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생태학 동문선 현대신서 126
펠릭스 가타리 지음, 윤수종 옮김 / 동문선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책장을 덮으며 - 처음 제목을 들으며, 그냥 생태학이라고 여겼다. 초록, 녹색의 그런 이미지로 만 알고 얇은 책을 접어 들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세가지라는 것이, 환경-사회관계-인간주체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짐짓 심각해졌다. 넘기면 넘길수록 예사롭지 않은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하랴? 차라리 시작하지나 말 것을... ... 논의를 쫓아갈 능력도 되지 않지만 짧은 논문은 더욱 더 녹녹치 않다. 거듭 되돌아 보지만 생각그물에 걸리는 것이 많지 않다. 나의 엉성한 그물때문이리라.




책갈피를 다시보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분석보다도 환경-사회-개인에 이르는 통합적 분석과 미학-윤리적 접근이 더욱 마음에 든다. 대중매체의 돌진에 비껴남, 미시적 사회적차원에서 대안적인 삶, 여러 가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발명’과 주체를 둘러싼 지나쳐버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간’이나 ‘죽음’‘몸’에 대해 창조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고민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무지로 인해 얼마나 내것으로 가져올지 모르겠다. 알 때까지 재독해볼까? ‘재발명’‘과정’ 모두 용어자체로도 스스로에겐 소중하다.




생각씨


1.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진정한 답은 지구적인 규모에서 그리고 물질적이고 빗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이라는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나가는 진정한 정치-사회-문화 혁명이 일어난다는 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9) 세가지 생태학의 공통적인 원리는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영토가 자폐적인 즉자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거주 가능’한 것으로허용하는 실천에 입각하여 과정적 개방에로 향하는 식으로 분기할 수 있는 불안정하고, 유한하고, 유한화된, 특이한, 특이화된 대자로서 주어진다는 것에 있다.(38)


2. 적대들 및 특이화 과정들의 폭발, 탈중심화(분산),감속이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생태학적 문제설정이 떠오르고 있다.(14)


3. 사회적 생태철학 - 커플사이에, 가족-도시생활-노동 등의 존재 방식을 수정하고 재발명하는 데로 나아가, 단순히 ‘소통적인’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체성의 본질에 관련한 실존적인 돌연변이(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영역에서는 대규모 제도적인 수준에서 뿐만아니라 미시 사회적 수준에서도 실효성있는 실험적 실천을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15) 자본주의 권력이 지역을 벗어나 탈영토화되고, 바깥으로는 지구상의 사회-경제-문화 생활 전체에 세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안으로’는 가장 무의식적인 주체적 지층들 내부에 침투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 경우 자본주의 권력에 대해서 단순히 외부로부터 조합활동이나 전통적인 정치활동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개인-가정-부부의 일상 생활에 둘러싸이고, 이웃 관계-창조-개인적 윤리에 둘러사인 정신생태학의 영역에서 자본주의 권력의 효과들에 대결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필요하게 되었다. 바보스럽고 유치한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불일치와 실존의 특이한 생산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34)


4. 정신적 생태철학 - 신체-환상-지나간 시간(과거)-생과사의 ‘신비’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재발명하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은 대중 매체나 정보 통신의 획일화에, 향동 양식의 순응 태도에, 광고와 각종 조사에 의한 여론 조작에 해독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의 실행 방식은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방식보다도 예술가의 방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16) 프로이트적인 사실을 ‘넘어서’든가 그것에 대해서 확정적인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과 실천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서 그것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과거에 전면적으로 착상되어 있는 주체성에 대한 구조주의 이전의 집착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현재의 과제이다. ‘미래지향적’이거나 ‘건설지향적’인 가상의 장을 발굴하는 것이 요청된다.(20)


5. 사회체-정신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더 악화되는 경향은 있지만 개인들 및 권력들의 무지와 숙명론적 수동성 때문이기도 하다.(23) 과학과 기술이 더욱 인간적인 목표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다 집단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요청된다.(24), 한편 낡은 생활 양식의 부흥을 기도하기 위해 뒤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 자연은 문화와 구분될 수 없으며 우리는 생태 체계, 기계권,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준거 세계간의 상호 작용을 ‘횡단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26)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가 가져온 피해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사회 기구의 대대적인 재건이 필요하다. 단 그러한 재건은 정상에서의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이성의 존중과 주체성 생산의 항상적인 작업에 집중된 혁신적인 실천의 촉진과 대안적인 경험의 축적이 사회의 나머지에 적절하게 접합되면서 전적으로 자율화됨으로써 실현된다.(46)


6. 담론 집합체의 논리가 자신의 대상을 명확히 밝히려고 제안하는 반면, 강렬도의 논리난 생태논리는 변화과정의 움직임과 강렬도만을 중시한다.내가 여기서 체계나 구조에 대립시켜 사용하고 있는 과정은 동시에 스스로를 구성하고 정의하고 그리고 탈영토와해 가는 실존을 말한다. 생태학적 실천은 각각의 부분적인 실존적 근거지에서 주체화와 특이화의 잠재적 벡터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27)


7. 사회생태학과 정신생태학이 맞서야 하는 중요한 분석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억압권력을 피억압자 쪽에서 장악하는 것이다. 그 경우 커다란 어려움은 조합과 당이 그들 자신의 대열 안에 모든 표현의 자유나 혁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동일한 병인적인 모델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에 있다.


8. 자본주의 사회는 세가지 유형의 주체성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다.(봉금생활자 계급에 일치하는 계열적인 주체성, 보장없는 방대한 대중에 일치하는 주체성,지배계층에 일치하는 엘리트적인 주체성) 사회전체에 대한 대중 매체 지배의 가속화는 항상 이 다양한 주민 범주 사이에 더욱 명료한 간격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