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2014.08.12 - 1088호
위클리경향 편집부 엮음 / 경향신문사(잡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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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은 다른 말로 하면 을을 상대로 한 갑질을 노사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p. 52

 



안철수와 김한길이 사퇴했다.

이번은 박원순과는 사정이 다르고, 그래서 이들은 더 많은 욕을 먹었다.


 일단 7.30 재보선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잘 이용만 한다면 유리할 수 있었던 선거였다. 솔직히 딱히 기대도 안 했지만, 여론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소리이다. 이미 야당은 친노와 친노가 아닌 파들로 분리되어있던 상황이었다. 솔직히 한 인물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는 있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이란 인물이 펼치려 했던 세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점에서 성공하고 어떤 점에서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한다면 난 딱히 상관은 없다 보았다. 당내 국회의원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려면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당 내부의 파벌 싸움에 정신이 팔려 결국은 공석상에서까지 멱살잡이를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안철수와 김한길이 손놓고 멍하니 있다가 결국 사퇴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처음에 녹색당에 가입하고 여러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환경을 위한 정당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은근히 팀을 만들고 남을 모함하는 것을 보고 큰 실망감을 느꼈었다. '당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저렇게 충돌이 많은가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볼 때,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뭉치다가도 이익이라던가 철학의 차이라거나 여러 사정으로 서로 갈라서기도 하는가보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한 때 기득권을 잡고 있었던 야당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다가 국민이 중요하다는 정치철학을 놓친 경우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는 없다. 

 자동차에 대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현대모비스의 광고효과 기사는 설명이 너무 짧은 것 같아서 약간 실망이었지만, 박태주 교수의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한 설명은 현대차 공장의 내부사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가장 잘 설명해준 듯하다. 최경환 효과의 일시적인 성질을 꼬집는 기사도 꽤나 예리했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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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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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할 때는, 오로지 국사를 걱정하는 일 외에는 항상 한 걸음 물러서고 한 고개 낮추어, 학문에 뜻을 모아 "나의 배움이 완전하지 못한데, 어찌 성급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겠는가?" 해야 합니다. (...) 그러므로 언제나 빼앗을 수 없는 의지와 꺾을 수 없는 기개와 속일 수 없는 식견을 지녀야만 합니다.- p. 26

 

 2012년에 이 책이 다시 정리되어 나오는데, 그 책에서는 '편지를 쓰다'가 아니라 '소통하다'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있다. 요즘 불통을 소통이라 빡빡 우기는 시대이다보니, 나이 차이도 매우 많이 나는 퇴계와 고봉이 서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허물없이 가정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란 걸 더욱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엔 전화나 카톡으로 실시간으로 안부를 물을 수 있고, 그나마 남은 우체국마저 무인 우체국으로 변하는 시기이니 편지의 의미가 그닥 중요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퇴계와 고봉이 편지로밖에 소통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화 명량을 볼 때 사람들이 더욱 커다랗게 감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 때문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밑에서 커다란 배를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나누던 때엔 붕당정치가 막 시작되었던 시기이며, 따라서 편지를 보내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다.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서 인편이 없으니 누구에게 편지를 부치기가 참 난감하겠다.' '내 아들이 서울로 올라가니 그에게 이 편지를 동봉해서 보내겠다' '내 휘하에 있는 자네의 친구 누구누구가 이 편지를 가지고 내려갈텐데, 잘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등 그들이 편지를 보내기 참 불편했던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편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절실했을 것이고, 편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층 더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읽다보면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

 대충 편지 내용은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고봉 기대승이 퇴짜를 놓는다는 게 주요하다. 하지만 둘 다 같은 성리학 학자이다보니, 논쟁하는 것도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고봉이 꼬치꼬치 따지는 성격이다보니 퇴계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 가끔 책은 쓸모없는 말 뿐이고 실천의 핵심이 담겨있지 않다보니 본뜻은 책 밖에 따로 숨겨져 있다는 말이 떠돈다. 난 법정스님의 에세이로부터 이와 비슷한 글을 접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그런 투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퇴계 이황이나 고봉의 이론에 반대하던 사람이 제시한 이론이고, 기대승은 그에 '성현의 마음씨가 그렇게 좁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 성현들은 도를 밝히고 책을 지어 해와 별처럼 찬란한 이론을 지었는데, 어째서 그들이 가르침을 아끼고 숨기는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등의 의견으로 반박한다. 그는 퇴계 이황이 떠난 마당에서 마지막까지 성리학 학자답게 살려다가 붕당정치가 시작되려는 흐름이 조정에서 일어나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고 시골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편지들에서 내가 깜짝 놀란 건 퇴계 이황의 태도였다. 사실 먼저 고봉의 의견을 펼칠 것을 요청한 것도 퇴계 이황이었고, 그는 사단칠정 논쟁을 중지할 때도 여러 편지를 나눠보고 나서 그의 학문이 깊음을 파악하고 조정에 고봉을 적극적으로 써달라 추천한다. 이후 그는 먼저 사단칠정 논쟁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부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시인한다. 심지어 무극이 태극이라는 이론은 또 다른 젊은 학자의 의견을 참고하고선 아예 없애버리는 파격을 보인다. 나이나 직위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신의 이론을 수정할 줄 아는 그의 모습에서 일면 성자같은 면까지 보였다. 애초에 독학으로 성리학을 공부하고 거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을 세우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만일 그가 고봉 기대승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후 율곡 이이가 고봉의 의견을 다시 정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 세명은 중국에서 수입해온 이론 외에는 별다른 희망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철학의 꽃을 피워낸 사람들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신이 '철학교수는 있는데 철학자는 없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시대는 자본주의의 극에 달해있고 정치계는 이익다툼하기 바쁘다.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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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민음사 세계시인선 1
보들레르 지음, 김붕구 옮김 / 민음사 / 197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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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들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ㅡ오 괴로워라! 괴로워라!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p. 24

 

 

 

 

악의 꽃 삽화는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준 듯하다.

딱히 악의 '꽃'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시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파고든다.

 

 그러나 아무리 후대에 천재 시인이라 칭송받더라도 시인 그 자신은 부모의 인정을 못 받아서 얼마나 고뇌했는지 알 수 있다. '돈 하나 벌 줄 모르고 방탕한 친구들과 시짓기나 하는' 보들레르는 그로 인해 돌아가신 부친이 남겨둔 재산까지 제한당하자, 그 때부터 모친도 냉대한 듯하다. 다른 모든 예술가들이 가족의 냉대엔 관심도 없었다 할지라도, 근대 방랑시인의 이미지를 처음 남겨준 보들레르 그 자신은 관심이 없진 않았던 듯하다. 오죽하면 알바트로스라는 시를 써서 자신을 그 새를 비유할까. 어떤 이유로 인해 하늘에 추락해서 발에 땅이 묶인 새. 하늘을 날아다니면 크고 멋있지만, 땅에서 걸어다니면 거치적거리기만 하고 뒤뚱거리게만 하는 날개. 그로 인해 놀림당하는 부끄러운 자신.

 보들레르는 말년에서야 어머니에게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어떨까. 이 시에서 나는 씁쓸함과 가슴아픈 연민을 느낄 뿐이었다. 남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할 예술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푹 빠져들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어떤 사정으로든 남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푹 빠져들만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너무 지나 사람들은 영상으로 고어와 선정성있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성은 문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 악의 꽃에서 나오는 시 뿐만 아니라 삭제조치되었던 작품들조차 보들레르가 독자들이 느끼리라 기대하고 추구했던 충격을 경험할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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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014.08.05 - 1087호
위클리경향 편집부 엮음 / 경향신문사(잡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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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이른바 '국가 대개조'를 운운할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 p. 82

 

 

 

 

일단 주간경향의 이번 호 테마가 세월호 사건 100일 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유가족은 특례입학 등의 혜택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계급 구별하지 않는 처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 세월호에 관련된 새누리당의 망언은 유가족과 시민들의 연대를 분리시키려는 정치적 전략이다.

 

 참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분명 세월호 침몰은 정부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연결되어서 일어난 현상이다. 세월호가 소속된 청해진해운 회장 유병언이 존재했다는 자체가 그 증거이지만(유병언이 백골이 되서 발견되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세월호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무사히 통과시키기 위한 목적때문에 정부와 일부 여론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는 듯하다. 즉 자신들을 정치적 세력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새누리당은 다양한 작전을 써서 세월호에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 100일이 지나도록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다. 7.30 재보선은 여당의 승리로 끝났고, 사람들은 점점 '현실'에 파고들어 그들을 잊어가고 있으며, 결국 그들은 심적 육체적으로 고단함을 호소하며 여전히 광화문 길거리에 앉아 있다. 점점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정부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음을 느낄 때 어떻게 될까?

 내가 이 큰 사건에 대해서 뭔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한 가지 보기에 찜찜한 장면이 있다. 왜 소위 진보라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세월호에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할까?

 백번 양보해 아직 내가 애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안함 사건이 세월호 사건보다 더 크다는 심재철 의원의 말과 이 말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결국 누가 타고 있었느냐의 논쟁으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는 결국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은 군인vs학생의 대결구도로 좁혀질 것이다.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무슨 나이나 직위가 특권도 아니고, 신체포기각서를 쓴 것도 아니고 그만 좀 하자. 중요한 건 우린 아직 삼풍특별법도 만들지 않았고 성수대교특별법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 내가 언제고 하는 소리는 이 셋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은 투표하러 가자. 대통령 잘 뽑자. 그리고 왠만큼 늙어 분별력 없는 사람들은 투표 못하게 하자.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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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원성 지음 / 화니북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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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의 추억

간밤에는 밤을 꼬박 새웠어요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거든요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하거든요

별의별 얘기 끝이 없도록
부끄럼 없이 속 시원하게
자기 허물 다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았죠

하나가 웃으면 따라 웃고
하나가 괴로우면 따라 괴로워하고
연못 속 송사리떼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새벽 예불 할 때 모두 서로를 위해 기도했어요
서산에 동이 터서야 하나둘 잠이 들었죠
아침 공양도 거르고 잠을 자지만 배고프지 않았죠

도반을 초대한 스님은
한 채뿐인 이불을 우리에게 내주고
구석에서 새우잠 들지요- p. 166

 


 


첫 작품과는 달리 원성 스님의 글이 많이 달라졌다.

그림에서도 많이 달라졌지만 가장 돋보이는 변화는 시에서이다.


 예전엔 어머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글이 많았는데, 여기에서부터 그는 자신의 생활에 주목하기 시작한 듯하다. 처음에는 사람을 사귀는 것의 어려움과 어떤 사람과의 일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도반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를 쓰고 있을 때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도반'이란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 과정은 놀랍게도 움직이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보라는 혜민 스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록 스님도 사람이라 분노를 느끼지만, 그는 마음의 움직임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자세히 들여다본다. 언젠가 문학이 감정의 찌꺼기를 분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투의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꽤 절제있고 귀여운 분출물이 아닐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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