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알라딘 불매운동과 그 파장(바람구두 등등이 서재를 떠나고 로쟈님은 욕을 먹고 하는)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했다.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심란한지 정리를 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고, 불매운동에 대한 나의 이 미적지근한 태도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유를 찾아봐야 했고, 사람들이 그토록 기분나빠하는 이유(찬반 양쪽 모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했고, 그냥 넘어가자니 좋은 사람들 떠나보내는 게 너무 섭섭했고, '논쟁'의 중심에 서신 두 분과 우리 회사와의 관계까지 거론되는 상황이고...
나는 알라딘 '원년 고객'이고, 거기에는 알라딘 사장이 조유식이라는 것(다른 기업들하고는 그래도 좀 다르지 않을까)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처음에 알라딘에서 책을 사게 된 연유야 어쨌든, 그동안에는 기억조차 더듬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서재가 내게 소중한 공간이 됐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서재 분들 중에는 더불어/함께/나누며 사는 세상에 뜻 맞는 이들도 많고 분위기도 지적이고... 그래서 여기서만 책을 사고, 여기를 참 좋아했다.
나는 불매운동의 명분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불매운동 '할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미온적이었던 이유는, 알라딘에 항의하는 형식이 불매운동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형식(나중에 편지보내기라는 방식으로 발전한)이 될 수도 있고, 알라딘 측이 정 무식하게 나오면 까이꺼 회사 앞에 가서 시위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불매운동은 내 경우 지난해 책을 거의 사지 않아 '선언' 이외에 참가의 의미가 없었다. 불매를 통해 나는 어떤 불편이나 불이익이나 이득도 없고 대체물을 찾지도 않을 것이므로. 입으로만 '동참해'~ 했지만 나의 행동에 실상은 어떤 변화도 없었으므로. 그럼 왜 찬성한다고 했냐? 의사표시다. 알라딘이 나빴다는. 고치라는.
그래서 남들이 불매운동 안 한다 해도 '대의에 동의한다면 다른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는 거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기분이 나빠졌을까?
마태우스님은 불매운동 찬성했다가, "추천 블로그들이 몽땅 불매 관련글로 도배돼 있는 게 싫다"는 글을 올렸다. 마태우스님이 워낙 재미나고 상식적인 분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해도 된다. 한 주제로만 몽땅 채워지면 어떤 분야 어떤 이슈이든 감정적으로 짜증이 나지. 하지만 나라면 '도배질' 때문에 불매운동에 반대하지는 않았을 거다. 일부러 도배한 것도 아니고...
로쟈님이 어디어디에서 불매운동에 대해 말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수긍했다. 그것도 다 그 양반 말 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쟈님이 말한 내용을 놓고 비열한 배신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뭔 취지인지 대충 이해도 가고. 그래서 로쟈님 서재에 "알라딘이 잘못했는데 왜 로쟈님이 욕을 먹지"라는 댓글 하나 올리고 말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쟈님한테 막 기분나빠하고 그런 걸 보다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글구 나도 덩달아 기분이 나빠졌다.
로쟈님을 가리켜서 '문화권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 솔까말 로쟈님이 뭔 권력이 있슴둥. 그러니 '신문에도 글 쓰고 지식권력을 휘두르는 우리의 적'으로 보지는 말고, 걍 '알라딘이 탄생시킨 스타' 정도로 해두자. 암튼 로쟈님은 알라디너들 중에 제일 똑똑한 분이다. 그런데 젤 똑똑하신 분이 나중에 안티로쟈들에 부딪쳐 올린 글이, 분노를 많이 산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평소의 로쟈님 스타일의 담백한 글과 달리, 유감스럽지만 비아냥조로 읽혔다.
우리 다같이 여기서 노는데, 여기 직원 하나는 자기가 생각하기엔 좀 억울한 일을 당했다. 요새 그렇게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여기서도 그런 일이 생겼구나. 이 세상 천지 다 바꾸진 못해도 우리가 여기서 노는 사람들이니 같이 좀 나서주자, 사장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자고들 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제일 똑똑해서 감히 쉽게 맞장뜨기 힘든 사람이 비아냥조로 말을 한다. 나도 비아냥 많이 한다. 비아냥 문체를 가진 사람들 여럿 있다. 그게 촘 쿨해보일 때도 있고. 하지만 똑똑한 사람의 비아냥(더 점잖은 표현이 생각이 안 나서 자꾸 이 말을 반복해서 로쟈님께는 죄송하지만)은 너무 잔인하다. 비아냥의 방식조차 너무나 똑똑하고 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더 화가 나고, 더 기분이 나쁜 거다. 이럴 때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의 그 지식인됨을 의심하고 열받게 된다. 지식보다 진심이 진리니까.
하지만 로쟈님도 알라딘이 잘못한 걸 잘못 안했다 말하는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굴러갔다고 생각한다. 로쟈님이 진심으로 알라딘 비정규직 따위 문제 안 된다고 말했을리야 있겠는가. 나는 로쟈님의 진심도 믿는다. 하지만 공격받으니 다시 공격으로 맞서는 거, 로쟈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답지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 일이 두고두고 로쟈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참 안타깝기도 하다. 누구보다 이 사태는 로쟈님에게(알라딘에게보다 더) 큰 타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구두도 떠나고 메아쿨파님도 떠난 걸 보니 마음이 허하다. 여기서 앞으로 뭔 낙에 노나...
1. 알라딘이 잘못한거 맞으므로 불매운동 한다
2. 알라딘이 잘못한거 맞지만 불매운동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3. 알라딘이 잘못한거 맞지만 그렇다고 젤 나쁜 기업은 아니다.
4. 남들도 다 하는 잘못을 한건데 뭘 그러니.
5. 비정규직을 나가라 하는건 전혀 잘못 아니다.
나는 사람이 별로 치열하지가 못해서 1~3번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4번, 5번처럼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바람구두가 썼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알라딘 서재 문 닫고 안 닫고가, 그의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랴. 다만 늘 그렇듯 이번에도 진심을 다 한 거지. 그 진심이 느껴지고, 진심이 비아냥과 때로는 비난과 거부에 맞부딪쳤을 때 느꼈을 마음이 와닿아서 가슴이 아팠다. 어제 애기아빠 됐다는데.
떠난 분들은 '진심'이었다. 알라딘의 해명은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더이상 어떻게 해야 진심이냐"고 하시면 답은 없다. 그 말도 맞다.
문제는, 복직을 시켜야만 진심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풀어가고 하겠다는 진심을 보여달라는 건데...
알라디너들도 그런 진심으로 알라딘에 항의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자는 거였는데,
그마저도 벽에 부딪쳐 끝내 떠난 사람들...
혼자 뒤늦게 속상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