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삼월정 3 (OST CD 1장 포함)
히라사카 마코토 지음, ZUN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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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던져지고 똑똑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도 잡아먹히리라. 이곳처럼 중요한 신사조차 몇 백 년만에 이름마저 잊혀져, 결코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 되겠지. 바깥 세계의 인간은 이제 밤도 요괴도 두려워하지 않아.

 



안정적인 화법을 취했지만 다소 구작의 일러스트 방식을 취했다.

구작 일러스트는 싫어하는 편이고, 따라서 이 만화책도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지만

스타 사파이어가 이뻐서 봐줬다. 상큼한 장난꾸러기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나... 천연덕스러운 성격이 모에포인트.


 햇빛을 끌어들여 주변 사람들을 투명하게 보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서니 밀크, 소리를 지울 수 있는 루나 차일드, 레이무로 살아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스타 사파이어. 일명 숨바꼭질하기에 매우 적당한 능력을 가진 이 셋은 장난기가 많은 요정들이라 인간을 곯려주기도 하지만, 워낙 환상향엔 요괴가 많고 자칭 인간인 레이무와 마리사라는 것들이 만만치 않아서(...) 번번히 수난을 당한다. 서니 밀크가 꾼 꿈을 바탕으로 요정들을 협박해 대동단결시킨 다음 요괴와 인간들에 맞서는 요정대전쟁을 꾸미기도 하지만 오히려 바보 치르노와 대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만화책은 동방프로젝트의 사소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단 큰 줄거리는 이사에 관련된 내용이다.

 


더이상 인간들이 오지 않는 사당을 매일마다 청소하는 레이무.

위험천만하지만 요정들은 이 레이무를 곯려주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이 사당에 있는 나무들은 다소 평범한 편인데, 어떤 큰 고목이 사당 대신에 벼락을 맞게 됨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 나무는 쑥쑥 자라나게 되고, 결국 나무의 성장을 추진하는 요정들도 10년동안 거주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만큼 큰 고목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요정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기뻐한다. 숲 한복판에 있는지라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눈 속에 갖히는 자신들의 집(고목)을 대체할 수 있는 별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사 근처에 있는 나무라서 마음껏 인간들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카리는 그들을 여러모로 실험해본 뒤, 그들이 이 나무에서 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선악의 개념하고는 거리가 먼 말이다. 선한 자가 강할 수도 있으며, 약한 자가 악할 수도 있다. 때로는 강자였던 사람이 상황에 따라선 약자로서 복종할 것을 종용받을 수도 있다. 강약은 그저 상대적인 힘의 세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들을 선악이 아닌 강약으로 평가함으로서 유카리는 그들을 '지극히 환상향적인 존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의 기준에선 그들을 괴롭히는 데 골몰하는 그들이 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앨리스는 이 요정들을 탐탁지 않아한다. 그러나 주거에 있어서 그들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으로서 상당히 부러운 일인데) 요정 3명이 들어갈 규모의 큰 고목이라면 그들은 언제든지 그 안에 깃들어 살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는 집(고목)을 더럽히지 않고, 오히려 기운을 북돋워주며 성장시킨다. 레이무는 벼락맞은 고목을 신성시하여 인위적인 제사를 지내며 받들어 모신다. 그러나 그녀도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인지라, 금방 고목에 제사를 지내는 일에 귀찮음을 느낀다. 하지만 요정들은 자신들의 별장으로서 매일같이 그 나무를 찾아가서 이삿짐을 하나하나 옮겨놓는다. 그들은 자연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해치지 않으며, 아무 지식도 지니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있다. 다른 요정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말에 상처를 받지만, 스타사파이어만은 유카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친화지능을 지닌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약하다거나 바보같다고 놀림받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다. 그들은 엔진 소리만 듣고도 자동차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물과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고 대인관계도 비교적 원만하다고 하다. 아무리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욕을 하거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을 지레짐작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물론 따돌리는 일은 더욱 더 좋지 않다.

특히 군대에서 특정한 지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체계가 극도로 발달되어 있는 듯하다.

점점 사회가 인간의 다중지능을 살릴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퇴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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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마 이리야 1.2권 박스세트 (합본판) - 전2권 - Novel Engine
히로야마 히로시 지음, 정홍식 옮김, TYPE-MOON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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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위가 있든 자기가 관계된 일을 관계된 사람을 없었던 걸로는 할 수 없다.

 



뭐 이렇게 심오한 글도 써있긴 하지만 심각한 상황인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이리야가 칼레이도 스틱에게 선택받아 실컷 괴롭힘 당하며

카드로 인해 영능자들을 코스프레 할 수도 있는(...) 마법소녀가 되는 이야기다.

이리야가 별로 모에스런 캐릭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평범한 소녀로 만드니 귀엽구료.


 칼레이도 스틱은 일단 페도다(;;;) 적어도 12세 이하는 마법소녀 취급을 안하는 이 지팡이들. 당연히 린과 루비아같이 나이를 먹은 소녀들이 성에 찰리가 없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주인들에게서 떨어져 두 소녀들을 마법소녀로 만든다. 루비란 지팡이가 이리야에게 가고, 사파이어라는 지팡이가 미유에게 간다. 루비와 사파이어의 성격이 상당히 다른 편이라 그들이 각각 선택한 두 사람은 성장배경이라거나 성격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Fate/zero에서 키리츠쿠가 아이리와 무사히 도망가서 평범한 가정을 이뤘다는 설정이 있는가보다. 당연히 이리야의 마법능력은 숨겨져 있다.) 이리야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며 망상하길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이기 때문에 되려 마법을 더 쉽게 펼칠 수 있지만, 오랫동안 평범하게 살아온 터라 신체능력이라던가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모자란다. 미유는 다소 재력을 갖춘 루비아에게 길러지는 입장이라 생존하기 위해 마법소녀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으로, 머리도 상당히 좋고 신체능력도 좋은데다 모든 걸 필사적으로 임하고 있지만 과하게 현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명이 어떻게 마법소녀로서 팀워크를 이루어 위기를 헤쳐나가느냐가 만화의 주제인 듯 싶지만 왠걸... 이리야가 워낙에 마력이 강해서 그녀가 몇 번 각성함으로서 퀘스트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버린다. 페이트에서 이리야스필의 설정을 보면 무리도 아니지만... 되려 이리야가 자신의 능력이 무서워서 숨어버렸을 정도다.



그 와중에 깨알같은 백합요소를 그나마 재미로 꼽고 싶다.

미유의 저 전형적인 메이드복차림에 터무니없이 색기넘치는 표정 대체 뭔가요...!


 표지와 본문 일러스트의 갭이 묘하게 커서 약간 실망했었지만, 역시 원작이니 만화책으로 보는 것에 만족한다. 처음엔 린의 복장에 끌려서 이 책을 보게 되었지만 나중에 보니 왜 이리야 팬층이 형성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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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민음사 세계시인선 45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김병익 옮김 / 민음사 / 197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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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서 빠져나와 꽃도 향도 내버려 두시지요! 당신의 옷이 더럽혀지고 갈갈이 찢긴들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당신의 이마와 땀과 노역 속에 그분을 만나서 그분 곁에 서십시오.- p. 26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넌 이걸 읽고 해석할 수 있을거야'라고 말하며 준 책이다.

개뿔 20대 후반에 다다라 가는데 전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용운의 님 시리즈로 이루어진 시도 상당히 어렵지만, 그래도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비교하면 쉽게 써줘서 감사합니다... 라고 느낀다. 주제는 매우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략 님을 신으로 간주하고, 그를 사모하는 내용과 찬양하는 내용,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크게 나눠진다. 하지만 '님의 무서운 칼'과 '등불을 나눠주지 않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심오하고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내용으로 여겨진다. 특히 전자는 다소 판타지 소설같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인용하여 어떤 문학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소재는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가 굉장히 난해하다보니 다루기가 어려웠던 듯하다... 대신 어떤 만화가 기탄잘리 중 다른 시를 인용해왔다고는 하는데, 정확히 어떤 만화책인지 알 수 없으므로 이 리뷰에선 다루지 않겠다.

 기탄잘리에서 나오는 시 중 하나를 노래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zlfKdbWwruY#t=27 최근 2012년도판이 나왔다고 하니 타고르의 시가 예술가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구가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이유불문하고 꼭 봐야 할 책이며, 설령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면 한 번쯤 소장하고 파헤쳐봐도 좋을 책이다. 비유와 상징들이 너무나 소박하고 아름답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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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탑 2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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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난 내 세계를 완전하게 지킬 거야. 그러니 거기서 나가지 마라. 그럼 식사 잘 하고 와."
키릴로차는 말문이 막힌 채 식당을 나가는 일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들 둘은 어려서부터 같은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일츠는 그것을 '내 세계'라고 불렀다. 나쁜 뜻 같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p. 34

 



태양의 탑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일츠일 것이라 추정하는 일러스트.

똥폼은 잘 잡지만 소설상에선 퍽이나 못난 놈이다.


 분란의 시대가 찾아온다. 일츠는 친구들과 함께 조국인 로존디아와는 다른 나라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있으면서도 틈틈이 서신을 받으면서 나라의 정세를 공부하고, 남들 몰래 마법을 배우며, 난세에 자신이 앉아있을 자리를 확보한다. 그러나 세계가 만만치 않다보니, 그는 부득이하게 키릴의 세계도 짓밟게 된다. 고민 끝에 결국 그는 모든 악당들이 그렇듯이 처리를 잘못하게 된다. (추측컨대 클라리몽드와의 거래때문에) 분노한 키릴을 그대로 놓아주게 된 것이다. 키릴의 뛰어난 마법 자질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고대 네냐족일 가능성이 있으니 약할 때 당장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동조자 카의 반대에 '이 녀석이 언제 일어나서 송곳니를 드러내던 상관없어, 또 쳐죽이면 되니까.'라는 말까지 남기는 여유를 보이며. 

 거기까지는 좋다. 일츠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라고 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녀석이 못난 놈인 이유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정치적 흐름에 휩쓸린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 자신은 로존디아의 전제 정치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말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그러므로 자신이 악이라고 하더라도 별 수 없지 않은가 주장한다. 자신의 의사가 100% 개입되지 않은 학살이니, 언뜻 들을 때 그 말은 합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뫼르소는 햇빛이 너무 밝아 짜증이 치솟자 그냥 앞에 가던 지나가던 인간 한 명을 죽인 것 뿐이다. 그게 그가 살인한 이유의 전부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그림자로 여겼고, 자신과 궁극적인 의견은 똑같을 거라 여긴 키릴이 성장하면서 점차 의견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짜증을 내고 있다. 요컨대 마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묵혀뒀던 감정이 악취를 풍기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키릴에게 가한 '정신말살'은 일츠의 마음 속에 꼭꼭 숨겨진 그의 진심이다. 아무래도 그도 당시엔 나이가 어리다보니 말을 해도 무슨 의미를 함축하는지 모르는 듯한데, 언제 어떤 계기로 그걸 깨닫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사실 키릴이 받는 대가가 너무 커서 문제이지, 이 녀석도 그렇게 떳떳한 놈은 아니다. 태양의 탑 1권 맨 처음에 처형당하는 알스노아 아가씨는 사실 키릴 패거리 중 하나인 프란디에의 사촌누나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의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게 될 줄은 몰라서 나도 깜짝 놀랐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돌아온 키릴과 같이 무도회에서 춤을 출 때, 그녀는 가난한 백성들의 근심에 관해 물어보다 말이 통하지 않자 포기한다. 이는 태양의 탑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이 키릴의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귀족 신분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기에 다른 삶엔 무지한 채로 남아버리기로 결심하는 키릴의 묵인을 상징한다. 놀랍게도 영문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제임스 조이스가 쓴 <더블린 사람들> 단편 중 하나에서 가브리엘과 아이버스가 만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가브리엘은 새 책을 받고 싶어 아일랜드의 진절머리나는 현실을 묵인하고 친영파 신문에도 서슴없이 글을 써 왔던 사람이고, 아이버스는 아일랜드의 전통문화를 숭앙하는 여교수이다. 가브리엘의 연설능력과 키릴의 마법능력은 출중하지만, 둘 다 세상을 구제하는 데엔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에피파니, 즉 현현을 겪음으로서 가브리엘은 참회하지만 이모들과 세상 속에 섞여사느라 (라고 쓰고 시다바리하느라로 읽는다.) 그 이상 진전하진 못한다. 키릴도 세상이 무너지고 갈 곳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복수할 결심을 하지만, 태양의 탑 1권의 전개를 볼 때 그의 칼날은 여전히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듯하다. 아직은 냉정하고 차가워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워낙 그의 적들이 뻔뻔하다. 대가로 뭘 처먹고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그의 스승이었던 카의 철가면은 정말 얄미워보인다. 그를 한 대 때리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키릴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고 해야 할까. 죽은 자들 중 하나였던 키릴이 어떻게 부활하여 일츠 무리들을 이겨낼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에서 나온 메시지처럼, 키릴이 제대로 미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든 사건인 건 확실하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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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5 - 대산세계문학총서 02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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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님들, 삼청님들! 내 말 좀 들어보소. 머나먼 이곳까지 와서 요괴 정령을 때려잡는 게 버릇이 되었소. 제사 음식을 좀 얻어먹으려 해도 평안히 자리잡고 앉을 데가 없구려. 그래서 세 분 어르신들의 자리를 빌려 조금만 쉬었다 가려 하오.
삼청님들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계셨으니, 잠시 동안 이 지저분한 뒷간에 들어가 계시구려.
당신들은 여느 때도 집에서 궁색한 것 하나 없이 잘 잡숫고 청정 도사 노릇을 해오셨으니, 오늘은 다소 더러운 제물을 자셔야 하는 운수를 면치 못하시고, 냄새 지독한 원시천존, 영보도군, 태상노군 노릇도 한번쯤 해보시구려!- p. 156

 


 


이전에 4권 리뷰를 쓸 때 중국에서도 서유기를 서브컬쳐화하려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상은 등장인물들이 훈남으로 편집되어 나온 최유기가 더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에서도 서유기를 대중문화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 제법 노력을 하긴 했었다.

그 중에 하나 그럴싸한게 서유기지대요천궁이라는 이 영화인데, 제법 특촬물같이 생겼고(...)

중국의 내노라하는 영화배우는 총출동시킨 3D 영화이다. 2014년에 속편도 나온다고 함.


 아무튼 영화 포스터를 보면 마치 주인공이 한 명만 등장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온통 손오공의 얼굴로 도배가 되어있다. 사실 돌에서 영기를 받고 태어난 출생과정도 있고 천궁에 가서 받아먹은 것도 수련받은 것도 많은지라... 그는 요컨대 불경을 가지러 가는 삼장 팀 중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먼치킨이다. 게다가 천궁에서 악명을 떨쳐 유명인사가 된 지라 말 한마디만 척척 하면 인맥동원을 할 수 있으니 소설을 보다보면 그를 매우 부러워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설정상으로 손오공 혼자 여행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전에도 오공이 근두운 하나면 쏜살같이 갔다올 수 있을 것이라 불평을 해본 적 있지만 천궁의 높으신 분들이 만류하면서 이야기했던 게 있다. 첫번째로 삼장과 그 일행 3명이 모두 갔다와야 하며, 두번째로 도보여행을 하면서 온갖 시련을 겪고 성숙해져야 불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손오공은 5권에서는 인신공양을 해야 하는 마을 주민들을 침착하게 구조하고 사이비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왕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 하는 등, 촐랑거리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밥을 훔칠 때랑 마지막에 기술 선택을 잘못해서 적에게 무기를 바치다시피 빼앗긴 건 제외하고;;;)

 특히 불교를 탄압하는 사이비교를 농락할 때의 행자들이 행동하는 장면은 꽤 재미있었다. 비록 불교가 참된 종교이고 도교는 아니라는 태도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현대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사이비교의 정체를 까발리고 농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구X파라던가 X원파를 이야기하는 건 아닐지도?



다음엔 최유기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보려 한다.

강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이 머리칼도 풀어헤치고 옷도 반 정도 헐벗은 채로 과수원에 들어가 그물을 짰다는데 언뜻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최유기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정말 맘에 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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