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짓을 하기로 결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처음 계획했던 대로 끝내기는 했다. 홀가분하기보다는 허탈하다.
팽팽하게 당겨있던 삶의 리듬과 사유의 끈이 갑자기 끊긴 느낌이 든 것은 8월 말의 일이었다. 영화 감상과 글쓰기의 과도한 오르가즘을 느껴서인지,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자신이 쌓아놓은 유무형의 체험들을 밑천삼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그동안 쌓은 체험이 얼마나 얄팍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쓴 글들이 <트윈 픽스>에 대한 "ultimate" 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맹세컨대, 각 글들은 내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유까지 밀어붙여 쓴 글들이다. 수준이 얄팍하다면, 그건 (그 글을 쓴) 내 수준이 그런 것이지, 맹세코 드라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방영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윈 픽스>는 음험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그 기운 속에서 사람들은 커피와 체리파이를 먹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죽음과 공포가 사람들 곁에 맴돌고 있지만, 사람들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다른 악(惡)을 저지른다. 그 후 20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원래는 <극장판 트윈 픽스>까지 연재에 포함시키려했으나, 최근 <극장판 트윈 픽스>를 보고 나서 마음을 바꾸었다. 이 영화는 왠지 독립된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 <트윈 픽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숨겨진 퍼즐을 찾는 재미에 흠뻑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뿐이다. 퍼즐을 풀어도 해결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퍼즐을 푸는 대가로 우리는 로라 파머의 끔직한 죽음을 지켜봐야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이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