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2010년 8월 17일에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 <아내들의 행진>, <길소뜸>, <법창을 울린 옥이> 세 편을 봤습니다. <길소뜸>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영화고, 세 편 모두 스크린에서 처음 보는 작품들입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 감독님의 53번째 연출작이고 1974년에 제작된 영화입니다. <길소뜸>은 82번째 작품이고 1985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창을 울린 옥이>는 15번째 연출작이고 196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임권택 감독님의 60년대, 70년대, 80년대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스스로 자조적으로 표현하길) 영화판에 들어와 영화를 찍은 이유는, 예술가적 자의식의 실현 따위가 아닌, 밥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연좌제로 묶인 몸으로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직업을 갖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바닥’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를 어여삐 보던 제작자의 권유로 그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감독으로 데뷔하기가 죽도록 싫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조감독은 영화가 실패해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지만, 감독은 영화가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항일투쟁액션활극(!)을 완성하고, 다행히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 직업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1960년대에는 흥행감독이었습니다. 그 스스로 모든 장르를 실험하고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나간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라는 국책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영화들에서 자포자기를 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흥행의 부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1980년대, 그는 영화의 형식과 영화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새로운 걸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17일에 본 세 편의 영화는 바로 이 시기를 거쳐 간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영화입니다.   

 

  

이 세편의 영화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무언가 공통되는 하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감상이 배재된 냉정한 시선입니다.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아내들의 행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새마을 영화로 시작해서 반공영화로 끝나는 기이한 영화입니다. 그 당시 임권택 감독이야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 영화가 이상한 것은 그럴만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언가 불균질하면서도 지금 임권택 감독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순(윤미라)과 지순의 오빠(윤양하)가 부모의 죽음을 기억하는 장면에서, 폭력적으로 끼어드는 플래시백, 그리고 아내들이 땅을 개간하는 것을 보기만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자들을 마을의 김첨지가 "이 돼지만도 못한 놈들!"하며 호령하는 장면에서 바로 진짜 돼지들을 보여주는 몽타주를 보면서, "정말 냉정하게 보여주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마을 영화라 보일 수밖에 없는 계몽적인 태도와 화면의 구도는 종종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어쩌면 임권택 감독은 이런 계몽적인 방식을 자신의 영화에 끌어들이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영화는 놀랍게도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으며, 자포자기의 심정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의 영화를 붙들려는 감독의 악전고투가 느껴집니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장인이었습니다.   

 

 

<길소뜸>은 중학교 때 비디오로 처음 빌려보고 거의 20여년(?)만에 다시 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놀랐던 점은, 참으로 고리타분할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영화가 굉장히 모던하게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봤던 한국 영화들은 MBC에서 방영한 <테마게임>보다도 못한 수준의 것들이었습니다. 한국 영화는 꼭 '한국'이란 수식어가 앞에 붙고 또는 방화(邦畵)라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불렀었죠. 그 때 이런 세련된 영화(만들어진지 10여년이 지난 영화인데도!)를 만난 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이후 <장군의 아들>시리즈와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을 (몰래) 보아가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길소뜸>에서 임권택 감독은 여전히 차갑고 끔찍한 상황을 다루었습니다. 이산가족이라는 가슴 뜨거운 소재를 이토록 차갑고 냉정하게 그릴 수 있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김지미, 신성일, 한지일 씨 등 위대한 배우들의 열연 또한 놀랍지만, 이번에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료화면으로 뜬 실제 이산가족들의 만남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 보이는 화면은 분노와 반가움이 뒤섞인 장면들이었지만, 화영(김지미)이 진짜 아들을 만나고 나서 호텔방에 흘러나오는 자료 화면은 끊임없이 자기 자식임을 물어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자식이 맞다고 하면서, "하나만 더 물어보자"고 하면서 계속 회의하는 장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족 혹은 연인이지만, 만나고 나서 그 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피하고 싶지만, 기어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질문. 임권택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간에 대해 질문합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했다면, 임권택 감독은 인간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던가?"   

이 영화에는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화영과 동진이 석철(한지일)이 자기 자식임을 확인하러 돌아다니는 도중에 실수로 개를 칩니다. 개는 피를 흘리고 있지만, 숨이 조금 붙어있습니다. 석철이 차에서 뛰어나가 피 흘리는 개를 들고 옵니다. 화영은 소리를 지르며 "그 더러운 것을 내 차에 들이지 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옆에 앉은 동진은 "그래도 살아있는데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석철이 말합니다. "이게 얼마나 귀한 고기인데요!" 이들은 가족이 되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왔습니다. 아마 석철이 번듯한 사람이었더라도 영화는 결국 그렇게 끝났을 것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감상을 두지 않습니다.  

 

<법창을 울린 옥이>는 신파입니다. 옥이(문희)의 가족은 부유하게 살았으나 주식 폭락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집은 빚더미에 쌓이고 맙니다. 옥이와 엄마(주증녀)는 열심히 돈을 벌지만, 빚은 쉽게 갚아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옥이는 자살을 하려 수면제를 복용하는데, 배를 곯은 어린 동생들이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어버립니다. 안타깝게도 스무 알을 먹은 옥이는 살았는데 다섯 알을 먹은 동생들은 죽었습니다. 옥이는 친족살인 혐의로 법정에 섭니다. 영화는 법정에 선 옥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신파의 조건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리고 전 "이래도 안 울 테냐!"하면서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를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법창을 울린 옥이>에는 그런 구질구질한 정서가 없습니다. 너무나 담백하게, 너무나 차갑게 임권택 감독은 옥이와 옥이를 둘러싼 사회를 바라봅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장면. 영화에는 옥이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세 명의 빚쟁이 아줌마들이 나옵니다(김홍준 감독 말에 따르면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 같은!"). 이들이 몰아붙여 결국 두 동생이 죽고 옥이는 법정에 섭니다. 그런데 옥이 뒤에 이 세 여인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전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여기까지 돈을 받으러 왔구나!"하는 끔찍함을 느꼈습니다. 옥이의 두 동생이 죽었어도 빚은 해결되지 않았고, 옥이가 살인죄가 아니라 감형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옥이는 동생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그 돈을 갚을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감옥에서 출소한 옥이를 맞이한 이들 가족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 대해 GV시간에 김홍준 감독님께 여쭈어 봤었는데, 감독님 말씀으로는 아마 그 장면은 60년대의 감수성에서 용인될 화해의 제스처였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자신들이 너무 몰아붙였고, 아마 빚은 탕감해주지 않을까하는 (아직 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용인 혹은 바람.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옥이는 두 동생들의 죽음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12일 개막식에 이어 두 번째로 갔지만, 여전히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임권택 감독님은 "확 다 불 싸질러 버리고 싶은 작품들을 자꾸 틀어주니 민망"하다고 하시지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고, 현대사의 모든 사건을 겪은 한 사람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한국영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덧붙임: 

1. 2010년 8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展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KOFA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 아래는 개막식에서 공개된 "임권택 감독 전작展" 개막식에서 공개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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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이 좋으냐 아니냐를 떠나서 명감독의 조건은
그 사람의 작품의 양과도 관련있다고 봐요.
원래 자기가 만든 작품은 다시볼 때 다 불싸지르고 싶어지죠.
하지만 남이 볼 땐 아무리 졸작이어도 좋은 장면은 있게 마련이거든요.

근데 토멕님 저리 쓰시니 대충 나이가 짐작이 되옵니다.ㅎㅎ
저는 영화 보는 건 좋아하는데 찾아다닐만큼은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안 본 영화들 밤에 불꺼놓고 보는 낙으로만 삽니다.ㅋ

Tomek 2010-08-18 14:54   좋아요 0 | URL
영화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비디오가 개발되기 전의 영화는 스크린에서 보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꼭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욕망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무료이기 때문입니다.
ㅠㅠ

제 나이는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서 이미 밝혔... :D

stella.K 2010-08-18 15:50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왜 그걸 잊고 있었는지...ㅠ
그러면 현재 25..?ㅋㅋ

Tomek 2010-08-18 23:56   좋아요 0 | URL
크아~ 그럼 정말 좋을 것 같아요. ㅠㅠ

stella.K 2010-08-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정신적 나이는 그 정도가 딱이어요.
근데 육체적 나이가 그걸 못 받혀줘서 그렇지.
그래서 옛날보다 늙었구나 하는 거라구요. 말 되죠?ㅋㅋ

Tomek 2010-08-20 01:51   좋아요 0 | URL
현답이십니다. :D

노이에자이트 2010-08-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치산 활동하다 수감되어 전향한 남자를 다룬 '짝코'를 재밌게 보고 임권택이 전쟁 후유증에 대해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길소뜸은 EBS에서 가끔 해주던데 Tomek님 평을 들으니 정신집중해서 감상하고 싶군요.저기 한지일 씨는 나중에 '젖소부인' 시리즈 등 에로물에 나오더라구요.

Tomek 2010-08-22 00:28   좋아요 0 | URL
이달 아니면 다음달에 <짝코>를 볼 예정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고맙습니다. :D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6 (24)
        타이틀 The Condemned Woman
        각본 Tricia Brock
        감독 Lesli Linka Glatter
        방영일 1991
년 2월 16일 
 

 

 

1. 이야기  

네이딘 헐리는 마이크와 사랑에 빠졌다고 에드에게 고백하고 작별(이혼)을 구한다. 그 말을 듣고 빅 에드는 노마 제닝스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노마는 감옥에 있는 행크 제닝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트윈 픽스에 벤자민 혼의 요청으로 거부 잭 윌러가 찾아온다. 잭과 오드리는 예전에 서로 알았던 사이다. 윈덤 얼은 오드리 혼, 셜리 존슨, 다나 헤이워드에게 비밀스런 편지를 보낸다.  

알버트 로젠필드는 시애틀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데일 쿠퍼를 쏜 범인이 조시 패커드임을 밝혀낸다. 캐서린 마르텔과 앤드류 패커드는 조시를 토마스 에크하르트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결말은 비극으로 끝난다.  

 

 

 

2. 활기  

일단 산으로 갔던 이야기를 다시 트윈 픽스로 오게 하기 위해 작가들은 지금껏 벌여 놓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임스, 조시, 행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시즌에서 퇴장시키며, 차후에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시켜,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생각이었다. 빌리 제인과 헤더 그레이엄의 투입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는 성공했고,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 성공한 이유는 이 두 배우의 매력이 기존의 인물들과 버금갈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고, 실패한 이유는 <트윈 픽스>의 세계에 빠진 시청자들은 새로운 게스트를 보는 재미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벌어지는 일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정리 면에서도 약간 김이 빠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가장 긴 미스터리였던, 그래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기 힘든 데일 쿠퍼의 저격사건의 범인과 리오 존슨의 저격 사건이 드디어 해결 되지만, 워낙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라 놀라움보다는 심드렁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으나, 너무 늦게 벌어졌다. 한 번 궤도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다시 제자리로 원상복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손이 간다.  

 

 

 

3. 이것은 배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번 회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두 인물은 조시와 행크다. 이들은 조시의 남편 앤드루 패커드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 이유로 조시는 행크와 계약을 맺었고, 행크는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얻어내려고 했다. 상황은 잘 풀려나가는 듯 했으나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이야기는 조시의 이야기에 관한 것 같지만, 실은 앤드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앤드루 패커드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죽음을 숨겨왔다. 그는 조시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긴 호흡으로 천천히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며, 동업자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토마스 에크하르트를 그녀의 손으로 처단하도록 한다. 물론 배신은 동업자이자 친구인 토마스 에크하르트가 먼저 시작했지만, 앤드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조시-앤드루-토마스의 배신의 삼각관계는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앤드루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조시를 사랑한 해리 보안관일 것이다.   

 

행크 제닝스는 죄는 가석방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라 가중처벌을 받게 됐다. 특히 이번에 감옥에 가게 되면, 아마도 탈옥을 하지 않는 한, 다시는 나오지 못할 정도의 죄를 저질렀다. 노마 제닝스는 행크를 찾아가 이혼을 요구한다. 빅 에드에 대한 사랑을 억눌러가면서 가능한 결혼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행크를 믿었던 노마는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부한다.  

행크: 빅 에드 때문이지? 당신을 받아줄 수 있는 그놈? 좋아. 그럼 이렇게 해. 알리바이를 입증해주면 이혼을 해줄게.
노마: 난 여기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냐.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지.
행크: 좋아, 가. 이 더러운 창녀 년아!
노마: 당신 부인으로 사느니 창녀가 되는 게 낫겠어.  

자업자득에 가까운 결말이지만, 빅 에드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쉽게 거절을 할 수 있었을까? 행크는 남편으로선 엉망인 인물이지만, 어쨌든 노마는 행크의 존재로 치근거리는 남자들에게 맞서며 식당을 지켜왔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들지만, 박수를 칠만한 상황은 아닌, 무언가 아이러니를 느끼는 상황이다.  

 

빅 에드가 노마에게 프로포즈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와서다. 그는 항상 네이딘과의 이별을 생각해왔지만, 그녀를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그래서 자신과 노마에게는 상처를 주면서)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억 상실로 과거로 돌아간 네이딘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자신에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어떤 행운이 도와주는 상황. 자신의 힘으로 행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값을 지불하기 마련이다. 빅 에드, 노마, 네이딘, 그리고 마이크와 연결되는 이 상황은 나중에 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4. 기억할만한 지나침  

잭 윌러 역을 맡은 배우는 빌리 제인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으로는 <팬텀>과 <타이타닉>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토마스 에크하르트와 잭 윌러는 <타이타닉>에서 주종관계로 만나게 된다.  

 

조시의 죽음은 시리즈 사상 가장 엉성하게 설정한 이야기이다. 작가들은 밥과 마이크를 그저 해프닝으로 여기게끔 만들었으며, 흰 오두막과 검은 오두막은 서랍의 손잡이로 오인하게끔 만들었다. 마지막 씬은 그냥 지나쳐버려야 옳다.  

 

 

 

5. 1990년 2월 15일  

시즌 2의 16번 째 에피소드가 방영되기 하루 전, ABC 방송국은 드라마 <트윈 픽스> 방영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말이 좋아 무기한 연장이지, 이 말은 드라마를 끝낸다는 말에 다름없었다. 로라 파머의 미스터리가 모두 풀리고 난 후로, “픽스마니아”라 불리는 현상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그렇게 <트윈 픽스>는 끝나버리는 듯 했다.  

그러나...  

 

 

 

6.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16』 스크립트, 7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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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CinDi) 영화제 (8.18~24)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2주
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올해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압구정 CGV에서 4번째 시네마디털서울(이하 CinDi) 영화제가 열립니다. 전 4년 전부터 이 영화제에 꼭 참석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언제나 마음뿐이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제가 몸을 담고 있던 세상은 "영화 따위"에 신경 쓰기엔 너무나 정신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올해, 드디어 처음으로,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CinDi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모든 영광을 제게 시련을 전해주신 전 직장 상사, 동료, 후임 분들께 전합니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도 20회나 30회 즈음에나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때쯤에는 영화에는 관심도 없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예요.  

제가 짠 시간표에는 18일 개막작을 제외하고, 19일부터 23일까지 총 19편의 영화가 담겨 있습니다. 아시아 경쟁부문에 출품된 15편을 모두 넣었고, 개막작 1편, 그리고 제 호기심을 끄는 2편의 극영화와 2편의 단편 영화 모음으로 목록을 채웠습니다. 물론 이게 욕심이고 만용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루에 4편씩의 영화를 5일간이나 채운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임에는 틀림없지만, 새로운 영화를 만난다는 설렘 앞에서 두근거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욕망임을 압니다. 한계를 돌파하는 디오니소스 신도들처럼. 비록 그 끝이 타락일지라도.  

 

 

총 20편의 목록 중에서 15편은 아시아 경쟁부문의 목록입니다. 아시아 경쟁부문에 오른 15편의 작품을 목록에 넣은 이유는, 전 부끄럽게도 경쟁부문에 출품한 감독들의 영화를 한 편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미지의 감독들이고, 이 영화들은 미지의 영화들입니다. 그 어떤 정보도, 참고자료도 없이,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영화들입니다. CinDi의 공식 경쟁부문인 이 영화들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2010년의 서울을, 아시아를 바라보고 질문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미지의 영화들을 먼저 본다는 영화광적 욕망이라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지금 나(혹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앎의 욕구입니다. 물론 첫 만남이라는 설렘도 있고요.  

아시아 경쟁부문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오 원동 감독 <개미촌>, 양 루이 감독 <크로싱 마운틴>, 헤이워드 막 감독 , 쉬 통 감독 <점술가>, 성지혜 감독 <여덟 번의 감정>, 츠보타 요시후미 감독 <미요코>, 리우 지엔 감독 <나를 찔러 봐>, 왕 유린, 에세이 리우 감독 <천국에서의 일주일>, 고이데 유타가 감독 <이토록 어두운 밤>, 로샨느 새드나타 감독 <살아남아라>, 리우 용홍 감독 <올가미>, 하이더 라시드 감독 <우울과 매혹>, 총 펑 감독 <미완성 생활사>, 리 홍치 감독 <겨울방학>, 이나바 유스케 감독 <너와 엄마와 카우보이>. 각 영화는 두 번 상영합니다.    

 

 

 

(저에게 있어) 이번 CinDi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입니다. 이 영화를 목록에 채운 이유는 이 영화가 올해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 얼마 전에, 아주 우연히, 이 감독의 <세계의 욕망(Worldly Desires)>이라는 단편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에 복잡합니다. 영화는 두 개의 영화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밤에 찍는 뮤직비디오, 다른 하나는 낮에 찍는 극영화입니다.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와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 충돌하면서 영화는 이상한 기운을 품기 시작합니다. 감히 주술적(呪術的)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이 기이한 충돌 혹은 그럼으로써 기어이 발생하는 서사. 전 이 영화를 보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우리 시대에 정말 새로운 영화를 찍는 감독이거나, 아니면 사기꾼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애하는 당신>, <열대병>, <징후와 세기>를 보지 못한 저에게는 <엉클 분미>가 바로 시금석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개막식과 21일 두 번 개봉하는데, 개막식은 모두 매진됐으며, 21일은 온라인 예매분이 매진되었습니다. 21일 현장 판매는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CinDi 익스트림 2: 퍼스널 아카이빙>은 (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단편 모음입니다.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CinDi 영화제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정성일 평론가의 강력한 추천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 영화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 <에메랄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이런 찬사가 아니더라도, <CinDi 익스트림 2: 퍼스널 아카이빙>은 아마도 영화제가 아니라면, 아마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은 작품일 것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번 CinDi 영화제의 104편에 해당하는 작품 거의가 다 그럴 것이지만, 아무래도 한 번 끌리기 시작한 감독의 작품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19일 17시, 21일 11시에 상영합니다.  

 

 

장철수 감 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제겐 필견의 목록입니다. 처음엔 서영희 씨의 연기가 궁금했으나, 지금은 영화 자체가 더 궁금합니다. 그토록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어쩔 수 없이 얻어지는 정보들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뒤바뀐 구도, 그리고 장르의 쾌감을 포기한 과감한 연출이 돋보인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장르의 쾌감을 포기한 장르 영화는 정말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장르의 쾌감을 느끼러 온 관객들에게는 그 쾌감 대신 어떤 다른 자극을 전해줄 수 있을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제 질문에 대한 답이 되 줄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19일 18시, 23일 17시 상영합니다. 19일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온라인 예매분은 매진인 상황입니다. 현장 판매는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2일 14시 <하하하>상영 후 진행하는 홍상수 감독과 샤를 테송과의 CinDi Talk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샤를 테송은 홍상수 감독을 최초로 서방 세계에 알린 평론가입니다. 우리에겐 『까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이 둘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분명한 것은, 무분별한 주례사 비평이 울려 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목록에 올린 <콰트로 홍콩>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라는 것, 그리고 단편 중 한 편인 <13분 만에 마스터하는 홍콩영화사>의 감독이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룻 챈(아, 옛날에는 프루트 챈이라고 불렀것만...)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어쩌면 프룻 챈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영화는 대개가 놀라움과 진부함 사이를 반복합니다. 최근작일수록 진부함에 더 많은 행보를 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작의 놀라움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일 20시, 22일 17시에 상영합니다.  

 

 

영화제(祭)는 축제(祭)입니다. 축제는 즐겨야 합니다. 영화제를 즐기는 것은, 영화 그 자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개막식과 폐막식을 제외한) 5일간의 (짧은) 영화제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이름으로 이 뜨거운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임:  

1.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아래는 공식 트레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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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인자: 쉬운 문제야. <13일의 금요일>에 나온 살인자 이름은?
시드니: 제이슨! 제이슨!
살인자: 안됐지만 틀렸어.
시드니: 무슨 소리야! 제이슨이 맞아. 난 그 빌어먹을 영화를 스무 번도 넘게 봤다고!
살인자: 조용히 해 이 멍청아! <13일의 금요일>의 살인자는 제이슨 어머니인 부어히스 부인이야. 제이슨은 2편부터 나온 거라고!  

 

10여 년 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에서 이 장면을 봤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하다. <13일의 금요일>이란 제이슨이란 이름 그리고 하키마스크는 공포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도 알 정도로 이제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리메이크와 외전을 포함한) 12편의 작품을 각기 기억하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올해 12편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를 보고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하거나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한 게, 분명 볼 이유가 없는 한심하고 지루한 작품인데도, 매 편이 끝나면 바로 다음 편을 데크에 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 영화에 무언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이 다 죽어가는 시리즈가 30여년을 세월을 견뎌온 이유는 강력한 팬덤과 돈 냄새를 맡은 영화 제작자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봤다. 이 글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진화하는지(혹은 망가지는지)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무지막지한 복수극 <왼 편 마지막 집>을 제작하기도 한 숀 S. 커닝햄은 당시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당시 극장가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그는 <할로윈>과 마리오 바바 감독의 <피의 만>을 참조해 그와 비슷한 스릴러 영화를 한 편 기획했다. 도시에서 외떨어진 캠프장에서 젊은 남녀들을 피해자로 만들면 볼거리도 되고, 무엇보다도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목은 <캠프 블러드에서의 긴 밤>으로 결정했다.  

버라이어티에 영화를 광고하기 직전, 숀 커닝햄 감독은 제목을 <13일의 금요일>로 바꾸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무의식적인 공포를 끄집어내는데 있어서 이만한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숀은 이 제목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목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숀은 이 영화를 시리즈로 기획했었다. 그가 생각한 시리즈는 동일한 이야기의 연속이 아니라, <13일의 금요일>이란 제목으로 매 해 다른 공포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판권을 가진 파라마운트는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자기 완결성을 지닌 <13일의 금요일>이야기의 속편을 무리하게 늘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13일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은 분명 죽은 존재였다. 하지만, 파라마운트는 죽은 제이슨을 살아있는 존재라 생각하고 시리즈를 만들어갔다. 시리즈 2~4편의 제이슨은 달리기도 하고, 때론 비명(물론 컥컥거리는 소리에 불과했지만)도 지르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야기는 <13일의 금요일>의 지루한 반복에 불과했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하키마스크를 쓰는 모습과 갈수록 잔인해지는 살인 방법에 따라 인기를 얻게 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파라마운트는 4편에서 제이슨을 죽이고 시리즈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4편이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되면서 파라마운트는 다시 속편을 제작하게 된다. 돈은 귀신하고도 통하게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를 제이슨의 관점에서 보자면, 2~4편을 1기, 6~8편을 2기, 9~11편을 외전(감히 3기라고 표현하기에는 신성모독 수준이다!)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제이슨 말고도 고정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4~6편에 출연한 토미가 바로 그렇다. 4편에서 토미는 제이슨을 죽이고, 5편에서는 그 살인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제이슨의 영혼이 빙의됐으며 6편에서는 다시 살아난 제이슨을 봉인하는 시리즈 사상 가장 위대한(!) 역할을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팬들에게서 가장 괴작으로 평가받는(시리즈 중 괴작 아닌 게 어디 있겠냐만) 5편이 마음에 들지만, 이 영화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이면서도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6~8편은 대부분의 팬들이 기억하는 제이슨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는 다시 부활하면서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웬만한 충격에는 꿈쩍하지 않으며 살아난 시체답게 언제나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은 쇼크가 아닌 느긋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이때의 시리즈는, 캐릭터는 점점 완성형에 가까워졌지만,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향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제이슨은 초능력자 여자에게 농락당하기도하고(7편), 크루즈에서 드라큘라 행세를 하기도하고, 뉴욕에서는 킹콩 행세를 하기도 한다(8편). 상황이 여의치 않자 파라마운트는 뉴라인 시네마에 판권을 팔고 시리즈를 끝낸다.   

 

  

뉴라인 시네마에서 만든 두 편의 제이슨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제이슨은 외계 생명체가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존재이기도 하고(<라스트 프라이데이>), 아주 먼 미래에 과학의 힘을 빌려 우주에서 다시 탄생하기도 한다(<제이슨 X>). 시리즈 초반의 어리바리 제이슨을 압도하는 시리즈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프레디 vs 제이슨>은 시리즈의 외전이지만, 이 영화는 원래 시리즈보다 제이슨의 모든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제이슨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인데, 1기 때에는 물에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외전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시켜서 허술한 시리즈의 캐릭터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준 청출어람격의 영화라 할 수 있다.   

 

 

2009년에 리메이크된 <13일의 금요일은> 1편의 결말부터 시작해서 1기 때의 제이슨을 다룬 영화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뛰어다니는 제이슨이 어색하다는 평이 꽤 있었는데, 그것은 2기 때의 제이슨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바꿔 말해 1기 때의 제이슨이 얼마나 허술했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리메이크의 2편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오게 된다면 2기 때의 제이슨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난 또다시 피리 부는 사내를 쫓는 쥐처럼 극장으로 향할지도 모르겠다. 툴툴거리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법. 어찌됐든 제이슨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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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3일의금융일 2012-06-15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메이크편그것은시리즈축
애두못든다..

Tomek 2012-06-15 09:37   좋아요 0 | URL
나도그렇게생각했었지만
그래도제이슨때문에긍정하련다...

죄이슨니 2015-05-15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궨시리리할로윈이리메이크되니까만들어가지고재이슨이미지만흐렸따

죄이슨니 2015-05-15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로윈은몰라도13일의금요일만큼은그냥놔두고마음속으로간직할때가훨좋았다,,.결과는2나와도망

Tomek 2015-05-26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어쩌라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가 영화화 된 것은 여러 편이 있다. IMDB를 검색하면 Macbeth라는 타이틀로 51편의 작품이 뜰 정도니 가히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본 작품은 고작 세 편에 불과한데, 그 세 편 모두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부족함을 무릅쓰고 조금 끼적여볼까 한다.   

  

 

1948년에 제작된 오손 웰즈 감독, 주연의 <맥베스(Macbeth)>는 정말 굉장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같은 해에 제작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주연의 <햄릿>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사를 뒤흔든 작품들 혹은 걸작들을 가장 쉽게 판별해내는 방법은 책에 쓰인 말이 아니라, 그 해에 나온 영화들과 비교해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은 배우들의 영화다. 영화는 가능한 배우들의 호흡을 자르지 않기 위해 롱테이크로 일관한다. 카메라는 배우들을 비출 뿐,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화면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보인다.   

반면, 오손 웰즈의 <맥베스>는 영화적 문법으로 가득 차있다. 그 역시 세트에서 극을 진행하지만, 카메라는 인물을 쫓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기나긴 내레이션과 컷이 바뀌지 않는 장소의 이동 그리고 제때 떨어지는 방백과 대화는 수학적 계산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극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오손 웰즈는 연극을 영화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연기한 맥베스의 모습에서, 영화사의 천재였지만 할리우드의 저주로 그 자리에서 쫓겨난 불운의 인물이 겹쳐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1957년에 제작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집의 성(蜘蛛巣城)>은 『맥베스』를 일본의 전국시대로 각색한 영화다. 구로사와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획 중이었는데, 오손 웰즈의 <맥베스>를 보고 이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없다고 탄식을 하며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었다. 그 후 이 프로젝트는 구로사와 감독이 제작을 하고,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으나, 도호영화사에서 구로사와 감독이 연출할 것을 부탁해 결국 그의 필모그래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거미집의 성>은 『맥베스』와 같은 이야기지만, 세부묘사는 조금 다르다. 일례로 맥베스가 뱅쿠오를 죽이는 이유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자신의 추악한 행동이 결국엔 뱅쿠오를 빛나게 할 것이라는 공포, 그리고 자신이 차지한 왕위가 언젠가 뱅쿠오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하지만 구로사와는 조금 다르게 묘사했다. 와시즈는 영주가 되었지만, 미키의 자식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어차피 와시즈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와시즈의 부인이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와시즈는 영주의 자리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탐욕을 느끼게 되고, 그는 미키를 살해한다. 와시즈의 탐욕이 없었다면, 이후의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탐욕이 없었다면, 와시즈는 영주를 살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맥베스』의 이야기로 탐욕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을 이야기했다.   

(유명한 사족이지만 다시 반복한다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화살 장면은 특수 효과가 가미되어 있지 않은 실제 상황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실제 궁수를 배치하고 활을 쏘았다.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 도시로는 활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고 싶어 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도망 다니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이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연기가 아닌, 실제 공포였던 것이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The Tragedy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축약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담아냈다. 위의 두 편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잔혹하다는 점이다. 세 마녀들이 사라지고 <맥베스>라는 타이틀이 흘러나오면 살벌한 전쟁터가 보여진다. 그리고 맥베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은 전쟁 포로들의 사형 집행장면을 무심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보는 장면이다. 코더의 영주가 죽는 장면이나, 덩컨 왕의 살해 장면, 그리고 목이 잘려 칼에 꽂힌 채 이동하는 맥베스의 시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지 않았지만, 로만 폴란스키는 그 참혹한 장면을 화면에 담아냈다.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맥베스의 지령을 받은 군인들이 들어와 아들을 죽인다. 계속 흘러나오는 비명소리. 맥더프의 아내는 밖으로 나간다. 군인들은 하녀들을 윤간하고 있고, 밖에서 놀던 아이들은 토막 난 채로 죽어있었다. 이 장면은 로만 폴란스키가 실제로 겪었던 그 사건을 연상시킨다. 1969년 8월 9일 로만 폴란스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과 그의 패거리가 폴란스키의 집에 들어와 아내 샤론 테이트와 곧 태어날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 사건 이후로 연출한 영화가 바로 <맥베스>다. 앤서니 버제스가 전쟁 때 자신의 아내가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기억을 잊기 위해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집필한 것처럼, 로만 폴란스키는 <맥베스>를 통해 그의 참혹했던 과거와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다른 사족이 하나 더 붙어있다.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덩컨 왕의 아들 도널베인이 마녀들의 예언을 듣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에서 스코틀랜드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옥은 어둡듯이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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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머리 잘린 장면 보면 토할 것 같아요.
영화 300도 그렇고, 여왕마고도 그렇고. 그밖에 여타의 영화에서...윽!

Tomek 2010-08-12 08:49   좋아요 0 | URL
원래 저 장면이 조금 더 길었는데... 위에서 맥더프가 칼을 든채로 내려다보면 카메라가 이동해서 맥베스의 머리를 보여주는 장면이었거든요. 이와 같은 구도의 그림을 제가 본 적이 있었는데 화가나 제목이 아예 생각이 나질 않아서... 혹시나 아는 분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올려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교양이 부족함을 느끼면 정말 절망에 빠지는 것 같아요...

저 장면은 가짜인 게 너무 티나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stella.K 2010-08-12 10:57   좋아요 0 | URL
아녀요. 여긴 토멕님 서잰데 토멕님 맘대로 할 수 있죠.
전 저 나름의 느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토멕님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절망까지 느끼시다니.
영화 정말 공부할 것이 많죠?^^

Tomek 2010-08-12 23:25   좋아요 0 | URL
너무 많아서 슬플 지경이에요... ㅠㅠ

카스피 2010-08-1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머리 좀 섬득하긴 하네요.갑자기 저 머릴 보니 공포영화면서도 웃겼던 기억이 나는 지금이 거장이 된 샘 레아미 감독의 이블 데드가 생각나네요^^

Tomek 2010-08-12 23:27   좋아요 0 | URL
제 경우는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좀비오>가 생각납니다. :)
정말 최고의 길티 플레져죠. 잘린 목이 욕정을 느끼는 장면은... :D

댓글이 좀... ^^;

stella.K 2010-08-13 10:31   좋아요 0 | URL
길티 플레져...? 영화 용어인가요?
잘린 목이 욕정을 느끼다니.ㅋㅋ

Tomek 2010-08-14 09:58   좋아요 0 | URL
정말 황당한 장면이에요. 혹시나 보실 기회가 있으시면 한 번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제프리 콤즈의 인상적인 연기도 일품입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