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침이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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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얄팍하게도 나는,
몇 살이세요? 라는 질문에 매우 자주 '80년생이요'라고 답한다. 스물 여덟,이라고 답하는 일보다 더 잦은 일이다. 이유는 이 리뷰를 읽는 분이 80이라는 숫자와 스물 여덟 이라는 두 단어를 보며 느꼈을 차이 그대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일 수록, 고맙게도 80년대 생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 주시는 경향이 짙다.
김애란의 새 책을 접한 문단의 반응은 극찬에 가까웠다. 어떻게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입을 모은 듯한 찬사,는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도 김애란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떻게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글에 공감하며,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다. 모두가 이렇게 다함께 입을 모아 김애란을 사랑하고 있는 줄은 결단코 몰랐다.
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김애란이 79년생만 됐었어도 또 문단에서 갖는 의미는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80이라는 숫자가 주는 메리트의 수혜자인 나는 심히 공감했다. 김애란이 문단에서 이런 메리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애란에 대한 이런 찬사 속에는 80년생, 어린 그녀가 소설을 참 잘쓰네, 하는 '대견함'이 덧입혀진 것 같다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아마 내가 2000년생의 소설을 보게 되는 날, 나도 그런 대견한 시선으로 작가를 바라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나는 그녀가 대견함 속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스물 여덟은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이다. 다행인 건 그녀도 자신을 바라보는, 대견하게 여기는 눈으로 발랄해 주기 바라는 시선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최근 한 잡지를 통해 읽은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우리 세대의 '발랄함'이 아닌, 우리 세대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침이 고인다,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달려라 아비에서의 통통 튀던 문체에서 한발짝 나와, 조금 숨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깊어졌다. 장난처럼 '얘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하고 싶을 만큼. 단편 단편의 인물들은 서로 닮아 있고, 또 나조차 가끔 잊는 나와도 닮아 있다.
침이 고인다 속 단편들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상에 있는 자그마한 나의 공간, 혹은 누군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해, 작품마다 의미를 다르게 하여 참 잘 썼다. (참 잘 썼다,라는 표현이 좀 평범하고 무책임해 보일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참 잘쓰네,라는 생각을 계속 했기에 이렇게 표현해 본다) 누추하나마 내게는 지상에 나의 공간이 허락돼 있기에 방한칸이 절절했던 기억은 없지만, 여러모로 공간이 주는 아련함을 나 역시 가지고 있고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쉽게 쓰여진 글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쉽고 편하게 읽힌다는 건 김애란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문단에서 그녀에게 주는 지금만큼의 찬사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느낌은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김애란이 80년생 소설가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게 퍽 고맙다. 적어도 그 작가를 내가 좋아할 수 있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내놓을 이야기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김애란이 고맙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