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1)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2)

대안제시로서 반관리연구

 

절제적 동력도구를 사용하여 최적의 자유를 추구하는 상상력적 정책의 탐구를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유용하다. 속도를 시속 16킬로미터로 제한하면 캘커타 교통의 흐름은 안정될 것이지만, 이는 누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국민의 이동속도를 시속 32킬로미터로 제한하면 페루의 군대는 얼마나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그 밖의 많은 수송수단을 자전거나 범선의 속도로 제한하면 평등, 활력, 건강, 자유에 어떤 이익이 생길 것인가? 162

 

반관리연구먼저 증대하는 한계비효용과 성장이 부여하는 위협을 분석하는 것에 관련되고 있다. 이어 절제적 생산을 최대화하는 제도적 구조의 일반 시스템의 발견에 관련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는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성장은 중독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헤로인 중독처럼 성장이라는 습관은 기본적 가치판단을 왜곡한다.....치솟는 판돈을 위한 도박에 몰두하기 때문에 좌절이 더 커지는 것에 눈이 멀어 있다....... 반관리연구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 연구는 공중의 눈앞에 지속적으로, 사용가능한 자원과,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사용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 연구는 삶이 의존하는 중요한 균형의 하나를 위협하는 동향이 나타나는 경우, 그것을 공중에게 강조해야 한다. 또 반관리연구그러한 경향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계급의 사람들을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그런 계급의 일원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연구는 다른 점에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갖는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에게 특정한 자유가 어떻게 위험하게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해야 한다. 나아가 반관리연구는 어떤 집단이나 동맹의 자유에 대한 요구도, 모두의 암묵적 이해관계와 일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 공중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 163-4

 

기업생산양식의 근본독점 수립과정

 

거인 사이의 필사적 게임은 게임 자체가 그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의례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만든다. 경쟁의 전투장이 확대됨에 따라 하나의 산업주의적 구조가 세계 모든 사회에 강제된다. 대부분의 기업적 생산양식은 자원과 도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동기부여의 구조에 대해서도 근본독점을 수립한다. 여러 정치체제는 서로 대립하는 신조에 대해 동일한 산업주의적 팽창을 세례하고자 경쟁하면서 그것들이 이미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깨닫지 못한다. 사회의 심층구조 차원에서 기업법인의 독점이 수렴되는 현상은 인간의 산업주의화라고 불릴 수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되고자 하면 이러한 조류는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 자체가 산업주의적으로 타락하여 이 논점을 정식화하기가 정말 어렵게 되었다.  176

 

인간을 관료적으로 관리하여 생존시키려는 것은, 윤리적 근거에서도 정치적 근거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에 선행하는 대중적 치료법도 마찬가지로 소용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관료적 관리에 복종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구증가와 자원감소의 증거가 늘어남에 따라 너무나 놀라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빅 브라더의 손에 넘길 수도 있다. 기술관료적 배려자가 모든 차원의 성장에 대한 한계를 설정할 수 있고, 그 한계를 그 이상의 성장이 완전한 붕괴를 뜻하는 점에 설정하는 것을 위임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악의 낙원은 산업주의 시대를,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고도 산출량 수준에서 유지시킬 수도 있다. 196

 

일반시스템 분석은 여러 제도의 파탄을 상호관련시켜 파악하는 것으로 신뢰를 얻고 있으나, 이는 단지 인구, 풍요, 비효율적 산업에 대한 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더욱 많은 계획화와 중앙집권과 관료제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제조업 부문의 실업은 의사결정, 통제, 구제책의 산출을 증대함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사람들은 지금도 산업주의와 기계제 생산에 매료되어 몇 가지 상이한 생산양식이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반산업주의적 사회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203

 

전면적 위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민족국가는 자기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복합체에 봉사하는 지주회사로 변하고, 정당은 위원회나 대통령을 선출할 때마다 그 주주를 조직하는 도구로 변했음이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은 개인의 소비수준을 더욱 높게 주장하고 이에 따라 산업주의적 소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강요하는 유권자의 권리를 지지한다. 가령 사람들은 자동차를 요구할 수 있지만, 자동차가 유용하다고 결정하는 교통체계가 사회의 모든 자원을 점유하게 되는 것은, 전문가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GNP 증가를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국가를 지지하는 정당은 전반적 붕괴의 시기에 오면 명백하게 무용한 존재가 된다. 211


언어의 식민화

 

남미에서는 어디에서나 노동자든 관료든 급료를 받는 피고용자만이 자신은 일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농부들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즉 " 그들은 일을 하지만 일을 갖지 않는다."...사람들은 지식, 이동, 심지어 감수성이나 건강조차 획득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이나 즐거움을 갖는다고 하며 심지어 섹스도 갖는다고 말한다. 동사에서 명사로 바뀌는 이러한 전환은 소유권 관념의 변화를 보여준다....완전히 산업주의화된 인간은 자신이 소유하는 것을 대체로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는 학교나 자동차나 쇼단이나 의사로부터 얻은 상품에 대해 '나의 교육', '나의 이동', '나의 오락', '나의 건강'이라고 말한다.  177..."나는 배우고 싶다"는 말은 "나는 수송기관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바뀐다. "나는 걷고 싶다"는 "나는 수송기관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바뀐다. 178

 

정치적 전복의 가능성

 

일상영어와 마찬가지로 절차라는 형식은 하나의 절제적 도구다. 산업주의적 제도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개인과 지역사회가 이러한 도구를 관습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그 지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언어와 절차형식은 그것이 사용되는 목적과는 본질적으로 여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언어와 법적 절차를 본래 자신들의 것으로 옹호할 수 있다....법의 형식적 구조는, 일반 시민이 가업의 이해관계와 대립하는 자신의 실제적 이해관계를 사회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 190

 

 

(1) 우리의 현위기의 성격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계몽하여, 여러 가지 한계가 필요하다는 것과 절제적 생활방식이 바람직함을 이해시키기 위한 구체적 절차를 명시하는 .
(2) 사람들이 검소한 생활방식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을 절제적 생활에 만족하게 하며, 따라서 그것에 깊이 관여하도록 하는 집단에 최대다수의 사람들을 이끄는.
(3) 어떤 하나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치적 도구나 법적 도구를 재발견하고 재평가하며, 절제적 생활이 생기는 곳에 절제적 생활을 확립하고 옹호하기 위해 그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197-8

 

급격한 변화의 가능성

 

널리 공유된 다른 통찰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통찰은 공중의 상상력을 뒤집어놓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 여러 가지 대규모 제도는 참으로 갑자기, 공공이익에 봉사한다는 그 체면과 정통성과 명성을 상실할 수 있다. 이는 종교개혁의 경우 로마교회에, 프랑스 혁명에서는 왕권에 대해 생긴 일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 즉 사람들은 통치자의 목을 벨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명백하게 되었다. 급격한 변화는 피드백이나 진화와는 다른 종류의 상태다. 폭포 밑에 생기는 소용돌이를 관찰해보라. 갑자기 돌 하나를 폭포에 던지면 물 흐름 전체가 바뀌고 이전의 물 흐름은 다시 생길 수 없게 된다. 201

 

 

과잉생산사회의 위기가 더욱 첨예화될 때 그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반향을 얻으리라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은 특별한 선거기반을 갖지 못하지만 누구나 잠재적인 구성원인 어떤 다수파의 대변자다. 위기가 임박함을 예상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들의 뜨거운 소망은 더욱더 급격하게 하나의 계획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능력은, 그런 소수자가 위기의 근본성격을 잘 파악하는 정도와 그것을 유효한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정도에 달려 있다. 즉 그들이 바라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그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상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전복에 가장 중요한 요체다. ..현대의 산업주의적 환상의 붕괴야말로 그들이 유효하고 절제적인 생산양식을 선택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여러 집단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현 시점의 새로운 정치의 핵심과제다. 205-6

 

단지 재정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붕괴가 발생할 때 파국을 의미 있는 위기로 전환시키는 것은, 명료하게 사고하고 느끼는 사람들의 집단이 출현하여 동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해야 한다. 즉 절제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훈련받은 절차를 자각적으로 행사함에 의해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합법성, 그 대립을 낳은 역사적 선례, 동료들의 결정에 따를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제도혁명이, 그 달성목표가 법제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도구로 존속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 절제적으로 행사된 절차다. 즉 계속적으로 반관료주의적 의미에서 절차를 자각적으로 행사하는 것만이 혁명 그 자체가 하나의 제도로 변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이러한 절차를 사회의 모든 중요 제도의 역전에 응용하는 것을 문화혁명으로 부를까, 법의 형식구조의 회복으로 부를까, 참가사회주의라고 부를까, 스페인 전통법의 정신이라고 부를까는 단순한 명명의 문제일 뿐이다. 207

 

 

생산에 대한 산업주의적 지배가 암처럼 우월하게 되는 것을 우상숭배의 궁극적 형태로 탄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역사로부터 회복된 언어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고뇌를 느낀다. 그러나 오로지 언어는 그 약점에 의해서만, 불가피한 폭력을 절제적 재구축하는 식으로 혁명적으로 전복시키는 일에 다수 사람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213

 

뱀발.

 

1. 책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속화되는 제도의 억압으로 인해 빚어지는 현대사회의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탁월한 비전'이라고 말이다. 제도에 기술을 보태야만 할 것 같다. 1973년에 쓴 책이다. 40년. 40년 뒤에 세상은 달라져 있을 것인가? 일리히는 알콜이나 마약같은 중독으로 바라본다. 치유가 아니라 성장에 매몰된 환상은 현대기술로 인해 더욱더 증폭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당도 정치도 그 성장의 신화에 얽매여 도저히 다른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은 파멸로 치닫을 수 있으며, 그 멈춤은 종교개혁이 로마교회 밖을 상상해내듯이, 프랑스혁명이 왕권 밖을 생각해내듯이 전혀 다른 통찰로 이끌 수 있다고 한다.

 

2. 소수자가 늘 이 중독된 사회의 언저리에 있지만, 소용돌이에 돌맹이 하나가 그 흐름을 몽땅 바꿔놓을 수 있듯이 그런 계기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2008년 세계는 뒤흔들렸고, 지금도 그 여진에 들썩이고 있다. 작게는 지금여기도 성장만이 아니라 그 여파가 여기 혼자 잘하면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과 정치를 빌미로 제도에 기대는 환상은 여전하지 않는가? 과연 제도와 과학,기술을 우리의 구세주라고 여기는 순간 악은 소멸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3. 멈춰라, 생각하라의 저자 지젝은 말한다. 대중의 표현할 말들이 만들어지지 못해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 언어들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보잘 것이 없다. 늘 껍질을 깨트리지도, 그 알밖을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4. 줄탁동시. 세상은 인간의 걸음걸이보다 빨리간 제도와 과학기술을 그 속도로 다시 품어야하지 않을까? 인간의 숨결을 앗아 달아난 기술과 제도의 호흡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반관리연구라는 표현과 법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한다. 생산양식의 혼재, 준비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늦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것일까?


댓글(0) 먼댓글(2)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2)
    from 木筆 2013-02-02 10:41 
    기술에 끌려갈 것인가? 기술을 끌고갈 것인가? 인간의 자발성을 계획화된 도구로 치환하는 것과 과학적 진보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일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지 과학적 분석의 결과가 아니다. 과학은 그것과 너무나도 정반대되는 목적에 응용될 수 있다. 진보된 '고도'의 기술은 노동을 절약하고 일을 강화하는 비집권적 생산성과 동일시될 수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개개인과 일시적 결사에, 전례 없는 자유와 자기표현을 향수하면서 자신들
  2. 살맛나는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도의 조련(1)
    from 木筆 2013-02-02 10:42 
    절제의 사회-공생의 사회, 살맛나는 사회 정치는 에너지나 정보의 동등한 투입이 아니라 오로지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최대의 산업적 산물의 분배를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일단 인식하게 되면 사람, 도구, 새로운 집단 사이의 삼각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사회, 현대기술이 관리자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서로 연결된 개인에게 봉사하는 사회를 나는 '절제의 사회'라고 부른다. 14 ( CONVIVIAL은 함께라는 뜻의 CON과 생생한이라는 VIVIAL을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