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 Swallow Knights Tales 1 - 사라진 왕의 머리와 기사의 눈물 SKT
김철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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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에게 이 왕궁은 시작이겠지?"
마음속에 서리가 내릴 것 같은 목소리. 난 문득 고개를 돌렸다. 비로드 망토를 두른 카론의 등이 보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키스에겐 마지막이야."- p. 112

 

 절세 미소년으로 14살 때부터 부모의 승낙하에 호스트를 했던(...) 키리안이란 주인공은 그 옛날 판타지 소설 중에선 좀 특이한 소재를 적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로 그의 신분은 평민이지만 영지를 벗어나 여행하기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돈을 꽤 벌었다. 더군다나 이 판타지 소설은 여성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특수한 세계라서 그는 호스트바에 온 손님들에게 검술도 배우고 처세술도 배웠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국에서 기사를 하고 싶었던 키리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1년 후 기사를 하러 수도로 올라간다. 이것 또한 호스트바에 온 어떤 기사가 그를 스카우트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유명해진 판타지라서 누구나 알겠지만, 키리안이 목적으로 두고 있는 기사단은 검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꽃미남들만 득시글한 기사단이었다. 좀 더 최근에 만들어졌더라면 엉덩국 패러디가 만들어졌을 상황.


 

게다가 키리안의 외모는 요즘 말하는 오토코노코에 해당한다! (금발 생머리 미인.)

대뜸 1권에서부터 여장도 나옴.


 요가남(...) 기사단장 키스의 설명에 의하면 스왈로우 기사단의 메인 역할은 여신도들의 수호라고 한다. 그러나 여신도라는 사람들이 검술궁술도 뛰어나고 마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굳이 지킬 필요가 없고, 현재는 제사에 참석하는 의식만 그대로 남아있는데 먹고 자는 것 빼고 돈을 벌고 싶다면 그 지명을 받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프리랜서 비슷한 직종이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왕궁의 온갖 웃긴 잔심부름까지... 어릴 때부터 호스트에 투입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미모도 출중한 키리안으로서는 천부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키리안은 그닥 자신이 지명을 받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맡은 일도 하면서 미리 친해진 다른 기사단장과 더불어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양.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사단장 키스의 숨겨진 과거도 한편으로는 살짝살짝 드러낸다. 왠지 지금까지 읽어본 줄거리로는 광주사태를 간접적으로 풍자하는 내용도 등장할 것 같은데 (언뜻 보면 기사도 일종의 군인이니) 앞으로 무슨 줄거리가 등장할지 기대하는 바이다. 유머컨셉은 김철곤의 옛날 작품 드래곤 레이디와 그닥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때에 비해 문장실력이 놀랄만큼 향상되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 아니 사실 정말 놀랐다.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세월의 돌 파비안에 비하면 아직까진 한참 뒤쳐진 달변가여서 좀 아쉬웠다. 작가의 문제인가 이건.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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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쇼와 전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28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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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꿈꾸면서 악착같이 전진하면 악착같은 현실이 기다리겠지요
눈물을 질질 흘려야 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했다고 말하고
살아있으면서 지난 새벽에 죽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개새끼들
욕조의 자라들처럼 계속해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거죠

- 육체쇼와 전집 중 일부 p. 52

 

 이 책을 읽다가 남친에게 첫 부분을 잠깐 읽어주고 그 다음에는 혼자서 정독했는데 첫 부분만 읽어주길 매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ㄷㄷㄷ 애인과 헤어진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시들이라서 애인하고 같이 읽을 만한 시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아무튼 그의 데뷔작 여장남자 시코쿠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들이 마주하기 싫어하는 여러가지 사물과 행동들에 이야기를 붙여서 시를 만드는 건 마찬가지인 시집이다. 영화를 좋아하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시를 쓴 것들도 더러 있는데, 대부분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영화이다; 유명하지 않은 인디영화엔 추천사도 써주고 나름대로 그 쪽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책 뒤에 적혀있는 난데없이 짤막한 시구절처럼

그의 시는 읽다가 사람을 흠칫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시가 충격적이고 절망적이라고 해서 시학문의 무라카미 류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라카미 류는 어떤 점에선 굉장히 속물적이고 통속적인 소설을 쓴다. 심지어 '대체 이런 글을 어떻게 당당히 출판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쓸 때도 있다. 그러나 황병승은 지식인과 유명인사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라는 테마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유모한테서 막 젖을 먹고 나온 공주에게도 서슴없이 아첨하는 인간들이 득시글한 돌잔치에, 혼자 검은 옷을 입고 출현한 마녀와 같다고 해야 할까. 세상의 밝은 분위기에 약간의 질투와 열등감을 보이면서도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고, 그는 공주에게 다가와 그녀에게 다가올 참혹한 미래를 예언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인생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희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과거형이어서 애틋할 정도이긴 하지만. <쥐가 있던 피크닉 자리>라는 시에서 그는 때묻지 않았던 시절을 보여준다. 또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격려하는 그녀와 '나'는 매우 쿨하면서도 상큼한 이미지를 준다. 실패로 점쳐진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잠시나마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나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거의 마지막 구절은 켈라그래피로 꾸며도, 꽤나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문장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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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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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내 얘기를 들어줘. 이번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끔찍스러운 용기를 출산하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이 힘은 내 자식이기도 하지만 네가 낳은 아기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네가 들어주어야 이 아기가 세례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p. 250

 

 일기를 우습게 보지 말라. 최소한 자소서 정도는 어디에서나 돋보일 수 있도록 쓸 수 있는 난 어렸을 때부터 최소 한 쪽은 넘도록 꼬박꼬박 일기를 써왔었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여성 문학도들이 대게 자신의 체험을 빌려서 소설을 쓰는데, 그 체험을 글로 정리하여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참고하는 것이 늘상 일기였다. 요즘 본인이 한창 읽고 있는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도 일기를 충실히 쓴 여성이었고, 이 실비아 플라스도 그런 여성이었다.

 테드가 실비아를 만나자마자 강제로 키스하고 그에 저항하기 위해 실비아가 테드의 볼을 물어 뜯었다는 이야기도 참 기상천외하지만, 그 이전의 인생도 순탄치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사건이 강간, 그리고 리처드 새순이다. 프랑스에 가서 원거리 연애를 유지하다 다른 애인을 사귀었다고 하니, 그녀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아마도 그녀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테드가 고백할 때 그것을 덥석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녀가 그 인상적인 첫만남 이후로 테드에게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게 보이지만, 그녀는 어쩐지 테드와 사귀는 중에도 리처드에게 편지 비슷한 걸 많이 썼었고, 결혼 이후에도 리처드에 대해 문득문득 회상하곤 한다. 

 뭐 딱히 리처드에게 미련이 없었다고 해도 테드는 확실히 결혼하면 안 되었을 남자임에 틀림없다. 신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실비아의 목을 조르고, 싸우다가 여러번 그녀를 때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자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미국에 세를 준 아씨아가 그들 부부가 있는 영국에까지 전화를 하는 걸 보고 실비아는 이혼을 결심했고, 그 분노에 힘입어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쓴다. 여성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작품을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나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스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문에 테이프를 두른 다음 오븐에 머리를 박고 가스 냄새를 맡으면서 자살했을 때의 기분은 물론이고. 웃긴 건 그 이후로 아씨아가 두번째 부인이 되는데, 그 여자는 딸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여자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로써 실비아는 실비아 본인의 생각보다도 매우 고운 성격이었음이 입증되지 않았나 싶다. 애는 뭔 죄야.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각색되었을 때 그녀의 딸 프리다가 '내 어머니를 자살 인형으로 만들지 마라'라는 내용의 시를 지어서 비판했다는 사실로 볼 때 살아생전 아이들에게도 매우 각별한 신경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전남편 테드 휴즈가 그래도 마지막에 그녀의 문학실력을 인정하고 일기를 출판할 결심을 낸 건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거의 대부분을 생략해버리고

(테드 사후에 원본을 보니 그렇게 심한 글이 쓰여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다.)

무엇보다 테드와의 이혼 직후 3개월 동안의 일기를 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 생각한다.


 좀 우스운 일이지만, 난 전태일이 생각났다. 물론 그녀는 그 자신의 기구한 삶에 지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시시콜콜 자신의 시에 참견하고 문학의 권력가에게 아첨만 하는 테드에게 이제까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 때 그녀는 테드가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하고 시를 쓰는 이런저런 '비결'을 강요하는 그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그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지 않는다. 테드의 외도를 알기 전부터 그녀의 진실된 행동과 목소리가 거짓된 남성에게 작품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고 그녀를 설득한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그녀의 소설 몇몇이 실종되기는 했지만, 난 실비아가 옳은 행동을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결국 미국에서 살 때 심리상담가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인해 자신에게 과하게 의존하고 있던 홀어머니의 강박관념을 떨쳐내고, 자신을 옥죄고 있는 남성성으로부터 버림받았거나 혹은 스스로 버림으로서 자신이 천재시인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게 그녀의 꾸밈없는 성격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일기에서조차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코딱지를 파는 행위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매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은밀하게 맘에 드는 남자들에서까지 모든 걸 그녀의 일기에 고백한다. 이런 굉장한 글을 쓸 줄 아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했다니 미국은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려 700페이지에 걸친 기나긴 일기였는데도 상당히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미사여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굉장히 시원시원한 문체여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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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 원문수록
칼릴 지브란 지음, 정창영 옮김 / 물병자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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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극히 사소한 행위로 그대들을 재려 함은 덧없는 거품으로 대양의 힘을 평가하려는 것과 같다.
그대들의 실패로써 그대들을 심판하려 함은 다만 쉬이 변한다고 계절을 책망하는 것과도 같은 것을.

그래, 그대들은 대양과도 같다.
비록 크나큰 배가 그대들의 기슭에서 조수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대들이 그대들의 조수를 재촉할 수는 없다.
또한 그대들은 계절과도 같다.
그리하여 비록 그대들 겨울이 지난 뒤 봄이 오는 것을 부정할지라도,
그럴지라도 봄은 그대들 속에 누워 나른히 미소지으며, 성내지 않는다.- p. 101

 

 유키에게 이 글을 주었을 땐 상당히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예상했던 바와 드물게 방탕과 욕망 등에 관련하여 무한긍정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마지막 구절인 '고별에 대하여'에서 '내가 너희의 좋은 점만 찬미했다고 말하지 마라. 난 단지 높은 데에서 너희들을 내려다보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대양같이 계절같이 살기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예언자씨. 만약 그 각성이 너무 늦어서 몸도 마음도 다 늙어버리고 힘도 없어진다면...? 아무튼 '사랑에 대하여'에서도 이 예언자는 실연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 몸과 온 마음을 던져 사랑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맡기며.

 이 책은 분량도 짧고, 예언자가 잠시 머물던 올펄레즈를 떠나면서 그 마을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면 대답을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나는 한 장씩 읽어나갔는데, 어디에서 끊어지던 어디에서 이어지던 단연코 명문장들이었다. 옆에서 내가 책 읽어나가는 소리를 듣던 엄마도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칼릴 지브란이 누구인지 알고싶어하셨다. 사람들의 인생에 관련된 보편적인 주제들 중에서도 가장 첫째로 거론되는 게 무려 사랑, 결혼, 아이들이라서 젊은이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이것을 읽어보면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글귀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굳이 법정스님이 추천한 책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지 않아도, 문학계에선 이 책의 문장이라던가 단어들이 자주 인용된다.

 

 


난 굳이 강은교 시인의 번역본을 보고 싶어서 옛날 흑백인쇄본 책을 샀지만.

칼릴 지브란은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화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컬러판 책을 사서 천천히 그림 감상하면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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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과 더불어 33년 - 최열이 말하는 한국 환경운동의 가치와 전망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최열.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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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현재와 같이 막 쓰고 막 버리는 문화를 버티기에 굉장히 취약한 행성이지만, 절제하며 사는 문화 속에서는 그런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49

 


 

최근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용만 당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무튼 처음엔 정권 한복판에 들어가 어떻게든 자연을 지켜보려다 끝에는 감옥에 수감된 분이시다.

그러면서도 정치계엔 끝까지 진출하지 않으려 하셨기 때문에 민간엔 박원순보다 덜 알려졌을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서울대학교의 강연을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게다가 대표의 발언과 패널들의 질의문답, 그리고 청중들의 질문이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주제를 나누어서 보기가 간편하다. 5.18 투쟁 당시의 사건들과 지금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단어(울산병이라던가)들이 풍부하게 나와있어서 언뜻 보기엔 어려워보이지만 문단 중간중간의 설명과 마지막 장의 상세한 주석들을 참고한다면 보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일단 유신과 관련된 사건들은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아 이것저것 꼬여있는 편이고, 환경과 관련된 세계의 조약들은 역사와 관련된 면이 있기 때문에, 읽고 난 다음에 관련정보가 들어있는 저서들을 참고하라고 필히 권해주고 싶다.

 최열 님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 난 거기에서 해학적인 면모를 발견하여 깜짝 놀랐다. 사실 녹색당에서 활동해 본 나는 일명 '운동권'에서 환경론자들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인간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연을 신경쓰느냐' 따위의 눈총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난 이전에 통합진보당을 세우려는 사람과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에는 배고플 때 쥐도 잡아먹었는데 채소만 먹겠다니 프톨레타리아로서 부끄럽고 사치스럽지 않느냐'라는 꾸중까지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 녹색당의 치명적인 단점들은 '적색당'과 마땅한 커넥션이 없다는 것에서 생기는 듯하다. 그러나 최열은 모임에 참가한 대다수의 운동권 사람들과 통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정치에 뭐하려 참견하려 하느냐, 딴데에 마음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패널들의 가열찬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견을 굽히지 않았다.

 패널들도 상당히 빛이 났다. 아마 이 책에서 최열님 다음으로 가장 많이 활약하신 분은 임옥상 님일 것이다. 간혹 산문도 쓰시고 작업노트나 작품집도 출판하신 적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중고서적으로 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도 중고임;) 현재는 창작보다는 환경운동으로 상당히 바쁘신 분이기 때문에;;;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이 알까 모르겠지만 그런 분의 사소한 말 하나 듣는 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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