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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가다 1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사다 지로의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부류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짐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잔잔한 감동으로 코끝이 찡하게 만드는 작품, 또 하나는 그냥 가볍게 읽으면서 웃어넘길 수 있는 소설. 전자에 속하는 작품들로는 <철도원> <태양의 유산> <셰헤라자데> <지하철>등이 있고, 후자로는 <번쩍번쩍 의리통신> <파리로 가다> 정도를 들 수 있겠다. 나의 취향은 후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점수가 별로 후하지 않는 것에는 그런 영향도 있을지 모르겠다.
스토리는 뻔하다. 부도 직전에 몰린 여행사가 더블부킹의 형태로 파리 여행객 두 팀을 받는다. 그런데 두 팀에 신청한 고객들이 다들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아사다 지로는 출연 캐릭터들을 아주 극단적인 인간형으로 묘사해냈다. 사장과 내연관계인 여행사 매니저 레이코, 그녀의 전 남편이면서 무능력한 직원 도가와. 자살여행을 떠나려는 시모다 부부, 회사 상관과 사귀다가 차이고 정리해고 당한 가오리, 홧김에 수십년간 봉직한 경찰을 때려친 곤도, 헤어진 프랑스 애인을 찾아가려는 트랜스젠더 크레용, 원고청탁에 시달리다 못해 조용한 데에서 집필을 하려는 유명 소설가 기타시라카와 우쿄, 국제적인 카드 사기단 단노 부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개성이 강한 인간형들을 묘사하다 보니, 일단 표면적으로 재미는 있다. 그러나 너무 뻥이 심하다 보면 오히려 막판에는 재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트랜스젠더 크레용의 경우. 그녀(혹은 그)는 프랑스 애인과 오랫동안 교제한 덕에 프랑스어가 술술 입에서 나온다. 프랑스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도가와가 공항에서 기절했을 때 팀을 구해낸 것도 그녀(혹은 그)의 활약.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렇게 프랑스어를 잘 하고, 애인을 찾는 게 지상 목표인 인물이 왜 일정에 묶이는 9박 10일의 그룹투어에 동참하나? 바로 파리로 날아가면 될 것을.
여름철에 덥고 짜증날 때 한 번 읽고 던져버리는 킬링타임용 독물로는 괜찮은 편이지만 소장용으로는 그리 권할 만한 작품이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