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4주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다시 개봉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 기억으로 가장 유명(혹은 요란)했던 재개봉은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 배우 주연상 등 알짜배기를 독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수입사에서 다시 재개봉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는 고별 로드쇼가 있습니다. 대한극장이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바뀔 때,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 씨네마가 고별 로드쇼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2010년 5월과 6월엔 유난히 묵은 영화들이 재개봉했거나 상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프린트로 다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최신)의 기술력으로 영화를 복원한 경우입니다. 이벤트성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워낙에 뛰어난 작품들이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로 복원된 옛 영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거의 40여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1997년에 새로이 복원을 한 적이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번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디지털 복원을 한 <대부>는 정말 새로운 영화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타낸 암부 표현은 뛰어나며, 원래의 색감을 복원한 화면은 정말이지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새로이 복원된 화면 안에서 우리는 돈 비토 콜레오네의 냉정하고도 인자한 모습, 가업을 물려받아 점점 냉혈한이 되어가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며 전율을 느낍니다. TV와 DVD는 이 새로 복원된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극장, 그것도 디지털 영사를 하는 곳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가 재개봉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제작한 미로비전의 의지 때문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어떤 의미에서건) 이미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흥행도 뒤따랐습니다. 미로비전은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재개봉하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의도는 심히 불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2층 가옥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은 가히 숨을 막히게 합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단조롭다고 느끼셨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50년 전 영화라고 무시하시지 마시길. 영화를 보다 소리를 지를지 모릅니다.  

 

     

한 때 주성치는 골방의 제왕으로 불렸습니다. 비디오 (대여) 산업이 최전성기를 찍고 있을 때, 유치하고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고 완성도 떨어지는 코미디만 찍어대는 주성치는 불경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완성도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참으로 민망했지요. 게다가 거의 카피에 가까운 인용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요. 그런 리즈 시절의 주성치가 한 단계 점핑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개봉하는 두 편의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입니다. 이 영화에는 주성치 사단으로 불리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총 출동합니다. 영화의 설정과 캐릭터는 『서유기』에서 차용했으나, 그 내용은 주성치의 영화답게 산으로 갑니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웃음과 울음, 재미와 감동, 액션과 멜로의 영역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뽀로뽀로미(般若波羅蜜)”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손오공의 애절한 선택에 기어이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설정과 대사가 난무하면서 패러디 영화에 머무는 것 같지만, 결국엔 패러디를 뛰어 넘어 그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주성치라는 브랜드를 확립시킨 의미심장한 영화입니다.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웃음과 눈물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영 그렇다할 신작이 없는 요즈음, 이번 주에는 옛 영화들로 달래보는 게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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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 주성치의 저 영화를 눈물을 머금고 보았습니다^^; 가끔 케이블 티비에서도 하던데 말이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Tomek 2010-06-01 07:4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골방의 제왕이었죠. 병맛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의 병맛으로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아니었을까... ^.^;

Forgettable. 2010-05-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주성치 영화 재개봉!! ㅠㅠ 보러가고 싶네요! 어이쿠-
왜 이제서야 ㅠ

Tomek 2010-06-01 07:50   좋아요 0 | URL
잠시 들러 보시는 것도..^.^;
잘 지내시죠?

카스피 2010-05-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광보합과 선려기연은 알겠는데 서유쌍기는 무엇인가요? 시리즈 3편인가요?

Tomek 2010-06-01 07:53   좋아요 0 | URL
<서유쌍기>라는 이름으로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동시 개봉하는 성치폐인 영화제(?)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씨너스 이수에서 <월광보합>, <선리기연>을 하루 1회씩, 총 2회 상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