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에게 고함 SE (2disc) - 할인판
김영남 감독, 김태우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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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은 3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의 옴니버스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각기 제작된 단편을 합친 게 아니라, 3편의 이야기가 합쳐진 장편으로 기획되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80~90분 분량의 장편으로 만들었어도 충분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감독은 많은 부분들을 가지치고 이야기의 뼈대만을 남겨 놓은 채 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불친절하며, 인물들의 설정과 관계는 짐작할 뿐이다. 그는 왜 이 세 인물들의 이야기를 굳이 한 번에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내 청춘에게 고함>은 정희(김혜나), 근우(이상우), 인호(김태우)의 이야기가 차례로 병렬로 진행된다. 이 세 인물들의 이야기는 각가의 에피소드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정희는 인호의 이야기를 경찰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로 듣고, 근우는 정희의 이야기를 훔쳐듣는 전화로 들으며, 인호는 근우의 이야기를 버스 안 뉴스에서 듣는다. 하나 더 공통점. 정희는 철로에 귀를 대 '기차가 우는 소리'를 듣고, 근우는 그 기차가 운 흔적을 따라 걸으며, 인호는 그 울어대는 기차에 올라탄다. 각각 세 편의 영화는 따로 존재하면서도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된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벗어났거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정희는 연기를 하지만, 의식주는 그녀의 언니에게 빌붙어 살고 있다. 근우는 자기 직업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 차이 조차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는 "시간 늦추기" 동호회 회원이다. 모든 것이 "퀵"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에 그는 스스로 "시간을 (잡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인호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부유하고, 박사과정의 엘리트지만, 그의 인생은 오로지 부모의 입김에만 의지해온 나약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답답해한다. 군대 생활은 어쩌면 그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도피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제대를 이제 10일 정도 남겨놓은 상태고, 그는 점점 불안해한다.  

 

이들 인물들은 자신의 결핍을 사랑으로 찾고 메우고 싶어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삐뚤어있거나, 혹은 너무 멀리 나가있다. 정희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이성에게서 받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결핍은 남자친구와 멀어지는 결과만을 낳는다. 근우는 "불륜으로 괴로워하는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기어이 고백하지만, 그의 순수함은 오히려 파국만을 낳는다. 인호는 부인의 외도를 눈치채고,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확인만을 남긴다.  

 

<내 청춘에게 고함>에서 "내 청춘에게 알리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나? 사랑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춘의 흔들리는 불안한 감정이 오직 "사랑" 때문인 것은 아닐진데. 우리의 청춘 영화는 결국 학업 아니면 사랑 밖에 없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내 청춘에게 고함>에 가장 어울리는 매체는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모든 연결 고리는 "영화적"이라기 보다는 "문학적"이다. 특히나 대사가 거의 문어체적인데다가, 등장 인물들 조차 생생하다기 보다는 문자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김혜나가 연기한 정희가 도드라지는데, 그것은 김혜나의 연기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인물에 대한 접근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김혜나는 '정희'라는 인물을 연기했다면, 다른 두 배우, 이상우와 김태우는 '근우'와 '인호'를 각각 자기화해버렸다. '정희'에서 김혜나를 발견하기 힘들지만, '근우'와 '인호'에서는 이상우와 김태우가 보인다. 자막을 읽어야하는 해외에서는 좀 더 다양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육화된 대사를 듣는 내게는 조금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분분의 감독들에게,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고 은퇴작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져왔다. 이 영화가 걸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차를 두고 감상해도 의미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독들에게는 최소한 두 번의 기회는 줘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너무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서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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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 Poongs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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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2/3가 흐른 지점, 북파 공작원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한 풍산(윤계상)과, 마찬가지로 공작원들에게 잡혀온 인옥(김규리)이 한데 만난다. 서로 묶여 있는 이들은 "미친듯이"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떨어지려하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북한간부(유하복)는 총을 쏴대며 이들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사람에게 이 장면에 대해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정말 인상적이지 않아요? 서로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남과 북이 서로 한몸임을 증명하는 듯한 거대한 메타포를 표현한 것 같아요!" 이 말을 듣자 집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엥? 난 마치 흘레 붙은 '개'들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길거리에서 개들이 흘레 붙으면 막 사람들이 억지로 떨어뜨리려고 하잖아요. 그 북한간부가 총질한 것도 그런 것 같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들이지만, 난 이 두 가지 시선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은유와 넘쳐나는 야생동물의 에너지. <풍산개>는 (전재홍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오롯이 김기덕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물건/사람을 배달하는 한 사내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연락처나 이름을 모른다. 그저 풍산개가 그려져 있는 풍산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풍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남한에 망명한 북한 고위층(김종수)이 북에 두고온 사랑하는 연인(이라지만 거의 딸뻘인) 인옥을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 일에 국정원이 개입하면서, 사건은 조금씩 복잡해지고, 망명한 북한 고위층을 암살하려는 북파 공작원까지 개입하면서 사건은 점입가경이 된다.  

이 영화를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라 해야할지, 전재홍 감독의 작품이라 해야할지 머뭇거려진다. 김기덕 감독은 그의 작품에서 언제나, 사실과 환상을 섞어낸다. 둘 사이에 어떤 명확한 경계는 없으며,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환상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벌어지기 부지기수다. 그러한 일련의 흐름속에서, 그의 영화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줄거리 상으로는 정말 유치찬란하면서도, 막상 영화를 보면 그 어떤 오라를 느끼는 것은, 그가 현실과 환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에 표현된 '환상'의 요소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아직도 감을 못잡은 것 같다. 그의 첫 번째 데뷔작 <아름답다> 역시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다.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내 기억에서 깡그리 지워버렸는데(그래서 난 <풍산개>가 전재홍 감독의 데뷔작인줄 알았다), 그 이유는 영화가 정말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역시 환상과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데, 전재홍 감독은 환상의 요소를 모두 사실로 찍었다. 환상의 요소가 사라지자, 김기덕 감독 특유의 그 강한 정서를 중화(혹은 더 증폭)시켜줄 무언가가 사라졌고, 영화는 (장르의 규칙에서 벗어난) 기상천외한 호러무비가 되었다.  

반면, 장훈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에서 특유의 환상 장면을 "스타일화"해서 찍었다. 김기덕 감독의 "환상"이 스타일이 되자, 이 영화는 독특한 장르영화가 되었다. 장훈 감독은 (인간적인 문제는 모르겠으나) 이후의 김기덕 필름 영화들에 대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 확실하다.  

전재홍 감독도 이번에 <풍산개>를 찍으면서, 장훈 감독이 이루었던 것을 참고한 것 같다. <아름답다>와는 달리 이 영화는 장르 친화적이며, 액션과 유머가 곳곳에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 특유의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기막힌 이야기 구조 또한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전재홍 감독은 아직도 환상을 다룰 때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풍산개>는 김기덕의 이름을 상기하면, 넘길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이 장면들에 전재홍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면, 영화 구조상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전재홍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해결해야할 문제이겠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2시간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하며 본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생각해봤다. 며칠전에 DVD로 본 <공포의 보수>를 제외하고는, 극장에서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풍산개>는 확실히 재미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안에 품고있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스크린에 풀어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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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7-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의 '환상' 요소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 되곤 해요.
시간, 빈집, 비몽 등등 거의 모든 영화에서요.
서울 평양을 3시간에 넘나드는 풍산의 존재 자체도 판타지인데
남북 분단 상황 자체도 어쩌면 현실이 아닌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영화를 봤어요. 그런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우린 그걸 체감하지 못하고 사니까.
한반도 없는 북조선은 존재하지 않아. 이렇게 북한간첩단 대장이 말한 건 뭘까요? 대사들이 좀 서걱거리면서도 날 것 냄새가 많이 났어요.

Tomek 2011-07-06 10:29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D

그런데 이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그 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숨>을 본 이후로, 그냥 그 둘이 섞이면서 상호보완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문제는 김기덕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은 전재홍 감독이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는데, 그 역시 (이번에도)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 면에선 장훈 감독의 행보가 많이 아쉽기도 하고요. 오히려 김기덕의 에너지를 가지고 온 장철수 감독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떨어져서 작업을 해야 그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예전에 방은진 씨가 <해안선>을 언급하면서, "김기덕은 '이즘'같은 거대담론을 얘기하면 유치해진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100%는 아니고,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거대담론이라는 것은 어느 누가 이야기해도 어느 정도는 유치함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분개할 일도 아닌 것 같고요.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거대담론을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신선해보였으니까요.

아... 정말 <풍산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일까요, 아니면 전재홍 감독의 작품일까요... 영화를 찍은 감독의 존재감이 이렇게 적게 느껴지는 경우는 007시리즈 이후로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novio 2011-08-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심도 있는 글에 경탄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이곳으로 왔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Tomek 2011-08-11 09: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D
 
좋은 배우 - A Great Acto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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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조ː타]
「형용사」
「1」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2」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하다.
「3」어떤 일이나 대상이 마음에 들 만큼 흡족하다.
  

신연식 감독의 "기적 같은" 데뷔작 <좋은 배우>는 이전작 <페어러브>와 같이 제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좋다"라고 규정짓는 것일까? "좋다"라는 만족감은 우리에게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일까? 그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통해서만 가능한가? 신연식 감독은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를 "배우"라는 특별한 인생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앙리 2세>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연출가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극단에서 연기를 하려고 찾아온 법대생 출신의 엘리트 성우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식하게 한마디로 줄인다면) 연극이라는 목표와, 자신의 삶-연기-이라는 목표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들 좋은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 기준은 모두들 제각각이다. 어떤 배우는 오로지 기술(매소드)이 뛰어나면 좋다고 하고, 어떤 배우는 캐릭터에 관련한 모든 사항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을 좋다고 하며, 어떤 배우는 극의 흐름(리듬)을 중요시한다.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연기에서 찾으려는 성우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보기도 하고 내쳐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만 깨닫는다.  

영화는 끊임없이 자신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유부단한 연출가와 배우들은 무대에서 자신이 서 있고 연기할 공간-동선을 찾지 못해 어쩔줄을 모른다. 그들은 감독이 자신들의 자리를 정확하게 지정해주고, 캐릭터를 명확하게 지정해주길 바라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감독은 성우의 모습과 교차로 보여주어 연극 무대가 결국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큰 사고 이후, 감독은 배우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각각의 인물들에게 명확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정확한 동선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우는 극단을 나가고 회사에 취직한다. 이제 무대의 혼란스러움과 무질서는 사라지고, 반듯한 공연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극단과 주인공이 제자리를 찾은 순간, 놀랄만큼 지루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한 열기를 품고 있던 연극 무대는 평범해졌고, 이후의 주인공과 극단의 배우들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저 그래 보인다. 신연식 감독은 안주한다는 것, 안정적인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페어러브>도 결국엔 50여년간 자신의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의 벽을 깨뜨리는 이야기였던 것처럼.  

영화에는 잠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굉장한 대사들이 나오지만, 내게 남는 것은 이렇다. 자신의 캐릭터를 규정하지 말고, 자신의 무대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살아가자. 신연식 감독은 "좋다"라는 형용사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줬고 깨닫게 했다. 그는 정말 "좋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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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티 - Machet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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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마셰티>를 정말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일반인과는 다르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명)배우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일부러 못찍은 영화를 대놓고 즐기(려)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그만큼의 내공이 미치지 못하는 내게, 이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영화였다.  

애초에 이 영화는 예고편으로만 존재한 영화였다. 할리우드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만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동시상영 프로젝트인 <그라인드 하우스>에 포함 될 가짜 예고편 중 한 편이 바로 <마세티>였다. 약 2분 여에 펼쳐지는 기막힌 액션과 황당한 설정들, 그리고 감독 자신이 맡은 코믹한 내레이션은 이 가짜 예고편의 본편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혹은 필연적으로) 이 망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이 영화를 진심으로 찍고 싶어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 영화를 진정으로 그 옛날 그라인드 하우스 작품으로 만들기를 원한 것 같다. <마셰티>의 모든 장면은 가짜 예고편의 명장면들을 재현하는데 급급할 뿐, 예고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혹은 못한다). 마치 그 옛날의 "예고편이 전부"인 그저 그런 영화들처럼.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가짜 예고편에서 봤던 그 수많은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원래 B급 영화가 다 그렇다"라는 반론은 로드리게즈에게 무의미하다.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로 나뉘어진다. 그걸 우리는 편의상 등급으로 나눈다. 하지만, 시대를 견디어 온 B무비들이 있다. 진정 A가 되고 싶지만, 여러가지 제약(자본, 배우, 혹은 감독 그 자신의 재능)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그 한계를 뛰어 넘고자 했든 그 처절한 B무비들. <마셰티>가 B무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처절함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일부러" 못만든 영화다. 영화에 영혼이 없고 유희만 남을 때 어떻게 되는지 <마셰티>는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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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1-04-2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만에 글 쓰신 것을 봅니다^^

Tomek 2011-04-26 15:38   좋아요 0 | URL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D
 
007 여왕 폐하 대작전 U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피터 R. 헌트 감독, 조지 래젠비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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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헌트 감독의 6번 째 007시리즈인 <여왕 폐하 대작전>은 정말로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보통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캐릭터의 주인공이 바뀌면, 보통 그 시리즈는 새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여왕 폐하 대작전>은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숀 코너리에서 조지 레전비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5편의 시리즈의 연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이한 영화다. 이렇게 시침 뚝 떼는 영화 전통은 종종 홍콩 영화에서 발견되곤 하지만, 그래도 주연 배우가 바뀌면 판을 새로 짜는 것이 도의건만, <여왕 폐하 대작전>은 그렇지 않다. 

이 시리즈의 패착은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숀 코너리가 5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여유와 유머 그리고 능글맞음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대중은 그렇게 학습되어 왔다. 하지만, 숀 코너리가 시리즈에서 하차를 결정하자, 제작진은 이전과는 다른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지 레전비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무엇보다도 진지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무모할 정도로 맹목적이고 집착한다. 유머가 풍부하고 여유로우며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영국 신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런 하드 보일드한 본드는 너무나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조지 레전비의 계보는 티모시 달튼과 대니얼 크레이그로 이어지지만, 숀 코너리 - 로저 무어 -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이어지는 영국 신사(혹은 바람둥이)적인 이미지의 계보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이전 다섯편의 007 시리즈의 특징은 '아기자기한 액션'에 있다. 본드는 항상 위험에 빠지지만, 그는 Q가 개발한 신형 무기를 사용해서 기발하게 탈출한다. 하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에는 그렇게 제임스 본드를 규정할만한 것이 없다.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007 시리즈를 보면서 기대할만한 요소가 없다.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든다. 

가장 큰 패착은 영화의 악당을 블로펠드로 설정한 것이다. 블로펠드는 범죄 조직 스펙터(SPECTRE)의 수장으로 <위기 일발>과 <썬더볼>에서는 목소리만 등장했고, <두 번 산다>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항상 악당들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이 무시무시한 존재가 갑자기 손수 악당짓을 하니 뭔가 모르게 굉장히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대기업 CEO가 갑자기 구멍 가게를 경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뭐 이런 패착은 원작 소설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물론 이것은 <여왕 폐하 대작전>을 007 시리즈의 연속성에서 보았을 때 느끼는 생각들이다. 이 영화를 이전의 숀 코너리가 출연한 5편의 작품들을 무시하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여긴다면,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패로, 제작사인 이온 프로덕션은 모험 대신 안전을 택했고, 007 시리즈는 다시 초기의 능글맞은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갔으며, 조지 레전비는 2대 제임스 본드이자, 단 한 편의 007영화에 출연한 비운의 배우가 됐다. 이후 하드 보일드 제임스 본드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20여 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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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1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개인적으로 이 작품도 괜찮긴 하지만 조지 레전비탓인지 007 시리즈란 생각은 안들더군요.마치 외전격인 007 카지노 로얄을 보는듯한 느낌이 나던데요^^

Tomek 2011-04-20 09: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뭔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컸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