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혜덕화님의 "길을 잃은 느낌"

혜덕화 님 덕분에, 오롯한 몸과 마음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이리 많은 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윤구병 선생님 글도 있네요... 꼭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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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집 <제세기> 가운데, '20년 동안의 달의 지배가 끝나고 나면...'이란 구절이 있다. 많은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이 이 부분을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는 시기가 20년간 계속된다는 의미로 풀었다. 물론, 개혁개방이나 중국의 경제대국 부상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1990년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소련이 해체될 때, 많은 철새들이 중국 위기론을 떠들어댔지만, 막상 현지에서 잔뼈가 굵었던 중국통들은 코웃음을 쳤다. 1988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1989년 천안문사태가 일어났을 때, 1997년 동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과격분자에 의한 신강 분리독립운동론이 시끄러웠을 때도 언론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중국은 바라보는 바깥 세상의 시선들을 비웃듯이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패권국가로 성장해왔다.

21세기 들어 떠오르는 국가 중국, 그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1993년, 나는 북경에서 인문학자인 쉬**교수를 만났을 때, 현 총리 후진타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당시 후진타오의 서열은 10위 바깥. 서방세계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1988년 라싸 소요사태 때 티벳자치구 공산당 총서기였는데, 직접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장갑차에 탄 채 현장에 뛰어들어 폭력으로 진압, 중국과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 때의 인상, 그리고 사진으로 본 인상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 느꼈기에, 당시 중국 지도층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쉬 교수에게 혹시 더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쉬 교수는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시큰둥... 그러나 후진타오는 1998년 국가 부주석이 되었고, 2003년 주룽지의 뒤를 이어 주석직을 승계,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도 꿰어찼다.

후진타오의 '출신성분'(이 말은 중국어 한자 직역어일 가능성이 높다)은 명청시대에 이름을 날린 휘주상인(우리나라로 치면 개성상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집안으로, 대학 시절 전공은 수력공학. 따라서 졸업 후에는 댐이나 수력발전소 현장에 근무한 정통 엔지니어가 되겠다. 놀라운 것은 구이저우성 당 총서기로 근무하던 시절 구이저우대학에서 시대를 따라잡기 위해 한 해 동안 컴퓨터공학을 청강하는데, 사무실에서 대학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결석한 적이 없었다 한다.

언젠가 중국 권력서열 차트를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50위까지의 리더 그룹은 모두 전공이 교통공학, 원자력공학, 기계공학, 물리학 등 공학도들로 꽉 채워져 있지 않은가! 후진타오만이 아니라 중국을 이끌어가는 집단이 모두 이런 엔지니어형 실용주의자들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선거 민주주의 전체에 비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TV에서 토론 잘하고, 선거 때 낮 안가리고 돌아다니며, '인간적 친화력'이 높은 보스들이 수십년간 정치를 좌지우지해오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 과연 정문술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중국의 저력이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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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를 바꾼 무인들
황원갑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학자들은 보통 비전공자가 이것저것 뒤져 책을 내면 같잖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책을 내 자기 이름값을 올려보려는 시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비전공자 혹은 정통적인 학문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충격적이고 신선한 기여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만(그 대표적 예는 나중에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리뷰에서 다룰 예정),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그렇게 '같잖게 보는' 비판을 얻어맞기 딱 좋은 수준에 머물러버린 저술이다.

우선 구성체제를 보면 6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33명의 '우리 역사 속 무인들'을 정리해놓았으며, 본문 속에 사용된 삽화 외에 컬러 인쇄로 57컷의 사진을 싣고 있다. 저술 의도는 난세(?)를 맞아 문무가 조화를 이룬 국난극복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의도라 한다. 그런데 우선 '무인들'의 범주가 문제가 된다. 서문에 보면...

 "무인 출신이지만 한 나라를 창업한 고구려의 추모성왕을 비롯하여 그 어떤 명장보다도 전략과 군공이 탁월했던 광개토대왕, 백제의 온조대왕과 근초고대왕, 발해 태조 대조영과 무왕, 후백제의 견훤,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 태조 왕건, 조선 태조 이성계 같은 제왕들의 일대기는 다른 기회에 따로 엮기로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이 이 다음에 다른 책으로 써먹기 위해 '민족사를 바꾼 무인'이지만 왕이었던 인믈들은 빼놓겠다는 소리다. 가장 기록이 풍성하고 국난 극복의 정신을 되살리기에 알맞은 분들을 자신의 집필 편의상 알짜를 쏙 빼고 적는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또 서문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학술적 문제는 될 수 있는 한 짧게 줄여서 장황한 사설을 피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로서 그간 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아(이 점은 책 뒤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내용 서술은 국사교과서나 청소년용 위인전 수준으로 후퇴한다. 언론 서평에서는 마치 새로운 내용들인 양 선전해 놓았지만, 어느 정도 교양 역사서를 읽어보았다면 어디선가는 한 번 보았을 것들이며, 저자 자신이 직접 새롭게 발굴해낸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자면,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강동 6주 담판 문제는 우리가 '세 치 혀로 거란군을 물러가게 만든 외교술'으로 수십 년간 배워 왔지만, 사실 최근의 동양사 연구 성과들은 거란이 고려와 전면전을 할 수 없는 내부적 상황에 있었고, 시위효과를 위해 출병한 것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고리타분한 옛 설명을 답습한다.

또 구색을 맞춘답시고 실어놓은 삽화들은 1970년대풍 묘역(이제 인물 전기에 이런 자료 좀 안 실었으면 좋겠다. 현대에 들어와 종친회나 군청에서 깨끗하게 단장한 천편일률적 묘역 모습이 내용 이해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영정, 기념관의 복원화들이 대부분이며, 막상 입체적 이해에 도움이 될 유물 사진이나 지도가 보이지 않는 점도 큰 결함.

반면에, 전공자들이 아무래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공부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자연히 그렇게 된다)주제에 대해 과감하게 통사적 정리를 시도한 것이라 자료집으로서는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명백한 목적의식(역사 고증이 아니라 문약으로 흐르는 이 시대를 훈계(?)하기 위한 것이라 선언했으니)으로 지은 책치고는 서술이 제법 객관성을 유지한다.(올해 쉰 아홉이신데, 그 연세 세대 다른 문필가들-본래 작가 출신-에 비해서는 감정이입 오바가 거의 없거나 적은 편이다)

'추천'까진 못 하겠지만,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사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자료 양이 방대해서 한 번 읽고 버리거나 돌려줄 내용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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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만들고 나서 거의 두 달 만에 리스트와 리뷰가 완전히 짝을 맞추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분류가 될까, 이 책은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이 카테고리는 좀 이질적인 것 같은데... 둘로 나눠야 하지 않을까... 등등.

웹상에 만든 서재 다듬는 게 이리도 어려운데, 실제 종이책을 방 안에 쌓아놓은 서재를 정리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알라딘 깔끔서재 공모...? 난 꿈도 안 꾼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십여 년 전 책자의 책들을 깊이 밀어넣고 앞에 키작은 책들을 두 줄로 쌓을 때부터 이미 불안하더니, 논문 자료 모으면서 방바닥에서 책장 앞으로 다시 한 줄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완전히 두 손 들고 말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과 세계를 분류하고 정돈해서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 욕망이 과학과 문명을 발달시켜 왔고, 달나라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며 원자폭탄과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원자를 나노 단위로 쪼개들어가던 과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물질의 배후에서 질서잡힌 우주(코스모스)를 포착하지 못하고 카오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식을 사랑하고 지혜를 추구하면서 책을 찾는다. 그러나 그 책이 쌓여가면서 어느 날엔가는 책을 치우고, 쌓고, 정리하고, 분류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을 갉아먹는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책이란 대상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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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지음 / 산처럼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리뷰를 쓸 때 리뷰 제목을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본래의 책 제목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책의 내용을 한 구절로 딱 잡아낼 근사한 다른 말을 붙이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쉽지 않다. 저자가 제목이나 부제나 장제목에서 멋진 표현들을 너무나 많이 썼기 때문이다.(T.T) 예를 들어보면, 서문의 제목은 '멋진 신세계, 오욕의 연대기', 2부의 제목은'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4부 '공간의 살해', 6부 '폭주하는 시간' 등이다. 그외에도 본문 곳곳에 쿨한 표현들이 널려 있어, 웬만한 문학작품 제목들은 이 책에서 다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다채로운 게 눈에 띈다. 고려대 사학과(여긴 국사학이 원래 강한 곳이다)에서 학부를 마치고,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후('근대성'의 담론에 대해서는 확실히 감을 잡았을 듯)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출판저널>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고 하니 산업혁명의 상징인 철도와 한국사를 접목시켜, 대중적인 글로 풀어내기에는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 책의 재미는 8폭 병풍 같은 입체적 시대상에 있다. 철도청에서 제공받은 <한국철도 100년사>등의 자료를 무미건조하게 설명식으로 나열하지 않고, 각종 근현대 문학작품에 등장한 철도의 역할, 당시 사람들의 시각, 신기한 경험, 그리고 철도 자살사고 신문기사 등을 다채롭게 인용하면서 철길 밖의 풍경들을 철도 이야기와 맛깔나게 믹싱해냈다.

서양사를 공부한 연구자답게, 마르크스, 루소, 마리네티, 짐멜, 마르크 블로흐,  토마스 아퀴나스, 장 자크 루소, 미셀 푸코 등 유명 사상가와 역사가들의 한두 구절 명언(주로 문명에 대한 포괄적 통찰)들도 적절히 활용해서 학술적인 문장 냄새를 확확 풍기는 게 이 책에선 어쩐지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6부 '폭주하는 시간'이다. 기차의 도입을 곧 근대적 시간감각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단락인데, 전통시대 동서양의 시간관을 우선 이야기하고 나서 기계시계의 발명사, GMT의 도입과정, 정확한 역법(태양력)의 보급, 시계수입의 에피소드 등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조선 철도의 기차시간표 제정 이야기를 꺼낸다.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을 이렇게 잘 다듬어 화려한 부페로 제공할 능력을 지닌 저자는 정말, 정말로 드물다.

그러나, 400쪽에 달하는 연구서의 어느 부분에도 지도와 도표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철도란 본래 지리적 개념이 아니던가? 국사 교과서에도 한두 쪽은 실려 있을 시대별 주요 노선 부설도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부분적으로 말로 풀어놓긴 했지만 기차 이용 승객 숫자나 철로 총 연장 자료 같은 것을 연대별로 추린 도표가(부록으로라도) 실렸다면 우리 근대사에서 철도화의 과정이 얼마나 쉽게 눈에 들어왔을 것인가... 나쁜 면을 심하게 부풀려 표현하자면 철도사 연구가 아니라 철도사 에세이집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유라시아를 관류하는 '철의 실크로드' 담론이 한참 화두가 되던 시기였다. 그런 시점에서 우리네 철도 백년사를 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이었고, 그 작업을 해낸 이는 이 책의 저자뿐었다. 몇 가지 사소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글쓰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달한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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