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일주일간을 정신 못차리게 아팠다.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온몸에 열이 뜨겁게 오르던 열감기를 시작으로, 그 이후 나를 더 고생시킨 열감기 후유증 위 기능 장애까지. 그렇지 않아도 없는 휴가에, 동료가 출산휴가를 떠난 악조건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여러 번 써야만했고, 애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고생해야했으며, 그 무엇보다 나 역시 너무 고생이었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잔병이야 여러 번 치렀지만 이렇게 정신 못차리게 아파본 건 처음이었다.

날씨가 눈이 부시게 좋던 토요일 어제는 혼자 병원으로 걸어가 링겔을 맞으면서 병실에서 좀 울었다. 세상에 이게 왠 청승. 내가 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 아름다운, 진정 봄같은 이런 토요일에 병실에서 링겔을 맞고 있어야 되는건가,라는 생각에서 울었던 거였는지, 링겔 두번에 봄바람처럼 날아가버린 봄원피스값이 아까워서 울었는지, 그냥 혼자 아픈 게 서러워서 울었는지, 도무지 원인은 모르겠다. 암튼, 뭔가 서럽고, 뭔가 슬프고, 뭔가 외롭고, 아파서 죽겠는, 뭐 그런 잔인한 봄날이었다.

내 목소리를 듣자 친구는 깜짝 놀라 달려왔다. 평소 골골대기로 유명한 이 녀석은 병자 9단인데, 과부가 홀아비맘 안다고, 많이 아파본 녀석이기에,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을 꼭 붙잡고, 너 그동안 많이 아파서 진짜 진짜 힘들었겠구나, 라며 뒤늦은 공감과 동정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또 아프기 하면 병자9단 B양과 배틀 붙어도 좋을 G언니 역시 여러모로 많이 도와 주었는데, 역시 아픈 순간,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파본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나 역시 건강했던 것을 이유로, 누군가 아플 때, 그게 얼마만큼 아픈 건지 잘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적어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조금 성숙한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친구가 끓여놓은 보리차와 흰죽 덕분에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어제는 흰죽 두숟갈을 겨우 먹는 수준이었다. 그저께는 그조차도 못먹고 100% 다 토해버리는 상황이었고. (한의원에서 먹으라고 알려준 설탕물까지 다 토해버렸으니...) 오늘은, 드디어 점심에 흰 죽 한컵을 거뜬히 다 먹었다. (그래봐야 평소 식사 1/4 수준이다.) 물론 지금도 5분만 앉아있으면 머리가 띵하고 기운이 떨어져 그대로 침대 직행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많이 나아진 거다. 빨리 빨리 나아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버티고 있다. 어이없게도 내가 먹고 싶은 건 딸기, 파인애플통조림, 바닐라아이스크림 뭐 이런 것들이다. 나는 아플 때 먹고 싶은 게 몸이 진정 원하는 거라는 이상한 이론을 믿고 있었던 터라, 그간 위기능 장애가 있는줄도 모르고,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 먹었다가 몸을 더 망가뜨린 위인이므로, 이번에는 꾹꾹 참아 당당하게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입의 호사를 누리리라.


아. 오늘도 날씨는 잔인하게 좋다. 다음부터는 좀, 무지하게 춥거나, 무지하게 더운 날 아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도 그런 날 아파보지 않은 무지한 자의 발언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3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0-04-2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웬디양님. 그정도인줄 몰랐네요. 저는 그저 단순 감기인줄 알았는데, 왈칵 울어버리고 싶게 만들정도로 아팠군요.

맛있는거 먹어서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충분히 맛있는거 먹어야죠. 조만간 만나서 몸에 좋은 돼지고기 잔뜩 먹어요. 그리고 아프지 말아요. 혼자 있을때는 특히 아프면 더 서럽잖아요. 아프지 말아요, 웬디양님.

웽스북스 2010-05-02 06: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 맛있는 거 먹어야 건강해지는 거래요. 그리고 고기 많이 먹어야 낫는 병. 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이런 웰빙 병이라니. ㅎㅎㅎㅎ 환자식에도 매끼 고기가 나오고 있어요. 흐흐.

Alicia 2010-04-2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돼지고기는 체질에 따라서 안맞는 사람도 있어요;;
언니 제발 뭐 하지 말고 가만히 쉬어요. 몸 좀 아끼구-
조만간 또 같이 딸기 먹어야겠네! 아프지 말아요.♡

웽스북스 2010-05-02 06:37   좋아요 0 | URL
헤헤헤. 병실에서 딸기는 정말 지겹도록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맛있어. 너무 좋아. 딸기. ♡

마노아 2010-04-2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후유증 중 하나일까요. 돌봐줄 사람 없을 때 이렇게 아파버리다니, 야속하고 서러울만 해요. 지금은 좀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에요. 어여 다 나아서 맛난 것 모조리 섭렵해 버리세요!!

웽스북스 2010-05-02 06:38   좋아요 0 | URL
네. 얼른 나아서 맛있는 거 다 먹어야지.
이렇게 아파버린 바람에 야심찬 나의 독립이 사람들에게 구박 받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어요. 아아아. ㅜㅜ

마그 2010-04-2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능 언능 나아요 제발. 나으면 진짜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드리께요. ^^

웽스북스 2010-05-02 06:38   좋아요 0 | URL
마그님이 진짜 맛있는 이라고 하면 진짜 기대되는 거 아시죠?
(라며, 기대치를 잔뜩 올린다 ㅋㅋㅋㅋ)

2010-04-25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2 0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10-04-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웬디양님 아프지 마세요. 아흑아흑.

웽스북스 2010-05-02 06:39   좋아요 0 | URL
아흑아흑. 이매지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pjy 2010-04-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찮아서라도 안가는 병원에 가서 주사맞은 1人 추가입니다..요새 유행하는 그 무기력 열감기에 걸렸고, 설사를 반복했으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절대적인 식욕?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있는중입니다ㅋㅋ 역시 사람은 먹어야 기운이 납니다!

웽스북스 2010-05-02 06:41   좋아요 0 | URL
pjy3926님. A형 간염 예방 주사도, 주사맞으신 김에 가서 꼭꼭 맞으세요.
이거 진짜 힘들어요. 어휴.

개인주의 2010-04-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마셈.. 일단 아프면.. 서럽고 기운 떨어지고
먹는거 조절해야하는 큰 고통이..
안아픈게 장땡입니다.

웽스북스 2010-05-02 06:4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더라고요. 스누피님도 아프지 마세요.
먹는 거 조절. 옆 병상에 계신 분들 보니, 정말 그게 고통도 그런 고통이 없더라고요. 흑흑. (저는 아무거나 먹고 있어요. 커피만 좀 참고 있을 뿐)

레와 2010-04-25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웬디양님.
내가 봄을 꽉 잡고 있을께요. 얼른 나아서 봄을 즐겨요.

아프지 말아요.::;;

웽스북스 2010-05-02 06:45   좋아요 0 | URL
레와님이 봄 잡고 있어서,
그 동안 봄이 주춤하느라 추웠구나.

매직 레와님~
이제 좀 따뜻해지게 해주세요~

2010-04-25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2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04-2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저도 그냥 허리가 좀 삐끗, 혹은 몸살 정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이런.
혼자일 때 아픈 건, 먹거리 때문에 가장 서러운데, 누군가 와서 보리차와 흰죽도 해주었다니 다행이에요. 봄이라서 앓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침 저녁 날씨가 들쭉날쭉 개판 치구, 그 와중에 마음도 이것저것 신경 많이 쓰면, 몸이 그냥, 에라이 자빠지자 이렇게 될 수도.
쾌차 기원!

웽스북스 2010-05-02 06:47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그런데 또 저것도 아니고. 하하하. 격동의 병. ㅋㅋㅋㅋㅋ
찜질은 위 때문에 받았던 거였어요. 아직 허리삐끗, 은 해본 적 없는데, 이것도 엄청 괴롭겠죠? 아.. 그냥 무조건 아프지 말아야해.

도치 2010-04-2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이 아프셨군요. 빨리 쾌차하셔서 남은 봄을 즐겨보세요.

웽스북스 2010-05-02 06:4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해요 도치님.
좋은 봄, 보내고 계시죠?

굿바이 2010-04-2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파인애플통조림, 바닐라아이스크림 사줄테니, 아프지마라.

웽스북스 2010-05-02 06:48   좋아요 0 | URL
파인애플통조림 포도로 퉁치고. 통과.
언니 덕분에 맛있게 잘먹었어요. ^-^

BRINY 2010-04-2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하셨는데 아프셔서 더 기분이 안좋으셨겠어요. 이게 다 날씨 때문이에요. 잘 드시고 기운내세요.

웽스북스 2010-05-02 07:14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브라이니님. 잘 먹고 기운차리고 있습니다. 으쌰으쌰.

또치 2010-04-2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위에 '도치'님도 계시네)
이번 봄엔 안 아픈 사람이 드무네요. 이게 다 ... 그놈 때문!
아플 때 먹고 싶은 거 있음 저도 아낌없이 먹어준답니다. 지지난주에 감기 걸렸을 땐 날마다 딸기 1kg씩 먹었어요. 잘 챙겨먹고 얼렁 기운 차리세요. 예쁜 원피스 입고 나들이도 해야죠.

웽스북스 2010-05-02 07:15   좋아요 0 | URL
아아. 올 봄 원피스 한장 못사고 지나가고 있어요.
이게 다 그놈때문이에요. ㅎㅎㅎㅎㅎ (누굴까)

순오기 2010-04-2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생활이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페이퍼!
이래서 부모 슬하에 있을 때가 좋은 거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욧~~ ^^
웬디양님 많이 아팠다는데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모성애의 궤변을 눈감아주실거죠?
어여 털고 일어나 맛난 것 많이 드시고 원기를 회복하세요.
아~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먹고 싶은 건 아닐까....

웽스북스 2010-05-02 07:16   좋아요 0 | URL
그런 소리 이번에 많이 들었어요. 하하핫.
엄마들의 존재증명. 인 셈이죠

멜라니아후니엄마 2010-04-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떤 사람의 글에 보면 많이 아프다 하잖아요
죽게 죽게 아픈 상태, 살짜기 그런 아픈 상태를 그려보면서
나도 퍽 하고 쓰러지게 아파봤으면 했다가 그 일을 기도처럼 응답 받았을 때
건강한 게 어떤 맛인지 쓰리게 알았었지요.

이제 막 그리웁지요?
건강한 웬디의 모습이 남의 것 같으면서 언제면 그때로 돌아갈꼬..

우선 따뜻하게 하시고, 뭐든 따뜻한 음식을 잘 드셔야 해요
집안도 따뜻하게.. 이런 걸 온열 요법이래요

딸기 좋겠지만, 아직도 하우스 딸기니까 그리 좋은 거 아니구요
아이스크림은 여름 과자이니 여름에 드시구요.
이거 지키는 거 잘 하셔야지, 빨리나아요

그런데 빨리 나을 거에요 젊잖아요
얼른 쾌차 하시고 나면, 더욱 더 사랑받으실거에요
그 사이 웬디님 없는 세상을 겪어 본 사람들이
이제 절대 안 아프게 잘 모셔줄 것 같아요.

이 아픈 상황에도 이걸 글로 써내는 웬디님
역시 웬디님은 글의신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글귀신이 붙어 있는 거에요

이불 아래를 보세요
납짝 엎드려있네요 기지개 펼라하네요 으흐^^

웽스북스 2010-05-02 07:17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좀 아파보고 싶었고, 심지어 입원에 대한 로망도 있었는데,
이렇게 아파버리니, 안아픈게 참 좋다,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나저나 이 글 읽고 진짜 침대 밑 봤잖아요. 하하하하.
글귀신, 에에에 없어요 그런거.
전 그냥 탱자탱자. 룰루랄라. ㅎㅎ

風流男兒 2010-05-0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한여름에 오한걸린적 있었는데, 확실히 하나도 안덥긴 하더이다.
그렇다고 무덥고 무지추울 때 아픈게 그나마 낫다는 소리는 아니고..
아이스크림 사드릴테니, 빨리 나아요



웽스북스 2010-05-02 07:18   좋아요 0 | URL
아이스크림, 며칠전에 1층 내려가서 하겐다즈 커피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요. 먹고 탈나긴 했지만, (이 와중에) 너무 맛있어서 그날 저의 구원이 되어주었지요. 전, 앞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도 하겐다즈만 먹을테야,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결심을 했는데.

앗싸. 꼭 사주세요. ㅎㅎㅎㅎ

2010-05-02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0-05-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지난주 마~~이 아팠어요 ㅠ.ㅠ 그런데 열은 안나서 입원은 생각도 안했는데 웬디양님은 나는 댈것도 아니게 아팠군요 ㅠ.ㅠ
지금은 좀 괜찮나요? 그래도 잘 먹어야 빨리 회복될텐데.. 어여 건강 되찾으셔서 황홀한 5월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