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를 바꾼 무인들
황원갑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학자들은 보통 비전공자가 이것저것 뒤져 책을 내면 같잖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책을 내 자기 이름값을 올려보려는 시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비전공자 혹은 정통적인 학문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충격적이고 신선한 기여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만(그 대표적 예는 나중에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리뷰에서 다룰 예정),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그렇게 '같잖게 보는' 비판을 얻어맞기 딱 좋은 수준에 머물러버린 저술이다.

우선 구성체제를 보면 6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33명의 '우리 역사 속 무인들'을 정리해놓았으며, 본문 속에 사용된 삽화 외에 컬러 인쇄로 57컷의 사진을 싣고 있다. 저술 의도는 난세(?)를 맞아 문무가 조화를 이룬 국난극복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의도라 한다. 그런데 우선 '무인들'의 범주가 문제가 된다. 서문에 보면...

 "무인 출신이지만 한 나라를 창업한 고구려의 추모성왕을 비롯하여 그 어떤 명장보다도 전략과 군공이 탁월했던 광개토대왕, 백제의 온조대왕과 근초고대왕, 발해 태조 대조영과 무왕, 후백제의 견훤,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 태조 왕건, 조선 태조 이성계 같은 제왕들의 일대기는 다른 기회에 따로 엮기로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이 이 다음에 다른 책으로 써먹기 위해 '민족사를 바꾼 무인'이지만 왕이었던 인믈들은 빼놓겠다는 소리다. 가장 기록이 풍성하고 국난 극복의 정신을 되살리기에 알맞은 분들을 자신의 집필 편의상 알짜를 쏙 빼고 적는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또 서문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학술적 문제는 될 수 있는 한 짧게 줄여서 장황한 사설을 피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로서 그간 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아(이 점은 책 뒤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내용 서술은 국사교과서나 청소년용 위인전 수준으로 후퇴한다. 언론 서평에서는 마치 새로운 내용들인 양 선전해 놓았지만, 어느 정도 교양 역사서를 읽어보았다면 어디선가는 한 번 보았을 것들이며, 저자 자신이 직접 새롭게 발굴해낸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자면,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강동 6주 담판 문제는 우리가 '세 치 혀로 거란군을 물러가게 만든 외교술'으로 수십 년간 배워 왔지만, 사실 최근의 동양사 연구 성과들은 거란이 고려와 전면전을 할 수 없는 내부적 상황에 있었고, 시위효과를 위해 출병한 것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고리타분한 옛 설명을 답습한다.

또 구색을 맞춘답시고 실어놓은 삽화들은 1970년대풍 묘역(이제 인물 전기에 이런 자료 좀 안 실었으면 좋겠다. 현대에 들어와 종친회나 군청에서 깨끗하게 단장한 천편일률적 묘역 모습이 내용 이해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영정, 기념관의 복원화들이 대부분이며, 막상 입체적 이해에 도움이 될 유물 사진이나 지도가 보이지 않는 점도 큰 결함.

반면에, 전공자들이 아무래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공부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자연히 그렇게 된다)주제에 대해 과감하게 통사적 정리를 시도한 것이라 자료집으로서는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명백한 목적의식(역사 고증이 아니라 문약으로 흐르는 이 시대를 훈계(?)하기 위한 것이라 선언했으니)으로 지은 책치고는 서술이 제법 객관성을 유지한다.(올해 쉰 아홉이신데, 그 연세 세대 다른 문필가들-본래 작가 출신-에 비해서는 감정이입 오바가 거의 없거나 적은 편이다)

'추천'까진 못 하겠지만,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사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자료 양이 방대해서 한 번 읽고 버리거나 돌려줄 내용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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