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 일과 삶의 균형 더블 라이프
데이빗 히넌 지음, 박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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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장을 덮으며 - 유명한 인물의 일과 삶의 균형을 다루었다. 흔한 성공서이고 참고할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  각박한 세상만큼 반사적으로 반대류의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는 것 같다. 더블 라이프, 그냥 투잡과는 다르다.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는 방법, 관심을 놓치지 않고 즐기듯이? 하지만 현실만큼이나 어려웁다. 르네상스시대의 천재들 만큼이나 종합적이고 다기능인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것, 하고싶은 것에 귀기울이고 조금씩 즐기는 것에 맘이 끌린다. 그래야 긴장도 줄고, 여유도 찾고 나름대로 호흡을 가져갈 수 있다. 가속과 집중, 미래의 기어에서 감속과 탈중심화, 현재라는 기어변속이 내 몸에도 좋고, 서로에게도 좋고, 공동체에도 좋다고 한다.



생각씨

1. “내일의 함정”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기쁨을 나중에 만끽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한다. 배우자와 접촉을 끊고,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도 이방인이 된다. 친구들도 없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거의 슬퍼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극도의 고립주의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지 못하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지 못하며, 미래를 위해 무엇을 변화시켜야 되는지 모른다. 그들은 “복잡하게 설계되었지만 스스로 만든 감옥”이라는 현재의 환경에 집착하게 된다.(29)


2.<과로하는 아메리카:예기치 않은 여가의 쇠퇴>-현대사회의 놀이는 전혀 없고 오로지 일만하는 생활이야말로 트레드밀 경제의 올바른 처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과로와 긴장으로 지쳐있다. 우리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 속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역사학자 스티브 컨이 “인류는 좀더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한 적이 없다”라고 지적한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지쳐있다.


3. “점점 늘어나는 새로운 미디어나 소비재들”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 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고 있고, 그로 인해 “가치 있는 경험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의 부작용 중의 하나로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인간적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중 속의 고독이나 동료애의 상실 등은 디지컬 경제로 인한 것이다. 기술은 훌륭한 하인이기도 하지만 고약한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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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4-12-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투잡이 아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라는 메세지가 마음에 들었죠 투잡책이었으면 신경질 날 뻔 했지 뭐예요 지금 하는 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일을 또 하라고라?? 오, 노죠, 노!!

여울 2004-12-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이 멀티잡에 시달리고 있지요. 몸이 남아날까? 걱정이 앞섭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경영인이나 심지어 소유주까지 더욱 더 많은 일을 강요하죠. 자기 증식을 위해 자신의 꼬리까지 잡아먹는 뱀처럼... 인류가 발명하거나 찾아낸 가장 최악의 시스템같아요. 자본가 자본가하지만 그들도 죽을 맛일 겁니다. 대리인들두 말입니다. 그래서 없어져야 되요. 적게 먹고, 분산하고... 그래도 잘 먹고 잘쓰고 잘 놀 수 있을 것 같은데...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너무 싫습니다.
 
잘 되는 회사는 분명 따로 있다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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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이렇게 평이한 내용으로도 책값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나역시 일터 비용으로 구입하였지만... ... 개개인의 능력보다 일터문화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다. “차별”과 “차이”, 회의는 길어도 되지만 결론을 내라. 동문회는 윤활유 역할만 하도록, 경영혁신기법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외부 컨설팅에 회사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등등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 하지만 그것을 분위기와 문화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더더구나 아니다.




책장을 뒤적이며 -이해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하라-일전 다니는 일터에서축전지사업에 무수한 자금을 들여 투자한 적이 있다.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사업을 이해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시피하였고 고전을 면치못하다 결국 막대한 자금만 날리고 말았다. 오너의 결단이니 어쩔 수도 없고... ... 다단계 판매로 성공한 직원은 없다. 사내에 주식투자 성공담이 떠돌지 않는다. 책보는 직원이 많은 회사, 술자리 예의만큼 업무예절이 반듯하다. 상사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는다. 자금부-회계부가 큰소리치지 않는다.실패한 자에게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이 있다. 등등 좋은 회사의 길은 좋은 인간의 길과 같다. 정말 좋은 인간의 길과 같다. 사람을 아끼고 사람에 대해 투자하고, 일할 맛나는 작은 것들이 조금은 재미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 일터들이 너무 유행에 민감하고 자신의 정체성도 모르고 철학도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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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생태학 동문선 현대신서 126
펠릭스 가타리 지음, 윤수종 옮김 / 동문선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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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 처음 제목을 들으며, 그냥 생태학이라고 여겼다. 초록, 녹색의 그런 이미지로 만 알고 얇은 책을 접어 들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세가지라는 것이, 환경-사회관계-인간주체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짐짓 심각해졌다. 넘기면 넘길수록 예사롭지 않은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하랴? 차라리 시작하지나 말 것을... ... 논의를 쫓아갈 능력도 되지 않지만 짧은 논문은 더욱 더 녹녹치 않다. 거듭 되돌아 보지만 생각그물에 걸리는 것이 많지 않다. 나의 엉성한 그물때문이리라.




책갈피를 다시보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분석보다도 환경-사회-개인에 이르는 통합적 분석과 미학-윤리적 접근이 더욱 마음에 든다. 대중매체의 돌진에 비껴남, 미시적 사회적차원에서 대안적인 삶, 여러 가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발명’과 주체를 둘러싼 지나쳐버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간’이나 ‘죽음’‘몸’에 대해 창조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고민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무지로 인해 얼마나 내것으로 가져올지 모르겠다. 알 때까지 재독해볼까? ‘재발명’‘과정’ 모두 용어자체로도 스스로에겐 소중하다.




생각씨


1.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진정한 답은 지구적인 규모에서 그리고 물질적이고 빗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이라는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나가는 진정한 정치-사회-문화 혁명이 일어난다는 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9) 세가지 생태학의 공통적인 원리는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영토가 자폐적인 즉자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거주 가능’한 것으로허용하는 실천에 입각하여 과정적 개방에로 향하는 식으로 분기할 수 있는 불안정하고, 유한하고, 유한화된, 특이한, 특이화된 대자로서 주어진다는 것에 있다.(38)


2. 적대들 및 특이화 과정들의 폭발, 탈중심화(분산),감속이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생태학적 문제설정이 떠오르고 있다.(14)


3. 사회적 생태철학 - 커플사이에, 가족-도시생활-노동 등의 존재 방식을 수정하고 재발명하는 데로 나아가, 단순히 ‘소통적인’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체성의 본질에 관련한 실존적인 돌연변이(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영역에서는 대규모 제도적인 수준에서 뿐만아니라 미시 사회적 수준에서도 실효성있는 실험적 실천을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15) 자본주의 권력이 지역을 벗어나 탈영토화되고, 바깥으로는 지구상의 사회-경제-문화 생활 전체에 세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안으로’는 가장 무의식적인 주체적 지층들 내부에 침투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 경우 자본주의 권력에 대해서 단순히 외부로부터 조합활동이나 전통적인 정치활동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개인-가정-부부의 일상 생활에 둘러싸이고, 이웃 관계-창조-개인적 윤리에 둘러사인 정신생태학의 영역에서 자본주의 권력의 효과들에 대결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필요하게 되었다. 바보스럽고 유치한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불일치와 실존의 특이한 생산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34)


4. 정신적 생태철학 - 신체-환상-지나간 시간(과거)-생과사의 ‘신비’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재발명하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은 대중 매체나 정보 통신의 획일화에, 향동 양식의 순응 태도에, 광고와 각종 조사에 의한 여론 조작에 해독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의 실행 방식은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방식보다도 예술가의 방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16) 프로이트적인 사실을 ‘넘어서’든가 그것에 대해서 확정적인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과 실천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서 그것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과거에 전면적으로 착상되어 있는 주체성에 대한 구조주의 이전의 집착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현재의 과제이다. ‘미래지향적’이거나 ‘건설지향적’인 가상의 장을 발굴하는 것이 요청된다.(20)


5. 사회체-정신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더 악화되는 경향은 있지만 개인들 및 권력들의 무지와 숙명론적 수동성 때문이기도 하다.(23) 과학과 기술이 더욱 인간적인 목표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다 집단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요청된다.(24), 한편 낡은 생활 양식의 부흥을 기도하기 위해 뒤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 자연은 문화와 구분될 수 없으며 우리는 생태 체계, 기계권,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준거 세계간의 상호 작용을 ‘횡단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26)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가 가져온 피해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사회 기구의 대대적인 재건이 필요하다. 단 그러한 재건은 정상에서의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이성의 존중과 주체성 생산의 항상적인 작업에 집중된 혁신적인 실천의 촉진과 대안적인 경험의 축적이 사회의 나머지에 적절하게 접합되면서 전적으로 자율화됨으로써 실현된다.(46)


6. 담론 집합체의 논리가 자신의 대상을 명확히 밝히려고 제안하는 반면, 강렬도의 논리난 생태논리는 변화과정의 움직임과 강렬도만을 중시한다.내가 여기서 체계나 구조에 대립시켜 사용하고 있는 과정은 동시에 스스로를 구성하고 정의하고 그리고 탈영토와해 가는 실존을 말한다. 생태학적 실천은 각각의 부분적인 실존적 근거지에서 주체화와 특이화의 잠재적 벡터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27)


7. 사회생태학과 정신생태학이 맞서야 하는 중요한 분석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억압권력을 피억압자 쪽에서 장악하는 것이다. 그 경우 커다란 어려움은 조합과 당이 그들 자신의 대열 안에 모든 표현의 자유나 혁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동일한 병인적인 모델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에 있다.


8. 자본주의 사회는 세가지 유형의 주체성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다.(봉금생활자 계급에 일치하는 계열적인 주체성, 보장없는 방대한 대중에 일치하는 주체성,지배계층에 일치하는 엘리트적인 주체성) 사회전체에 대한 대중 매체 지배의 가속화는 항상 이 다양한 주민 범주 사이에 더욱 명료한 간격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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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보는 미국 살림지식총서 83
채동배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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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 법조인의 기득권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왜 이런 특혜가 공공연히 아무일 없는 듯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미대륙에서 남북전쟁후 소송의 증가와 법률대학원의 필요성을 느꼈을 터이고, 1-3년과정, 또는 학부포함하여 4년과정으로도 충분하였다고 하며, 초창기 웅변술위주로 가르쳤다고 한다. 정식 대학원이나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사용하여 판례중심의 교육과정은 2차대전이후에나 체계화된 것이라 한다. 2003년 현재 290명당 한명이 법조인이며 년간 졸업생의 75%정도가 합격하여 36,000명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저변의 확대로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익법과 빈민법분야의 변호사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1년에 천명뽑는다고 되겠는가? 수험생으로 전전해야하는 인권은 어떻게 하냐는 저자의 물음에 다시한번 관심을 갖게 된다.




책갈피를 다시보며 - 저자는 이어 한국의 사법개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참 논의중인 로스쿨,배심원,제도, 검찰의 구조조정을 통한 권한의 아래로 위향과 피의자의 인권, 검찰수사의 수사관 위임 관행 중지, 평검사의 수 확보를 통한 검찰행정의 재정립, 판사가 사임할 때 2년간 사적취업금지하나 봉급지원, 법관은 로스쿨졸업후 8-10년 사회경험이 있는 친구로까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솔깃한 구석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씨


1.“우리의 역할은 법률을 이용하여 빈민의 배를 부르게 하는 일이다.”(11) 폴랙


2. 세 사람만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헤보다 낫다고 하였다. 대개의 경우 판사 한사람의 결정보다 배심원 12명의 판결이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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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와 상상력 살림지식총서 98
박기현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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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상상력” 연구센터는 무엇을 연구할까? 학문의 수평적, 종합적 사고가 없으면 이것에 대한 연구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상상력에 방점이 찍혀있을까? 바슈라르가 과학의 엄밀성?을 추구하면서 진리라는 것을 추구하면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이외의 모든 것을 제거하면서 결국 다다른 것은, 쿤의 패러다임의 변화에서처럼 인식의 커다란 단절은 상상력이나 이성의 진리의 다양성을 틀 속에 넣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오히려 관심사는 상상력의 부재, 현실의 기계적 사고나 행동의 틀에 얽매여 있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나 심미적, 미학적 접근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틀에 박힌 경직된 사고와 이성이나 계파라는 접근이 얼마나 현실을 옭아매는지에 관심이 더 간다. 그리고 지인의 신화에 대한 관심에 “체, 별 것을 다 관심을 갖네?”“만화같은 사고로만 은연중에 치부하였는데, (부끄)”




책갈피를 다시보며- 사회활동에 매진하거나 일터의 일에 침잠해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가끔은 상상력이 있는가? 과연 마음은 한가한가?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지는 것일까? 자문을 하게 된다. 문화와 창발성과 활동에 미학,예술적 접근은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현실이라는 핑계로 프로메테우스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씨-


1.질베르 뒤랑은 ‘상상력의 인류학적 구조’를 밝히고자 하는 야심으로 문학,철학,인류학,사회학,종교학,정신분석학 등 모든 인문과학을 한데 아우르는 큰 틀로서 상상력 연구를 기획했다.(10)


2. 뒤랑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이면서 예술적인 상상계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뒤랑은 그러한 상상계의 변하가 주기적이며 리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작품, 문학, 미술, 영화 등을 통해 나타나는 한 시대의 지배적 상상계는 강의 순환구조로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3. 뒤랑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서양이 프로메테우스와 디오니소스, 그리고 최근에는 헤르메스라는 세 신화의 구조가 이어져 지배해왔다고 지적한다. 19세기 유럽의 문화와 회화들에서 프로메테우스적 신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바, 이 시기의 유럽은 바로 근대성의 시기이며, 산업적으로 발달과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디오니소스의 상상계로 불릴 수 있다. 디오니소스야말로 소비사회의 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종 도시의 폭력이라든가 1970년대 사회 내의 혼란이 횡행했던 시대이다. 뒤랑에 의하면 약 20년전부터 이제는 아마도 교환과 소통과 순환의 신인 헤르메스가 지배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75)


4. 합리성과 이성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며 상상계와 합리성 사이에 진정한 대립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음으로써, 과학적인 것과 상상계적인 것이 대립된다고 보았던 바슐라를를 뛰어넘게된다.(76)


5. 문화는 경험을 사고로, 사고를 다시 언어를 비롯한 예술적 표현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실천의 결과로 높이 평가된다. 문화는 고도의 창조성과 예술성을 지닌 것으로 정의되며, 사회의 문제점과 지향점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인식된다.(9)


6.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이, 소위 추상화를 지향하는 객관적 인식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식론적 방해물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인식론적 방해물은 인간이 이 세상과 정서적으로 결합하는 최초의 인식방식으로서 과학적 인식과는 다른 창조성과 현실을 갖는다. 상상력의 힘, 이미지와 현실을 변형하고 창조하는 그러한 상상력의 힘은  최소한 세 단계의 역동적 층위에서 작용한다.(56)


7. 바슐라르가 발견한 상상하는 자아, 상상하는 주체는 사고하고 분석하는 주체와 대립하면서 그에 균형을 취해주는, 인간 의식활동의 한 부분이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와의 은밀한 일치(화합)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다.(59)




궁금티- 헤르메스와 비유?, 바슐라르와 뒤랑의 상상계-합리성에 대한 견해차이?, 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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