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로 가다 2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전위적인 그림들 가운데에는 그림 속에 또 그림, 그 그림 속에 또 그림... 이런 게 있다.
이 작품도 비슷한 면이 있다.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인 기타시라카와 우쿄, 그는 원고 촉탁에 밀려 글빛쟁이로 전락한 인기 소설가다.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똥을 쌀 시간조차 대리인(?)을 보내야 하는 처지. 그는 파리에 와서도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원고 독촉에 시달리며 작품을 써내려간다. 그 작품의 이름은 <왕비관>으로, 그들이 묵는 호텔 이름이기도 하고, 아사다 지로의 원작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말판을 내는 과정에서 혼란을 피하려고 <파리로 가다>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때문에 원작 제목의 익살스러움이 거세되고 말았다.
제2권에서는 1권보다 <왕비관>의 무대인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루이 14세와 숨겨진 아이, 정부 디아느 등 '왕비관'에 얽힌 사연들)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루이 14세는 디아느라는 파리 여인을 사랑해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페인의 결혼동맹 때문에 그녀와 아이는 쫒겨나고 만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히 자라는 아이는 제왕의 면모를 보여주고, 그런 소문들을 전해들은 루이14세는 마침내 스페인과의 전쟁을 무릅쓰고 아이를 왕태자로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린 루이는 집앞까지 찾아온 국왕의 행차에 기가 죽지 않고 자신의 프랑스의 태양이 아니라 보쥬 거리의 달님으로 남겠다고(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겠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1권에서 일어나는 2000년대 파리 엽기 투어팀 소동과 마찬가지로, 18세기의 묘사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억지로 극적 효과를 짜내기 위해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투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루이 14세가 집앞까지 이미 행차를 했었던 상황이라면, 어린 루이의 미래는 절대 예전의 평범한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왕위를 거부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되어 있는 스토리는 웃기다 못해 한숨이 나온다.(물론 이건 아사다 지로가 쓴 게 아니라 기타시라카와 우쿄가 쓴 거니까 책임 없다고 하면 할 말 없다.)
또 루이 14세를 모시는 그랑 셰프(수석 주방장) 무농과 줄리앙의 태도는 무대만 프랑스로 변했지, 완전히 일본 사무라이의 정서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베르사이유궁의 에티켓은 '무사도'가 옷만 갈아입은 형태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익살과 해학이 그나마 봐줄만하지만, 두 번 읽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