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베르단디의 서재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마음공부와 함께 옛사람들의 발자취(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즐겨 읽는 책들도 역사-인문 교양서뉴에이지-영성수련서라는 두 그룹으로 압축되는 편이랍니다.

끄적대는 글이 늘어나다 보니 뭔가 틀을 만들고 싶어지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곳을 찾는 손님들께서 제 서재 구조를 이해하고 구경하시기에 편하도록 이 안내문을 만들었습니다.

 

1. 마이리스트

마이리스트 설명 맨 끝의 기호는 (리뷰란에 리뷰를 쓴 책/ 마이페이퍼에 리뷰를 쓴 책/ 담긴 책)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3/1/10)이라면, 담긴 책은 10권인데 그중 3권에 대해서 리뷰란에, 1권은 마이페이퍼에 리뷰를 썼다는 뜻입니다.

리스트에 수록된 책들 가운데 리뷰를 쓴 책은 코멘트 앞에 (R) 표시를 써서 표시했습니다.

마이리스트의 얼굴로 나와 있는 책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가장 주요한 기능은 다음 리뷰로 가장 유력시되는(혹은 현재 읽고 있는) 책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미 리뷰가 작성된 책이 어느 리스트의 표지로 나와 있다면, 그 리스트에 속한 책들은 현재 독서를 하지 않고 있거나 관심이 좀 멀어진 상태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리스트 성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

고구려는 민족사의 미래다 :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관심을 끌고 있는 고구려사와, 넓은 범위의 관련 책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단순히 고구려라는 국가에 관한 책들만이 아니라 고구려의 전신 부여, 후신 발해, 갈라져나간 백제 등 넓은 의미의 예맥-부여계 민족집단의 실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공간입니다. 저는 일본의 야마토국가까지를 부여계 민족집단으로 보고 있어 그에 관한 책들은 여기에 포함시켰습니다.

한국사, 교양 플러스 알파 :구려, 발해, 백제사를 따로 떼어내 모양새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교양으로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을 위주로 모았습니다. 통일신라 이후의 역사를 위주로 합니다.

대륙의 심장, 초원의 유혹 : 유라시아대륙 중앙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지대, 그곳에서 성장하고 사라져간 유목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들을 모았습니다.

대지의 숨결, 자연의 가르침 : 생태주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한 책들을 골랐습니다. 뉴에이지 사상 가운데 도시적인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뉴에이지 자기계발서>로, 자연친화적인 성격이 강한 것들을 이쪽으로 뽑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신비로 가득한 세계 : UFO, 외계인, 초고대문명, 심령과학, 초능력, 영혼과 전생 등 신비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 책들 모아놓았습니다.

뉴에이지 자기계발서 :  뉴에이지 책들 가운데 지나치게 황당한 미래관이나 깊은 종교적 색채가 없는 것들을 골랐습니다. 물론 저자 가운데는 불교 지도자도 있지만, 내용은 보편성이 높은 것들입니다.

비주류문학 : 판타지, SF, 우화소설, 경계소설, 역사소설, 실험주의적 작품 등 기존의 이른바 '순수문학'쪽에서 볼 때 품격이 떨어진다고(다시 말해 '문학작품이 아니다'라는 취급을 받아 온) 책들을 모았습니다.  좀 애매한 것이 파울로 코엘료의 <11분>같은 케이스인데, 저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영적 메시지를 추구하는 우화소설 작가라고 보아 여기 넣었고, 그 메시지가 소설로서의 재미를 훨씬 능가했다고 본 <연금술사>는 '뉴에이지 자기계발서'에 넣었습니다.

동양사, 교양 플러스 알파 : <하룻밤에 읽는 ~사> <이야기 ~사>류보다는 조금 더 학술적이지만, 너무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지는 않은 책들을 추렸습니다. 역사에 대해 피상적 관심 이상이긴 하지만, 학자들의 딱딱한 글쓰기는 또 재미없어하시는 분들께 유용한 책들을 염두에 둡니다.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동반부 지역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았으며, 유라시아 중앙부의 유목세계에 관한 역사는 '대륙의 심장, 초원의 유혹'으로 따로 뺐습니다.

서양사, 교양 플러스 알파 : <하룻밤에 읽는 ~사> <이야기 ~사>류보다는 조금 더 학술적이지만, 너무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지는 않은 책들을 추렸습니다. 역사에 대해 피상적 관심 이상이긴 하지만, 학자들의 딱딱한 글쓰기는 또 재미없어하시는 분들께 유용한 책들을 염두에 둡니다. 동아시아와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의 역사, 즉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신대륙에 관한 책들입니다.

과학, 자연을 만나다 : 뉴에이지-신과학 책들 가운데 과학 쪽에 중심이 있는 책들은 이 카테고리로 뺐습니다.

저자거리 : 만화, 소설, 시, 수필, 예술 등 저의 주요 관심사와 독서 취향에서 벗어난 책들을 담아놓은 곳입니다.

백아마을 : 음악들을 담는 공간입니다. 카테고리 명칭은 동양의 고사에서 거문고 명연주자로 잘 알려진 '백아'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논리적 접근 위주인 책과 달리 음악이란 주관적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이것저것 다양하게 씹어대는 것보다는 훌륭한 연주 추천 위주로 쓸 예정입니다. 

 

2. 리뷰

독후감이 아닌 리뷰, 즉 단순히 책의 내용을 가지고 감명깊으니 아니니 하는 것 외에 그 컨텐츠를 얼마나 잘 전달하는 그릇인가를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글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 알라딘에 없는 책은 마이페이퍼에 소개하겠습니다.

별을 주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약간의 융통성은 있습니다.

내용이 부실하고 거의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그래서 종이를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책은 별 하나(),

내용이 부실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든가 해서 나름대로 약간의 의미가 있는 책은 별 둘(★★),

내용은 그럭저럭 쓸만하지만 참신한 맛이 없고 인상이 별로 깊게 남지 못한 책은 별 셋(★★★),

내용이 알차고 창조적 시도가 보이지만 구성이 허술하다거나 표지가 예쁘지 않다거나 해서 약점들이 보이는 책은 별 넷(★★★★),

내용도 유익하고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낼 만하며 편집과 디자인 모두 '작품'에 가까운 책은 별 다섯(★★★★★ )을 주기로 합니다.

현재 공개한 리뷰 카테고리들은 모두  마이리스트의 카테고리와  호응하는 체제로 되어 있습니다. 12편의 리스트 가운데 마음공부-생태주의-신비주의 리뷰를 담은 카테고리 3개의 제목은 바다색으로, 역사 관련 리뷰를 담은 카테고리 5개의 제목은 산호색으로 칠해 구분했습니다.

마이리스트에 있는 책들은 가까운 장래에 리뷰화할 가능성이 높은 책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3. 마이페이퍼

서재 안내문  : 고친 부분이 있을 때마다 버전이 0.10씩 올라갑니다.

Bolor Toli : 책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글쓰기, 저의 사상과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역사에 관한 단상/ 정치-사회적 이슈/ 문화-예술에 대한 견해/ 신변잡기적 메모/ 이렇게 네 개로 나눠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리뷰-페이퍼 다른분글 : 주로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다른 분들의 좋은 견해를 퍼와 담는 데 씁니다.

리뷰-페이퍼 나의댓글 : 제가 다른 분 리뷰-페이퍼에 코멘트한 글 가운데 그냥 인사말이 아니라 지식정보로 가치있는 것들을 모으는 공간입니다.

퍼온글(알라딘 외) : 인터넷이나 뉴스 가운데 마음이나 머리에 담아둘 만한 글을 담는 공간입니다.

배꼽 : 장난스런 글, 위트 등을 쓰는 공간입니다. 카테고리 제목은 라즈니쉬의 우화 모음집에서 따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웃기는 것보다는 시니컬한 복선을 깔아놓고 사회비판적 색채를 풍기는 것, 주류 이데올로기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유머보다는 삶에 대해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유머들만 추릴 생각입니다.

아카식 레코드(A. R.) : 2004년 7월 15일 이후 읽는 책들에서 기억할 만한 내용들을 간단한 메모 형태로 기록하는 곳입니다. 문학이라면 멋진 구절, 인문서라면 탁월한 견해와 해석, 실용서라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 과학책이라면 유용한 데이터들을 뽑아내서 기록하는 식입니다.

 

4. 즐겨찾는 서재

꼭 달인급에 들거나 관리가 활발한 분들만이 아니라, 어느 한 분야에서 눈여겨볼 만한 풍성함이 있는 서재들이라면 등록하고 즐겨 찾을 생각입니다.

 

5. 즐겨찾는 리스트

서재 전체의 아이덴티티는 저와 코드가 그다지 일치하지 않지만, 특정 리스트의 내용이 마음에 들거나 유용한 분들의 컨텐츠를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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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6-1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빙그레 웃었어요. 별을 주는 기준도 재미있고 절판된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지않겠다는 이유도 재미있어요. 하지만 제 개인 생각으론 절판된 책도 올려주면, 헌 책방을 뒤지는 기쁨도 있거든요. 그 책을 찾았을때의 기쁨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 같기도 하죠.
친절하신 안내 읽고나니, 저는 아무래도 마이 페이퍼의 두번째 방과 세번째 방의 손님이 될 것 같네요. 그래도 모르는 부분이라도 읽어볼게요. 피와 살이 될테니까요.^^
행복한 일주일 되세요.

verdandy 2004-07-1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 님 말씀이 맞겠습니다. 2004년 7월 15일 이후 올리는 리뷰들은 절판서라도 목록에 있으면 그쪽으로 올리겠습니다. 그 편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sunnyside 2004-08-1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든 서재마다 이런 서재 안내문을 만들고 버전 업데이트를 하면, 서재 마실이 훨씬 편리하겠네요!
 
Trauma 트라우마 Vol.2
곽백수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1권 리뷰에서 트라우마 시리즈의 전반적인 특성을 논했으니, 여기에서는 2권의 다른 면만을 조금 더 이야기할까 한다.

본래 트라우마 시리즈 전체가 노총각 냄새가 폴폴 나는 만화이긴 하지만, 2권에서는 그게 좀 더 심해졌다.(저자는 결혼했다고 하던가? 하여튼 분위기는 그렇다)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만화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이 엿보이는 곳이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정적, 저질적이라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는 편들도 있다.

감탄하고 체크해두었던 편수는 1권보다는 좀 적었다. 2권도 Best-5를 추려본다.

1.공처가 공치열-포커(180화) 2.돈벼락(107화) 3.요술펜(152화) 4.야바위(140화) 5.낚시(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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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a 트라우마 Vol.1
곽백수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책의 표지를 넘기는 순간 일단 자빠졌다.  사진, 그리고 이름 곽. 백. 수. 그리고 그 아래 프로필 란과의 사이에 딱 한 줄... "본명입니다"

스포츠신문을 평소 잘 안 보는 체질이라, 신문에 실렸던 트라우마는 서너 편 정도만 본 것 같다. 그것도 재미없을 때 것들로... 그런데 책으로 모아놓으니 이렇게 확 깰 줄은 정말 몰랐다. 대단하다.

<트라우마>의 가장 큰 장점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묘미에 있다. 매 편마다 두 장(펼친면 4페이지)로 구성한 것도 아마 그런 효과를 노려서였을 것이다. 앞의 두 페이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한 단면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게 다음 장에 가면 황당한 깽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는 정신적 준비(?)를 하지만, 그래도 대개는 뜻밖의 결말에 무릎을 탁 치고 깔깔 웃어버리게 된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의학 용어 트라우마...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세 개밖에 못 주는 이유는, 트라우마 식의 징난스런 반전을 흉내내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다. 그림이 별로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이건 저자도 인정하는 부분, 후기에 나옴) 유머집이었다면 네 개는 기본으로 주었겠지만, 만화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시각적 이미지도 우수해야 한다는 판단에 그렇게 결론지었다.

또 100편이나 되는 내용이다 보니 일부는 웃음보다 썰렁함을 더 자아내는 것들도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압축력이 조금씩 떨어진다. 본래 일간지에 연재하려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에 쫒기는 상황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지 못하고 대충 마무리한 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은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편들을 체크해두었다가 Best-5를 추려보았다.

1.의학 발달(36화) 2.스승과 제자(64화) 3.천사와 악마(40화) 4.흡성대법(80화) 5.최상술-후진양성(51화)

그리고 몇 편은...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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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나서 처음으로 별 다섯 개를 주는 책이다.  애초 서재를 꾸미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좋은 책'은 별 넷으로 평가한다는 원칙을 두었었다. 그러나 이런 책에도 별 다섯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추천할 만한 책이 몇 권이나 되겠냐는 생각에 최고점을 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김용만의 저서를 읽는 것은 이것이 세번째다. <고구려의 발견>에 이어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를 읽고 나서 가장 신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 관심이 생겼던 것이다. 저자의 다른 저술들을 찾아보니 박사학위 논문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을(대표작이며 따라서 가장 자신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책으로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가 있지만,  신간을 포함하여 세 권 정도 읽었다면 대충의 스타일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 리뷰를 써 보기로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균형 잡힌 시각이다. 기존의 7세기, 특히 중화제국과의 대결국면에 접어든 삼국시대 인물들은 극단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나라를 말아먹은 의자왕, 불굴의 의지 김유신 등등...  따라서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으니 아마 단재의 민족사관류 저술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실증사학이 문제가 많다고 보면서도 한단고기와 민족사관도 헛점이 많은 까닭에 그 계열 상고사 책들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삼켜왔었다.

그러나, 김용만의 추론은 절묘한 선을 지킨다. 기본적으로 철저히 문헌에 의거하면서도(각주에 인용된 한문 원문 문장의 꼼꼼한 처리를 보라!) 자신의 상상력으로 대충 스토리를 그리는 게 아니라 개연성이 몹시 높은 다른 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원전 문헌들이 어떠한 시대적 사상적 배경에서 윤색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한 소리 한다. 마치 잘 다듬어진 추리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칭찬하고 싶은 또다른 장점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본다는 것이다.  후대 유학자에 의해 씌워진 유가 도덕주의적 비판을 벗겨내고,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발굴해내면서도, 고구려의 운명을 연개소문과 무의식중에 동일시해왔던 틀에 박힌 사고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있다. 연개소문은 그냥 연개소문일 뿐, 고구려가 무너지고 당이 흥성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예정된 코스에 가까왔다는 인식이다. 중원의 풍부한 자원공급과 체제정비, 다양한 북방 유목민족을 감싸안는 열린 시스템... 그에 비해 고구려는 고인 물이 되어버린 귀족 지배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지전에서 우세를 보였음에도 결국 총력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그의 논거를 따라가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밖에 아래 려휘님 리뷰의 지적처럼 천리장성을 장벽 라인이 아닌 거점 중심 네트워크로 이해한 것도 신선하며, 고구려 수군의 위상에 대한 재조명도 가치 있는 논증이다. 또 거란 통제를 둘러싼 줄다리기, 설연타의 움직임에 주목한 부분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나름대로 고구려사에 관한 책을 상당히 많이 읽었다고 생각해왔던 편인데, 그만큼 저자가 새로 발굴해낸 컨텐츠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제 리뷰어로서도 균형을 잡기 위해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비교적 점잕게 표현했지만 당태종 이세민의 개인적 야욕에 대한 비판이 조금 감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고,  백제와의 동맹이 성립된 배경이라든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밝혀볼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본 관련 서술의 경우 <일본서기>에 그려진 고구려상이 매우 다른 시각으로 풍부한 내용을 전하는 만큼(저자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활용했지만) 중국 사료와  6:4 정도의 비중은 되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지금은 8:2 정도)

선비는 사흘을 만나지 않았으면 눈을 비비고 봐야 한다던가... 1998년에 나온 <고구려의 발견>, 2001년에 나온 <인물로 읽는 고구려사>에 비해 이 책은 학술적 수준이나 재미 면에서 크게 진보했다.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지만, 계속 노력해 가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는 열정적 연구자의 저서를 기다리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김용만은 아직 젊은 학자인 만큼, 앞으로 내놓을 책들에 큰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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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평전
지배선 지음 / 청아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바로 아래 쓰신 '기랑'님의 리뷰가 맥을 잘 짚었다고 생각해서 사실 굳이 리뷰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서 고구려사가 사람들의 이목을 점점 끌기 시작하는 추세라, 충실한 리뷰가 많은 것도 다음에 좋은 책이 나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 몇 마디 적으려 한다.

우선 좋게 평가할 만한 것은 디지털 복원 전문가를 동원해서 그래픽 시뮬레이션을 도입했다는 점.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 고증에서 당대 유물 발굴 보고서나 복식학 연구 성과를 반영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갑옷이 사슬갑옷인지, 금속판 갑옷인지, 보병 및 기병의 병장기는 길이가 얼마 정도이고 어떤 모양을 갖추었는지 안서도호부 당군 군기는 무슨 색에 무슨 무늬를 수놓았는지, 성벽의 구조는 어땠는지 등등... 

  그렇다면 결국 상상으로 그럴 듯하게 그려냈다는 소린데... 이 책은 역사 연구서이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이 아닌데 그런 식이라면 아니 함만 못하지 않은가? 그래도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하여 역사 컨텐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별 두 개를 줄 수는 있다.

두번째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책 뒤에 붙은 참고문헌 목록. 한국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문, 일본어, 심지어 아랍어 사료들까지 수록해놓았다. 물론 이 책의 집필을 위해 다 찾아본 것은 아니라 본다. 본문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들도 상당수 있어, 과시 효과를 노린 냄새가 많이 난다. 하지만 이렇게 충실히 정리해 주니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듯하다.

단점으로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문체가 너무 많다. 원사료도 아니고 연구서 내용을 뭉텅뭉텅 인용해놓고, "그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둘째, 세째" 하는 식으로 나열하는데 가만히 읽어보면 첫째와 둘째가 격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인용부 문장을 그대로 읽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어지럽게 늘어놓아 내용을 부풀리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185~186쪽의 석국 정벌 기사를 보면, 아마도 최초에는 아랍, 티벳사료를 비교해서 상황을 묘사했을 크리스토프 베크위쓰 교수의 저서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 다음 지 교수의 설명은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라고 쓴 뒤 "첫째, 고선지를 중국 왕으로 표시했다...(중략) 둘째, 고선지가 10만의 병사를 동원했다...(중략) 셋째, 고선지가 무자비하게 석국을 약탈했다..."로 이어진다.  이건 전혀 '분석'이 아니다. 그냥 다른 학자의 책 내용을 되새김질한 것이지. 특히 첫째 부분은 베크위쓰 교수의 실수(고선지를 중국 왕으로 표시)를 물고 늘어지는 데 한 페이지를 소비한다. 굳이 그러고 싶었으면 각주 하나로 "아랍 사료는 고선지를 '중국 왕'으로 잘못 기록했다' 정도면 충분할 것을 쓸데없는 데 지면을 낭비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화려한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으로 무장한 정통 연구서답지 않게 "~일 것이다"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했던 모양이다" "~했을 것으로 보인다" 등의 정황증거성 추정 내지 본인의 주관적 추측을 남발한다는 점. 특히 고선지를 혹평한 사료를 공격하고 고선지를 추켜세운 사료를 찬양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눈에 거슬릴 정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269쪽을 보면... 확실한 근거 없이 원사료를 멋대로 재단하는 면이 보인다.  아니, 사관은 한 인물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씹던가 찬양해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단 말인가? 한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기술과 긍정적인 기술이 섞여 있는 것이 '뜻밖' 이라니...???

<구당서>의 찬자가 반란군의 제1차 동관 공격을 좌절시킨 것이 고선지의 공로였다고 기술한 것은 뜻밖이다. 왜냐하면 <구당서>의 찬자는 고선지의 공을 시종일관 깎아내리려 애썼던 중국 측 사가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가 <고선지전>의 끝 대목에 와서야 고선지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일까? 또 왜 이 대목에서 끝을 맺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구당서>의 찬자가 고선지를 의도적으로 폄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 때문에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볼 생각으로, 비록 한 번이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장군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또 고선지의 긍정적 캐릭터를 너무 강조하려다 보니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인들을 학대한) 당조에 일관되게 충성을 지킨 무장'으로 묘사하는 결과가 되어버려 우스운 결론이 나온다.

그외에도 제지술의 전파를 가지고 유럽문명의 아버지니 어쩌니 비약하는 것은 서양사학계에서 발끈할 문제지만 대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논박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 책은 강력 비추 도서이다.  이 분야 전문서는 아예 없었던 만큼 정보 확대란 면에서 약간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으나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요점을 메모하는 정도이면 족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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