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짓을 하기로 결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처음 계획했던 대로 끝내기는 했다. 홀가분하기보다는 허탈하다.  

팽팽하게 당겨있던 삶의 리듬과 사유의 끈이 갑자기 끊긴 느낌이 든 것은 8월 말의 일이었다. 영화 감상과 글쓰기의 과도한 오르가즘을 느껴서인지,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자신이 쌓아놓은 유무형의 체험들을 밑천삼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그동안 쌓은 체험이 얼마나 얄팍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쓴 글들이 <트윈 픽스>에 대한 "ultimate" 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맹세컨대, 각 글들은 내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유까지 밀어붙여 쓴 글들이다. 수준이 얄팍하다면, 그건 (그 글을 쓴) 내 수준이 그런 것이지, 맹세코 드라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방영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윈 픽스>는 음험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그 기운 속에서 사람들은 커피와 체리파이를 먹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죽음과 공포가 사람들 곁에 맴돌고 있지만, 사람들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다른 악(惡)을 저지른다. 그 후 20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원래는 <극장판 트윈 픽스>까지 연재에 포함시키려했으나, 최근 <극장판 트윈 픽스>를 보고 나서 마음을 바꾸었다. 이 영화는 왠지 독립된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 <트윈 픽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숨겨진 퍼즐을 찾는 재미에 흠뻑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뿐이다. 퍼즐을 풀어도 해결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퍼즐을 푸는 대가로 우리는 로라 파머의 끔직한 죽음을 지켜봐야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이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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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스테이크 2011-02-1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달려고 알라딘에 회원가입까지 했네요, 며칠에 걸쳐서 잘 봤습니다.
트윈픽스를 다시본 기분이네요..
어릴때 티비에서 하던걸 정말 무섭게 봤던 기억에 2년전에 새로 처음부터 다시 봤었더랬죠.. 그래도 예전에 보면서 느꼈던 그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기억은 여전하더군요, 그 기분을 님 글을 읽으면서 새로 또 느껴봅니다.
정말 잘읽었어요,,
트윈픽스를 좋아하고 기억하는 분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Tomek 2011-02-20 19:29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반가웠습니다.
:D

낭만고양이 2011-10-2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루에 한편씩,거의 한달간 이 블러그에 왔었습니다.이런 자세한 내용이 있는 글을
읽으면서 TV판 시리즈 구입(재고가 있을런지)을 고려할 정도로 예전에 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Tomek 2011-10-25 13:37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다니! 트윈 픽스 팬이시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

lynn 2012-06-1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오후 갑자기 떠오른 트윈픽스에 대한 이미지들때문에 흘러흘러 들어와 꼭꼭 씹어먹고 갑니다. 트윈픽스 드라마시리즈를 보았던 대학초년때부터 토끼같은 초딩 쌍둥이를 둔 지금까지도 가끔씩 혼자 오싹해지는 기분의 발원지가 트윈픽스와 블레어위치 근처라 생각하기에 다시 보고싶으면서도 겁이 나서 못봤는데 님의 글을 읽으며 억지로나마 이것은 사람이 만든 픽션이여...다짐을 새롭게 했답니다. 이제는 다시 볼수 있을듯한 용기도 나는 듯.. 감사합니다 (그 당시 진짜 너무 무서운 기분이 들어 벽에서 등도 못떼고 딱 붙어서 밤새 두려움에 떨던 때도 있었어요 지금생각하면 웃어야 될지 울어야될지..ㅎㅎㅎ..ㅠㅜ)

Tomek 2012-06-19 08:48   좋아요 0 | URL
저도 언제봐도 무섭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공포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보여주어서가 아닐까... 설명되지 않는 공포이기 때문에 볼수록, 곱씹을수록, 생각할수록 무서운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압습니다. :)

방문객 2012-10-16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정말 잘 봤습니다. 우연한 계기로(사실 세릴린 펜이 좋아져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트윈픽스에서 오드리로 으뜸이라기에...) 트윈픽스를 보게되었는데 정말 재밋게 무섭게 신기하게 봤습니다. 매회보면서 궁금한 점도 있고 뭔가 더 분석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여기글들을 보니까 드라마가 더욱 재밌어지는 것 같습니다. 트윈픽스 팬들이라면 이 블로그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겁니다. 저 역시도 감사합니다.꾸벅(잡담:오드리는 그냥 쿠퍼와 러브라인으로 끝났으면 좋았을걸...느끼한 부자남자는 싫더라구요 허허)

Tomek 2012-10-16 18:06   좋아요 0 | URL
셔릴리 펜은 투문정션"과 남자가 사랑할 때"가 정말 굉장했었죠. @.@

지금은 그 때의 오라는 발견할 수 없고, 너무 평범하게 변한 게 조금 아쉽기는 하죠. 배우의 선택이니 존중해야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고맙습니다.
:)

고양이 2013-04-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햐... 정말 귀한 일 하셨네요. 앞으로 이쪽으로 글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쓰시는지도 모르겠네요 ^^. 저는 2000년도가 되어서 보구는 쭉 팬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 검색하다 보니 여기로 들어왔는데, 정말 훌륭한 글 보고 기쁘네요.

자막있는 트윈픽스 정발을 기대하지만. 어떨지.

Tomek 2013-04-20 09:06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정발을 기대하지만, 이미 한참 늦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혹시 블루레이 뜬금포가 터지지 않을까 기대 중입니다.

:)

Chino 2013-11-2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트윈픽스의 모호한 부조리와 쌩뚱맞은 낙관, 기괴한 아이러니는
지금 다시 봐도 참 낭만적인듯(?) 합니다~

트윈픽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지난하고 수고로운 작업을 마무리해 주신 쥔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Tomek 2013-11-29 13:15   좋아요 0 | URL
방영한지 오래된 드라마이기도 하고, 쓴지도 오래된 글인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보면 정말 의미있는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Chino님 고맙습니다. :)

갈갈이 2014-05-2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 같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0년에 쓰신 글을 2014년에 댓글다는게 저도 참 뒷북이네요.. 읽기만 하는 제가 미안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 해석하셨네요.
저는 93년에 고2 때 공중파에서 본방사수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마 그때는 감독의 의도를 10%도 이해를 못하고 봤겠지요(키스신이 많이 나와서 계속 봤을 듯). 제 여동생이 2살 차이인데 오빠야 왜그런거야 하고 물어보면, 그냥 봐라 나도 잘 모른다라고 했던 기억도 나고..
지금이라고 해서 특별이 나아진 것이 없는게.. 21년이 지난 5월에 시즌1,2 + 극장판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봤는데도 Tomek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놓친 부분이 상당히 많네요. 오랜만에 트윈픽스 관련 심도 깊은 글을 읽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트윈픽스 떡밥(클리프행어 + 상징 + 복선)은 에반게리온을 능가하는거였네요.

Tomek 2014-05-25 20:41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올 7월 말에 <트윈 픽스> 블루레이가 발매되는 데, 아쉽게도 한글 자막은 누락되었더군요... 게다가 극장판과 90분에 가까운 미공개 편집본까지 수록된다니, 아마도 <트윈 픽스> 매니아 분들은 다들 이 타이틀을 노리고 계실지도... :)

저도 조금은 고민입니다.

:)

RyanBen 2014-11-04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즌 2에서 로라의 살인자가 드러나는 때까지만 몇 번 보다 처음으로 끝까지 보고 난 후 우연히 들렀습니다. 한국 내 열혈 트윈 픽스 팬이라 자부하는 마음이 조금 있지만 부끄러운 일이었죠. 시즌 1은 정말 구성이 잘 짜여졌는데 저는 시즌 1의 팬이라고 봐야할지도;;

윈덤 얼이라는 캐릭터는 이번에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네요. 전체를 놓고 보면 너무 비중이 큰 캐릭터더군요. 트윈 픽스라는 공간 자체의 비밀을 풀어버렸으니. 하지만 밥이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트윈 픽스가 이후 미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정말 느껴지더군요. 엑스 파일의 멀더는 직접 연결되고, 외계인의 영향을 암시하는 설정도 있고, 작고 외진 마을이 품은 거대한 비밀이라는 설정도 그렇고요.

여하튼 저도 나름대로 정리하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아직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트윈 픽스 연재글을 쓰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 잘 봤습니다.

Tomek 2014-11-06 11:35   좋아요 0 | URL
윈덤 얼은, 결말이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트윈 픽스 내 먼치킨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뭐 이렇게 흘러간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리랜드 파머에 비하면 많이 버려진 캐릭터 같은 생각도 들어요. 물론 리랜드 파머의 경우는, 범인으로 지목되기 전까지 트윈 픽스 내의 모든 캐릭터들이 용의자이기 때문에 집중이 분산된 반면, 윈덤 얼의 경우는 그럴 수 없었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

321321 2015-04-0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라 파머의 25년 뒤에 보자는 대사는 누가 무슨 생각으로 집어넣은걸까요?

Tomek 2015-04-08 11:35   좋아요 0 | URL
그런 대사가 있었는지는 막상 잘 떠오르지 않네요... 갑자기 25년이 흐르고, 장소가 빨간방인 것은 린치의 아이디어로 알고 있습니다.

:)

troy79 2016-01-23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트윈픽스 열혈팬인데 검색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글 다 읽었습니다.
왜 이제야 이 블로그를 발견했을까요ㅎㅎ
제가 그당시로 국민학교 4학년때 보고 너무너무 좋아했거든요.
dvd로도 사놓고 봤는데 이렇게 모든 에피소드를 정리해주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덕분에 기억이 새록새록나고 정말 감동이네요^^

Tomek 2016-01-24 14:3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