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원성 지음 / 화니북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불의 추억

간밤에는 밤을 꼬박 새웠어요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거든요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하거든요

별의별 얘기 끝이 없도록
부끄럼 없이 속 시원하게
자기 허물 다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았죠

하나가 웃으면 따라 웃고
하나가 괴로우면 따라 괴로워하고
연못 속 송사리떼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새벽 예불 할 때 모두 서로를 위해 기도했어요
서산에 동이 터서야 하나둘 잠이 들었죠
아침 공양도 거르고 잠을 자지만 배고프지 않았죠

도반을 초대한 스님은
한 채뿐인 이불을 우리에게 내주고
구석에서 새우잠 들지요- p. 166

 


 


첫 작품과는 달리 원성 스님의 글이 많이 달라졌다.

그림에서도 많이 달라졌지만 가장 돋보이는 변화는 시에서이다.


 예전엔 어머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글이 많았는데, 여기에서부터 그는 자신의 생활에 주목하기 시작한 듯하다. 처음에는 사람을 사귀는 것의 어려움과 어떤 사람과의 일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도반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를 쓰고 있을 때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도반'이란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 과정은 놀랍게도 움직이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보라는 혜민 스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록 스님도 사람이라 분노를 느끼지만, 그는 마음의 움직임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자세히 들여다본다. 언젠가 문학이 감정의 찌꺼기를 분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투의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꽤 절제있고 귀여운 분출물이 아닐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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