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멘>과 <하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공포 영화가 끌려서 가리지 않고 보던 중에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오멘>을 다시 봤습니다. 짧게 느낀 점이라면, 예전 (공포) 영화는 꼭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고,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하는 반면, 요즘 만들어지는 (공포) 영화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너무 많이 설명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하려는 얘기가 이게 아닌데... <오멘>을 보면서 이상하게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생각났습니다. 다른 맥락이지만, 유모가 데미안 앞에서 목을 메어 자살하는 장면은 <하녀>의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오버랩 되더군요.   









 

 

그리고 임신한 어머니 캐서린이 청소하다가 떨어져서 유산하는 장면 또한 <하녀>와 오버랩 되었고요. 

 

데미안의 생일 파티 장면도 빼놓을 순 없죠. 모든 것을 다 가진 아이, 하지만 내면은 텅 비어있는 아이. <오멘>의 마지막 장면의 데미안과 <하녀>의 딸의 표정 역시 대비되고요.  







 

새로온 유모 베일록 부인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그녀는 이 대저택에 고작 '유모'로 들어와 이 집을 자신의 지배하에 놓습니다. 그리고 영화 역시 절반 이상이 이 거대한 저택에서 벌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온한 생각이 들더군요. 임상수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하는 대신 <오멘>을 리메이크 한 게 아닐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적그리스도의 소굴에 들어간 착한 유모이야기를 그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임상수 감독은 <하녀>를 통해, 자본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종교까지 같이 아우른 게 아닐런지. 나쁜 자본을 독점한 재벌은 적그리스도라는 이야기?  

그냥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적어봤습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임상수 감독이 한국 사회를 확실히 ‘엿 먹이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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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06-1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멘>을 보면서 임신한 캐서린이 떨어지는 장면이, 떨어질 것 같은 암시가 있는 장면이 너무 소름끼쳤습니다. 물론, 어떤 장면들은 이불로 가려서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처음 <오멘>을 보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
<하녀>는 괜한 마음에 피했었는데, Tomek님 시선을 좀 빌려서, <오멘>과 비교하면서 봐야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영화 관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Tomek 2010-06-10 23:09   좋아요 0 | URL
<하녀> 아직 안 보셨는데, 이 글 읽으시면 어떡해요.. ㅠㅠ 저는 영화는 가능한 많은 정보 없이 보는 주의라... 혹시 영화 보시고 실망하시면 어쩌죠?
<오멘>은 지금봐도 아주 잘 만들어진 소름끼치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2, 3, 4편은.. ㅠㅠ 할리우드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진이 빠질 때까지 뽑아내는 것 같아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1주

6월 2일에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 작가>는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유령 작가'는 '대필 작가'를 말하며 이 영화의 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는 영국의 전 수상인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입니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이미 초고가 나온 원고를 손만 보는 조건으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한 조건은 그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습니다. 단, 전임자가 사고로 죽은 사실과, 계약을 채결한 이후로 그를 따라다니는 이상한 상황들이 좀 꺼림칙했지만 그는 만족합니다. 영국을 떠나 미국령 섬에서 거주하는 전 수상을 인터뷰하고, 전임자의 초고를 검토하면서 그는 조금씩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수상의 정치 이력은 수상쩍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포로들의 고문을 용인해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로 국제 전범 재판에 회부된 것과 미국의 비호는 그를 더욱 더 의심스러운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마침내 대필 작가는 자신의 본분을 버리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이면에 파헤친 진실을 추적합니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숨은 작가에서 그는 세상에 전면으로 뛰쳐나옵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유령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던 유령들은 적잖이 놀라게 됩니다. 요즘 나오는 스릴러와는 달리 고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유령 작가>는 조금은 허무한 반전을 제외한다면,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차분히 쌓아가는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는 <유령 작가>에서 진실을 묵인하지 않고 찾아내는 작가를 그렸습니다.  

 

작가를 다룬 영화는 많이 있지만, 한국 영화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첩첩산중>이 있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효섭(김의성)은 실력 없는 삼류 소설가에 성격까지 더럽고 자의식은 강한 작가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의 작가적 순수성을 과시하듯 유부녀 보경(이응경)과 불륜에 빠져 있습니다. 반면 그를 따르는 생활력 강한 건강한 여인 민재(조은숙)를 이용하는 치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더럽고 비루하고 치사하고 위악적이지만, 그가 쓰는 소설은 민재의 말에 따르면, 아름답습니다. 전혀 교집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점의 효섭의 삶과 소설은 말 그대로 위선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은 <첩첩산중>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설가이거나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등단을 목표로 하는 소설가 지망생 미숙(정유미)은 전주에 내려가 친구 진영(김진경)을 만납니다. 그 김에 미숙은 스승이자 옛 애인인 상옥(문성근)을 만나고, 상옥과 진영이 서로 사귄다는 것을 알고 분개한 미숙은 옛 애인이자 이번에 낸 소설로 상을 받은 명우(이선균)을 전주로 부릅니다. 얽히고설킨 짝짓기는 점점 점입가경이 됩니다. 미숙은 전부터 존경하는, 은희경 작가를 만나지만, 은희경 작가는 미숙이 상옥과 모텔에서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옥은 명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자식은 순전히 날 따라 하기만 한 개자식"이라며 욕을 하고, 명우 역시 상옥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자기 과시는 참으로 민망합니다. 홍상수 감독이 그린 <첩첩산중>의 작가 역시 데뷔작에서 그린 작가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직업과 삶의 관계, 창작가와 자연 인간의 관계를 가감 없이 바라봅니다. 냉혹한 시선은 거두었으나, 그의 눈매가 부드러워 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인간들을 차갑게 관찰합니다.  

 

작가를 다룬 영화 중 <화양연화>와 <2046>을 뺄 수는 없습니다. <화양연화>의 차우(양조위)는 아내의 불륜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아내는 앞집 남자와 바람이 났고, 앞집 남자의 부인인 수리첸(장만옥)은 초우와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합니다. 이들은 복수를 다짐해보기도 하지만, 행동에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차우는 호텔에 틀어박혀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수리첸은 가끔 호텔에 들러 차우의 글을 교정을 봐주기도 하고 때로는 대신 쓰기도 합니다. <화양연화>에서 초우가 쓰는 소설은 이 둘의 사랑을 엮어주는 도구입니다. 물론 더 큰 원인은 배우자의 불륜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서로 가까워집니다. 이별 연습을 하고 나서야, 이들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의지해왔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들이 헤어진 후, 차우는 자신이 겪은 사랑을 글로 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천년의 기억이 보관되어 있는 앙코르와트의 나무 구멍에 그의 사랑을 봉인합니다.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간직하는 것. 차우의 사랑은 그렇게 애틋합니다.  

 

반면 <2046>에서 차우(양조위)는 그의 사랑을 그가 집필하는 SF소설 『2046』에 모두 풀어놓습니다. 차우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아비정전>부터 <화양연화>를 거쳐, <2046>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랑이야기를 아우릅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2046으로 향하는 일본인 청년 탁(기무라 타쿠야)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차우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탁이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서 잃어버린 기억의 자리에 새로 시작되는 기억을 놓지만, 차우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사랑의 기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죠. <2046>에서 차우가 집필하는 소설은 그가 그려내는 애절한 사랑이야기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현실과 그가 그려내는 소설은 멋지고 애절한 신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에도 작가(콜린 퍼스)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가 무슨 소설을 쓰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는 포루투칼어로 사랑을 갈구하는 시를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  

 

 

 

* 덧붙임: 

스티븐 킹 원작의 <미저리>와 <샤이닝>이 빠진 것이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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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6-0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저리와 러브 액추얼리만 봤네요~ 유령작가는 월욜에 볼 예정이고요.
훌륭한 페이퍼에 추천은 필수예요.^^

Tomek 2010-06-06 08:42   좋아요 0 | URL
<유령 작가> 꼭 보셔요! 진짜 강추합니다. ^.^;
고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 작가 평가가 좋더군요. 한 번 봐야겠어요.^^ 작가를 다룬 영화라고 하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도 생각이 나네요.

Tomek 2010-06-06 08:43   좋아요 0 | URL
구스 반 산트 감독 영화 중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작품입니다. 그 지루했던 <싸이코>도 봤는데... 꼭 챙겨봐야겠어요.
<유령 작가> 추천합니다! ^.^;

Mephistopheles 2010-06-0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인져 댄 픽션...이라는 영화 추천합니다..^^

Tomek 2010-06-06 08:44   좋아요 0 | URL
아직 보지 못했어요. 꼭 챙겨보겠습니다. ^.^;

라로 2010-06-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꽤 재미있었고, [어댑테이션]도 꽤 잘쓰여진 각본의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고,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도 재밌게 봤고, 꽤 인상 깊었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미스 포터], 메피님이 언급하신 [스트레인져 댄 픽션],,등등등 언급하신대로 작가를 다룬 영화가 많네요!!

Tomek 2010-06-06 08:46   좋아요 0 | URL
작가를 다룬 영화가 은근히 많네요! 맞아요. <어댑테이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다들 독특한 캐릭터였죠.
<미스 포터>도 챙겨봐야겠어요. ^.^;

2010-06-12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0-06-12 09: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생각해보니 은근히 많은 것 같아요.
<유령 작가> 재미있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백 사장과 선우가 할 말이 있다고 하길래... 여러모로 달콤 쌉사름한 결과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여기까지는 괜찮아
     중요한 건 추락하는 게 아니라
     착륙하는 것이야
 

- <증오(La Haine)>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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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5 (13) 
        타이틀 The Orchid's Curse 
        각본 Barry Pullman 
        감독 Graeme Clifford 
        방영일 1990년 10월 27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 이야기  

데일은 방에서 오드리의 쪽지를 발견하고 오드리가 ‘애꾸눈 잭’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안다. 데일과 해리는 인질범이 요구한 약속 장소로 나가는 대신 애꾸눈 잭으로 가서 오드리를 구해낸다.  

다나는 해롤드가 가지고 있는 로라의 일기장을 훔치려다 실패한다. 다나는 매디를 끌어들여 자신이 해롤드의 관심을 끄는 사이에 로라의 일기장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하고, 해롤드는 배신감에 자해를 한다.  

순회 법정에서는 리랜드 파머의 보석이 결정되고, 리오 존슨 또한 혐의가 분명치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판단되어 재판을 무기한 연기한다.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가 벤자민을 찾아와 유령숲 개발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벤자민 역시 그 제안을 고려한다.  

 











 

 

2. ABC  

드라마를 보면, 이번 회는 <트윈 픽스> 시리즈 내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로라 파머의 부재다.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이 드러나기까지, 드라마는 직간접적으로 로라 파머를 언급함으로써 드라마의 동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회에서는 로라 파머가 빠져 있다. 드라마는 오드리와 해롤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며 서브플롯 또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빗과 마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트윈 픽스라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는 듯했다. 로라 파머는 그 자신이 마을을 규정하는 아우라가 됐으며, <트윈 픽스>는 로라 파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물론 ABC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내가 바로 마을이다!" 이 대사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트윈 픽스>의 원래 의도를 고려해보면 의미심장하다.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의 실마리조차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ABC 방송국 내에서도 조급증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데이빗과 마크에게 범인을 빨리 드러내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했고, 결국 데이빗과 마크가 <트윈 픽스> 시리즈를 떠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세한 사항은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의 실체가 드러날 때로 미룬다.  

 

 

3. 그레임 클리포드 (Graeme Clifford)  

그레임 클리포드는 편집기사로 경력을 시작해 감독이 되었다.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를 찍었는데,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여배우 프랜시스>와 <마지막 대부(The Last Don)>인데, 아카데미와 에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는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주어진 서사를 꾸려나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데, 감독을 맡은 이번 회에서도 그런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4. 해롤드 스미스  

다나는 로라의 일기장을 훔치고 집밖에서 해롤드에게 이야기한다. "나랑 같이 나가요. 어서요.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어요?" 해롤드는 두려워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만 곧 쓰러지고 만다. 햇볕을 쬐지 못하는, 알비니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스크립트에는 그 이유가 희미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드라마에서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삭제된 대사는 다음과 같다.  

해롤드: 내...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요.
다나: 어디를요? 무슨 말이에요?
   



 

해롤드가 얘기하는 것은 ‘악(惡)’이다. 일전에 해리가 데일에게 설명했듯이, 이곳 트윈 픽스의 숲에는 악이 만연해있다. 하지만 해롤드는 악은 숲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전체에 걸쳐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집밖을 나서지 못하고 집 안에서 난초와 같이 지낸다. 그렇기에 로라가 해롤드와 가까이 지네고, 그녀의 일기장을 맡긴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 순수한 공간이야말로, 자신의 이야기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에 악이 존재해요."

"내가 조언 하나 하는데, 숲을 주시하게나."  

 

로라와 해롤드의 이야기는 극장판 <트윈 픽스>에서도 언급된다.  



 

 

5. 유령숲 사업  

벤자민 혼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개발하려고 하는 유령숲 프로젝트는 처음의 계획보다 굉장히 멀리 나아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노르웨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거의 계약할 뻔 했으나, 딸 오드리의 방해로 실패했고, 동생 벤자민 혼의 도움으로 아이슬란드 투자자들의 계약을 이끌어낸다. 한편 유령숲 개발에 방해가 되는 패커드 제재소를 없애기 위해서 캐서린 마르텔과 음모를 꾸미는 듯하면서, 조시 패커드와도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그 결과로 제재소는 불에 탔고, 조시 패커드는 보험금을 챙기고, 캐서린 마르텔은 실종됐다. 이렇게 여러 상황이 겹친 상황에서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가 등장한다.   

 

토지무라는 유령숲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벤자민에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지만, 벤자민은 탐욕으로 이 거절을 제안하지 못한다. 토지무라의 등장은 또 다른 미스터리를 유발한다.  

 

 

6. 로라의 일기  

다나가 해롤드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은 <트윈 픽스> 시즌 2가 시작하기 전 출간된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The Secret Diary of Laura Palmer)』에 실린 내용이다. 1985년 10월 18일, 다나와 로라가 13살일 때 경험했던 첫사랑의 짜릿한 내용을 이번엔 다나의 기억으로 기술하고 있다.  

음... 내가 13살, 아니 어쩌면 14살 때 이야기에요. 나와 로라는 몸에 꽉 끼는 미니스커트를 입었어요. 너무나 꽉 꼈지만, 로라는 나보고 그걸 입으라고 했죠. 그리고 우리는 로드하우스에 가서 남자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이름은 조시, 릭, 팀이었죠. 스무 살 정도 됐을까. 그들은 우리에게 잘해줬고 우리를 성인으로 대해줬어요. 릭은 우리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고, 로라는 대충 얼버무렸어요.
숲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시냇물은 어슴푸레 어두운 듯 보였어요. 남자들은 모닥불을 피웠죠. 난 팀이 제일 맘에 들었어요. 그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과묵했거든요.
릭이 보드카를 가지고 오더니 로라가 마시기 시작했어요. 난 로라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로라는 내게 술병을 건네줬고 난 한 모금 마셨어요.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로라는 남자들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릭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팀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로라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게 날 미치게 했죠.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우리 다 벗고 물에 들어가요."
우린 옷을 벗었어요. 남자 아이들은 우릴 쳐다보고 있었죠. 물은 정말로 따듯했어요. 난 물 속에서 그 아이들의 하얀 다리를 볼 수 있었어요. 로라가 조시와 릭하고 키스를 하기 시작하자, 난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그래서 난 그냥 수영을 했죠. 내 생각엔 난 아마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죠. 그때 팀이 내게 다가왔어요. 그는 내게 키스했고, 날 애무하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은 끝까지 우리에게 잘해줬어요. 우리를 놀리거나 깔보지 않았죠. 그리고 작별인사를 할 때, 팀은 내 손에 키스를 해주었고, 우린 작별의 입맞춤을 했어요.
난 아직도 그 때의 입맞춤을 느껴요. 그의 입술은 따듯하고 달콤했죠. 내 심장은 거칠게 뛰고 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그냥 키스뿐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게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때였어요. 하지만 로라는... 그만할게요. 미안해요.
   

 

『로라의 일기』에서는 이 부분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 마지막 부분만 옮긴다.  

P.S: 오늘 밤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같아. 남자들의 나에 대한 태도도 매번 조금씩 거칠어져가는 듯한 느낌이야. 나 역시 더 대담하고 섹시해져서 나와 접촉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기도 해.
그리고 내가 그들과 접촉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말하지. 어째서 변해 가는지 알 수가 없어... 일어난 그대로 그 자체가 좋을 뿐인데.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그들이 실제보다 더 심한 짓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돼버려. 그 편이 훨씬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야. 그들 쪽은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로라의 일기』는 데이빗 린치의 딸이자 영화감독인 제니퍼 린치(Jennifer Chambers Lynch)가 썼으며, 몇 안 되는 ‘정식 <트윈 픽스> 관련 상품’ 중 하나다. 로라가 자신의 일기장에서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1984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서출판 대성에서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됐으나, 등장인물들의 표기로 보아 일역본을 중역한 것 같은 것으로 보인다. 제니퍼 린치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Boxing Helena)>를 감독했고, 이 영화에는 셔릴린 펜이 주연으로 출연한다.  

 

 

7. 기억할만한 지나침  

 

바비: 이건 완전히 사람 잡겠어, 핑클. 리오를 죽이면 안 된다고 내가 얘기 했잖아요!
핑클: 보험 회사는 환자 상태에 맞게 정확하게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내 몫을 제하고 나면, 지금 이것 아니면 A급 휠체어 밖에 살 수 없어요.
  

바비는 리오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온갖 지저분한 짓을 한다. 바비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셜리는 순회 법정에서 남편 리오가 감옥 대신에 집에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다. 하지만 이 기쁨이 악몽이 될 줄은 그녀도 바비도 모를 것이다.  

 

 

퇴원한 네이딘은 완전히 18살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엄청난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그녀의 성격은 더할 나위 없이 낙천적이고, 힘 또한 냉장고 문을 뜯어낼 정도로 엄청나졌다. 그녀의 퇴행은 빅 에드와 노마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테스트 결과 앤디는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에 기뻐한다. 루시의 아기가 자신의 아이일 확률이 생긴 것이다. 기쁜 마음에 메모에 쓰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받은 곳인 Adams Abortion Clinic이다. Abortion Clinic에서는 임신 중절 수술을 하지만, 미숙아나 조산아들을 치료하기도 한다. 루시는 친언니의 출산 때문에 병원에 갔지만, 앤디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데일과 헤일이 오드리를 비밀리에 구출하는 행위는 엄연히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원래대로라면 절차를 통해 캐나다 경찰과 협력했어야 하지만, 사태의 급박성으로 비밀리에 진행했다. 이 사건은 시즌 중반부에 흘러 문제가 된다.  

 

 

8.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트윈픽스 로라의 일기』 제니퍼 린치, 이명희 옮김, 도서출판 대성
- 『TWIN PEAKS #2.005』 스크립트, 2nd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2000, New Line Cinema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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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4주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다시 개봉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 기억으로 가장 유명(혹은 요란)했던 재개봉은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 배우 주연상 등 알짜배기를 독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수입사에서 다시 재개봉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는 고별 로드쇼가 있습니다. 대한극장이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바뀔 때,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 씨네마가 고별 로드쇼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2010년 5월과 6월엔 유난히 묵은 영화들이 재개봉했거나 상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프린트로 다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최신)의 기술력으로 영화를 복원한 경우입니다. 이벤트성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워낙에 뛰어난 작품들이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로 복원된 옛 영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거의 40여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1997년에 새로이 복원을 한 적이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번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디지털 복원을 한 <대부>는 정말 새로운 영화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타낸 암부 표현은 뛰어나며, 원래의 색감을 복원한 화면은 정말이지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새로이 복원된 화면 안에서 우리는 돈 비토 콜레오네의 냉정하고도 인자한 모습, 가업을 물려받아 점점 냉혈한이 되어가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며 전율을 느낍니다. TV와 DVD는 이 새로 복원된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극장, 그것도 디지털 영사를 하는 곳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가 재개봉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제작한 미로비전의 의지 때문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어떤 의미에서건) 이미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흥행도 뒤따랐습니다. 미로비전은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재개봉하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의도는 심히 불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2층 가옥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은 가히 숨을 막히게 합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단조롭다고 느끼셨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50년 전 영화라고 무시하시지 마시길. 영화를 보다 소리를 지를지 모릅니다.  

 

     

한 때 주성치는 골방의 제왕으로 불렸습니다. 비디오 (대여) 산업이 최전성기를 찍고 있을 때, 유치하고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고 완성도 떨어지는 코미디만 찍어대는 주성치는 불경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완성도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참으로 민망했지요. 게다가 거의 카피에 가까운 인용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요. 그런 리즈 시절의 주성치가 한 단계 점핑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개봉하는 두 편의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입니다. 이 영화에는 주성치 사단으로 불리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총 출동합니다. 영화의 설정과 캐릭터는 『서유기』에서 차용했으나, 그 내용은 주성치의 영화답게 산으로 갑니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웃음과 울음, 재미와 감동, 액션과 멜로의 영역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뽀로뽀로미(般若波羅蜜)”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손오공의 애절한 선택에 기어이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설정과 대사가 난무하면서 패러디 영화에 머무는 것 같지만, 결국엔 패러디를 뛰어 넘어 그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주성치라는 브랜드를 확립시킨 의미심장한 영화입니다.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웃음과 눈물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영 그렇다할 신작이 없는 요즈음, 이번 주에는 옛 영화들로 달래보는 게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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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 주성치의 저 영화를 눈물을 머금고 보았습니다^^; 가끔 케이블 티비에서도 하던데 말이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Tomek 2010-06-01 07:4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골방의 제왕이었죠. 병맛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의 병맛으로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아니었을까... ^.^;

Forgettable. 2010-05-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주성치 영화 재개봉!! ㅠㅠ 보러가고 싶네요! 어이쿠-
왜 이제서야 ㅠ

Tomek 2010-06-01 07:50   좋아요 0 | URL
잠시 들러 보시는 것도..^.^;
잘 지내시죠?

카스피 2010-05-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광보합과 선려기연은 알겠는데 서유쌍기는 무엇인가요? 시리즈 3편인가요?

Tomek 2010-06-01 07:53   좋아요 0 | URL
<서유쌍기>라는 이름으로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동시 개봉하는 성치폐인 영화제(?)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씨너스 이수에서 <월광보합>, <선리기연>을 하루 1회씩, 총 2회 상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