2. 일요일 연습삼아 사둔 아크릴물감과 보조재료를 다루기가 영 어색하다. 캔버스에 색도 제대로 나지 않고 붓질도 마뜩하지 않다.  그려보는데 얼굴도 화끈거린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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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3-02-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저는 재능을 가진 분들이 너무너무 부럽사와요,,

여울 2013-02-0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얼굴 화끈 ㅡ 분발하고 노력할께요. ""
 

뱀발.

 

1. 책들 사이 책이 서로 가르킨다. 

 

2.  책들이 필경사 바틀비와 돈키호테이다. 

 

3. 보르헤스 픽션들을 보다나니 돈키호테가 나온다. 소설이 쓸 수 없는 소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라는 단편은 돈키호테를 읽는 법에 대해 나온다. 피로사회와 지젝의 책에는 필경사 바틀비가 나온다. 그리고 여기저기.  이곳 미술관 야외전시관에서 돈키호테를 봤다.

 

4.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이 사회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고 살 수 있는 시공간을 열어두지 않는다. 퇴로가 없는 사회는 사회가 아니다. 사회의 막은 장벽일까? 알을 깨고 나오는 말랑말랑한 막일까? 우리는 어디쯤을 살아내고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사는 편을 택할까?

 

필경사바틀비 http://www.youtube.com/embed/oL1KVhog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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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1)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2)

대안제시로서 반관리연구

 

절제적 동력도구를 사용하여 최적의 자유를 추구하는 상상력적 정책의 탐구를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유용하다. 속도를 시속 16킬로미터로 제한하면 캘커타 교통의 흐름은 안정될 것이지만, 이는 누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국민의 이동속도를 시속 32킬로미터로 제한하면 페루의 군대는 얼마나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그 밖의 많은 수송수단을 자전거나 범선의 속도로 제한하면 평등, 활력, 건강, 자유에 어떤 이익이 생길 것인가? 162

 

반관리연구먼저 증대하는 한계비효용과 성장이 부여하는 위협을 분석하는 것에 관련되고 있다. 이어 절제적 생산을 최대화하는 제도적 구조의 일반 시스템의 발견에 관련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는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성장은 중독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헤로인 중독처럼 성장이라는 습관은 기본적 가치판단을 왜곡한다.....치솟는 판돈을 위한 도박에 몰두하기 때문에 좌절이 더 커지는 것에 눈이 멀어 있다....... 반관리연구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 연구는 공중의 눈앞에 지속적으로, 사용가능한 자원과,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사용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 연구는 삶이 의존하는 중요한 균형의 하나를 위협하는 동향이 나타나는 경우, 그것을 공중에게 강조해야 한다. 또 반관리연구그러한 경향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계급의 사람들을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그런 계급의 일원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연구는 다른 점에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는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에게 특정한 자유가 어떻게 위험하게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해야 한다. 나아가 반관리연구는 어떤 집단이나 동맹의 자유에 대한 요구도, 모두의 암묵적 이해관계와 일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 공중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 163-4

 

기업생산양식의 근본독점 수립과정

 

거인 사이의 필사적 게임은 게임 자체가 그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의례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만든다. 경쟁의 전투장이 확대됨에 따라 하나의 산업주의적 구조가 세계 모든 사회에 강제된다. 대부분의 기업적 생산양식은 자원과 도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동기부여의 구조에 대해서도 근본독점을 수립한다. 여러 정치체제는 서로 대립하는 신조에 대해 동일한 산업주의적 팽창을 세례하고자 경쟁하면서 그것들이 이미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깨닫지 못한다. 사회의 심층구조 차원에서 기업법인의 독점이 수렴되는 현상은 인간의 산업주의화라고 불릴 수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되고자 하면 이러한 조류는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 자체가 산업주의적으로 타락하여 이 논점을 정식화하기가 정말 어렵게 되었다.  176

 

인간을 관료적으로 관리하여 생존시키려는 것은, 윤리적 근거에서도 정치적 근거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에 선행하는 대중적 치료법도 마찬가지로 소용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관료적 관리에 복종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구증가와 자원감소의 증거가 늘어남에 따라 너무나 놀라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빅 브라더의 손에 넘길 수도 있다. 기술관료적 배려자가 모든 차원의 성장에 대한 한계를 설정할 수 있고, 그 한계를 그 이상의 성장이 완전한 붕괴를 뜻하는 점에 설정하는 것을 위임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악의 낙원은 산업주의 시대를,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고도 산출량 수준에서 유지시킬 수도 있다. 196

 

일반시스템 분석은 여러 제도의 파탄을 상호관련시켜 파악하는 것으로 신뢰를 얻고 있으나, 이는 단지 인구, 풍요, 비효율적 산업에 대한 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더욱 많은 계획화와 중앙집권과 관료제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제조업 부문의 실업은 의사결정, 통제, 구제책의 산출을 증대함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사람들은 지금도 산업주의와 기계제 생산에 매료되어 몇 가지 상이한 생산양식이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반산업주의적 사회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203

 

전면적 위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민족국가는 자기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복합체에 봉사하는 지주회사로 변하고, 정당은 위원회나 대통령을 선출할 때마다 그 주주를 조직하는 도구로 변했음이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은 개인의 소비수준을 더욱 높게 주장하고 이에 따라 산업주의적 소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강요하는 유권자의 권리를 지지한다. 가령 사람들은 자동차를 요구할 수 있지만, 자동차가 유용하다고 결정하는 교통체계가 사회의 모든 자원을 점유하게 되는 것은, 전문가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GNP 증가를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국가를 지지하는 정당은 전반적 붕괴의 시기에 오면 명백하게 무용한 존재가 된다. 211


언어의 식민화

 

남미에서는 어디에서나 노동자든 관료든 급료를 받는 피고용자만이 자신은 일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농부들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즉 " 그들은 일을 하지만 일을 갖지 않는다."...사람들은 지식, 이동, 심지어 감수성이나 건강조차 획득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이나 즐거움을 갖는다고 하며 심지어 섹스도 갖는다고 말한다. 동사에서 명사로 바뀌는 이러한 전환은 소유권 관념의 변화를 보여준다....완전히 산업주의화된 인간은 자신이 소유하는 것을 대체로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는 학교나 자동차나 쇼단이나 의사로부터 얻은 상품에 대해 '나의 교육', '나의 이동', '나의 오락', '나의 건강'이라고 말한다.  177..."나는 배우고 싶다"는 말은 "나는 수송기관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바뀐다. "나는 걷고 싶다"는 "나는 수송기관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바뀐다. 178

 

정치적 전복의 가능성

 

일상영어와 마찬가지로 절차라는 형식은 하나의 절제적 도구다. 산업주의적 제도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개인과 지역사회가 이러한 도구를 관습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그 지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언어와 절차형식은 그것이 사용되는 목적과는 본질적으로 여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언어와 법적 절차를 본래 자신들의 것으로 옹호할 수 있다....법의 형식적 구조는, 일반 시민이 가업의 이해관계와 대립하는 자신의 실제적 이해관계를 사회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 190

 

 

(1) 우리의 현위기의 성격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계몽하여, 여러 가지 한계가 필요하다는 것과 절제적 생활방식이 바람직함을 이해시키기 위한 구체적 절차를 명시하는 .
(2) 사람들이 검소한 생활방식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을 절제적 생활에 만족하게 하며, 따라서 그것에 깊이 관여하도록 하는 집단에 최대다수의 사람들을 이끄는.
(3) 어떤 하나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치적 도구나 법적 도구를 재발견하고 재평가하며, 절제적 생활이 생기는 곳에 절제적 생활을 확립하고 옹호하기 위해 그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197-8

 

급격한 변화의 가능성

 

널리 공유된 다른 통찰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통찰은 공중의 상상력을 뒤집어놓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 여러 가지 대규모 제도는 참으로 갑자기, 공공이익에 봉사한다는 그 체면과 정통성과 명성을 상실할 수 있다. 이는 종교개혁의 경우 로마교회에, 프랑스 혁명에서는 왕권에 대해 생긴 일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 즉 사람들은 통치자의 목을 벨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명백하게 되었다. 급격한 변화는 피드백이나 진화와는 다른 종류의 상태다. 폭포 밑에 생기는 소용돌이를 관찰해보라. 갑자기 돌 하나를 폭포에 던지면 물 흐름 전체가 바뀌고 이전의 물 흐름은 다시 생길 수 없게 된다. 201

 

 

과잉생산사회의 위기가 더욱 첨예화될 때 그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반향을 얻으리라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은 특별한 선거기반을 갖지 못하지만 누구나 잠재적인 구성원인 어떤 다수파의 대변자다. 위기가 임박함을 예상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들의 뜨거운 소망은 더욱더 급격하게 하나의 계획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능력은, 그런 소수자가 위기의 근본성격을 잘 파악하는 정도와 그것을 유효한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정도에 달려 있다. 즉 그들이 바라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그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상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전복에 가장 중요한 요체다. ..현대의 산업주의적 환상의 붕괴야말로 그들이 유효하고 절제적인 생산양식을 선택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여러 집단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현 시점의 새로운 정치의 핵심과제다. 205-6

 

단지 재정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붕괴가 발생할 때 파국을 의미 있는 위기로 전환시키는 것은, 명료하게 사고하고 느끼는 사람들의 집단이 출현하여 동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해야 한다. 즉 절제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훈련받은 절차를 자각적으로 행사함에 의해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합법성, 그 대립을 낳은 역사적 선례, 동료들의 결정에 따를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제도혁명이, 그 달성목표가 법제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도구로 존속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 절제적으로 행사된 절차다. 즉 계속적으로 반관료주의적 의미에서 절차를 자각적으로 행사하는 것만이 혁명 그 자체가 하나의 제도로 변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이러한 절차를 사회의 모든 중요 제도의 역전에 응용하는 것을 문화혁명으로 부를까, 법의 형식구조의 회복으로 부를까, 참가사회주의라고 부를까, 스페인 전통법의 정신이라고 부를까는 단순한 명명의 문제일 뿐이다. 207

 

 

생산에 대한 산업주의적 지배가 암처럼 우월하게 되는 것을 우상숭배의 궁극적 형태로 탄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역사로부터 회복된 언어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고뇌를 느낀다. 그러나 오로지 언어는 그 약점에 의해서만, 불가피한 폭력을 절제적 재구축하는 식으로 혁명적으로 전복시키는 일에 다수 사람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213

 

뱀발.

 

1. 책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속화되는 제도의 억압으로 인해 빚어지는 현대사회의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탁월한 비전'이라고 말이다. 제도에 기술을 보태야만 할 것 같다. 1973년에 쓴 책이다. 40년. 40년 뒤에 세상은 달라져 있을 것인가? 일리히는 알콜이나 마약같은 중독으로 바라본다. 치유가 아니라 성장에 매몰된 환상은 현대기술로 인해 더욱더 증폭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당도 정치도 그 성장의 신화에 얽매여 도저히 다른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은 파멸로 치닫을 수 있으며, 그 멈춤은 종교개혁이 로마교회 밖을 상상해내듯이, 프랑스혁명이 왕권 밖을 생각해내듯이 전혀 다른 통찰로 이끌 수 있다고 한다.

 

2. 소수자가 늘 이 중독된 사회의 언저리에 있지만, 소용돌이에 돌맹이 하나가 그 흐름을 몽땅 바꿔놓을 수 있듯이 그런 계기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2008년 세계는 뒤흔들렸고, 지금도 그 여진에 들썩이고 있다. 작게는 지금여기도 성장만이 아니라 그 여파가 여기 혼자 잘하면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과 정치를 빌미로 제도에 기대는 환상은 여전하지 않는가? 과연 제도와 과학,기술을 우리의 구세주라고 여기는 순간 악은 소멸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3. 멈춰라, 생각하라의 저자 지젝은 말한다. 대중의 표현할 말들이 만들어지지 못해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 언어들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보잘 것이 없다. 늘 껍질을 깨트리지도, 그 알밖을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4. 줄탁동시. 세상은 인간의 걸음걸이보다 빨리간 제도와 과학기술을 그 속도로 다시 품어야하지 않을까? 인간의 숨결을 앗아 달아난 기술과 제도의 호흡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반관리연구라는 표현과 법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한다. 생산양식의 혼재, 준비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늦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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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2)
    from 木筆 2013-02-02 10:41 
    기술에 끌려갈 것인가? 기술을 끌고갈 것인가? 인간의 자발성을 계획화된 도구로 치환하는 것과 과학적 진보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일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지 과학적 분석의 결과가 아니다. 과학은 그것과 너무나도 정반대되는 목적에 응용될 수 있다. 진보된 '고도'의 기술은 노동을 절약하고 일을 강화하는 비집권적 생산성과 동일시될 수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개개인과 일시적 결사에, 전례 없는 자유와 자기표현을 향수하면서 자신들
  2.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1)
    from 木筆 2013-02-02 10:42 
    절제의 사회-공생의 사회, 살맛나는 사회 정치는 에너지나 정보의 동등한 투입이 아니라 오로지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최대의 산업적 산물의 분배를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일단 인식하게 되면 사람, 도구, 새로운 집단 사이의 삼각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사회, 현대기술이 관리자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인에게 봉사하는 사회를 나는 '절제의 사회'라고 부른다. 14 ( CONVIVIAL은 함께라는 뜻의 CON과 생생한이라는 VIVIAL을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