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선물을 해주겠단다. 물방울 다이아...는 안되고, 빌딩도 안된다고 해서 걍 책이나 사달라고 했다. 그리하야 내가 고른 것은 (그동안 못 사고 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에드워드 윌슨, 인간본성에 대하여.
친구는 어젯밤 영풍문고에서 책을 사가지고 울집에 찾아왔다. 또 내 동생에게 준다고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도 같이 사왔다. 고마워, 친구야...
여기까지는 좋은데.
아무리봐도 책이 이상;;했다. 영풍문고에서 샀다고 했는데 비닐 포장이 되어있더라 이 말이지. 난 거기서 책을 사본 일은 없지만, 적어도 교보문고 같은 곳에서 한권한권 비닐 포장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친구 앞에서 좀 미안하긴 했지만 책을 샅샅이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은 훑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건 중고다. 그것도 아주 너덜너덜한 중고다. 견본으로 놓여있던 것이 확실하다. 더불어, 숱한 아이들이 이 책을 견본삼아 숙제도 베끼고 했을 것이다. 얼마나 너덜너덜하냐면, 하드커버 껍데기가 완전히 나갔다. 가운데 연결부분, 하드커버가 아예 절단이 나서 두조각이 됐다.
비닐 속 진짜 책표지는 아랫쪽이 더없이 후줄그레하게 찢어지고 접혀져 있고, 속표지에는 립스틱 자국인지 쭈쭈바 자국인지 알 수 없는 분홍색 손자국도 찍혀 있다. 책을 세워놓고 보면 아래위에 손때가 묻어있음은 물론이며, 심지어 우글쭈글하기까지 하다. 페이지가 어찌나 잘도 넘어가는지 가운데가 짝짝 갈라진다.
친구는(이녀석 눈은 뒀다 뭐하는지) 이 책을, 무려 3만9000원 정가를 다 주고 샀다(거긴 인터넷 할인점이 아니라 액면가 그대로 받는 대형서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말 그대로 하드커버, 집에 소장하는 책이다. 지하철에서 보고 치워버리는 책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책을 손님한테 제 값 받고 팔 수 있나? 아무리 손님이 꼼꼼이 살펴보지 않았을 지언정, 이건 책방에서 팔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난 사실 웬만한건 그냥 넘긴다. 왜냐? 교환하러 가기가 귀찮아서.. 근데 이건 도저히 도저히 못 참겠다. 집에 돌아가는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야밤에 나가 영수증을 받아왔다. 오늘 낮에 영풍문고에 가서 바꿔올 참이다. 생각 같아선 이거 판 년인지 놈인지, 이 책으로 대갈통을 후려갈기고 싶다. 책 장사 제대로 하란 말이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동생이 선물받은 줌파 라히리의 책도 하필 파본이다. 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