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Tomek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B-side Ourselves

   지난 금요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이신 강신주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 홍대 살롱 드 팩토리에 갔습니다. 직장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자리는 이미 만원이고 선생님 말씀은 벌써 시작되었더군요.  

   동녘 출판사 관계자분께서 주신 핸드 아웃을 들고 자리를 앉았습니다. 보통 '저자와의 대화'는 의례적인 강연과 독자들의 질문으로 진행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굳어져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가벼운' 자리에서도 실제 강연을 하시는 것 같이 준비를 해오셨습니다.  

   자리를 채운 독자층은 굉장히 다양해 보였습니다. 20대의 학생부터 50대의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시'와 '철학'을 한데 버무려 맛깔스런 주제를 뽑아내신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인지 다들 상기된 분위기였지요. 

 

   강연은 책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인의 시와 철학자의 사상을 다루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유방」이라는 시와 여성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이의 '차이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의 것이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예속되어 있는 신체기관인 유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내 것이로구나'라는 것을 느낀 것은 그녀가 유방암 검사를 받기 위해 차가운 엑스레이 기계앞에 상반신을 밀착하고 "찌그러진 유두"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차가운 기계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느낀 시인의 시는 그래서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경험은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지만, 남성들 또한 그 느낌을 (여성들 만큼은 아니지만) 알 수 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여성은 물론 남성들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은 문정희 시인의 이런 일련의 작업을 이리가레이의 사상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철학도들에게 '빨간책'으로 불리우는 『서양철학사』를 한 번 찾아보세요. 거기에 여성 철학자가 얼마나 등재되어 있나. 한 명도 없습니다. 철학자 뿐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등 역사에 남아있는 여성의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요? 여성의 지위는 확실히 남성에 비해 불평등합니다. 이 지위를 평등하게 맞추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지요. 

   

         

 

   그런데 이리가레이는 이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것이거든요.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봅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권신장이란, 남성을 여성에 맞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성의 여성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가레이가 생각하기에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타자를 끌어안는 존재입니다. 여성들은 '임신'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 몸 안에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끌어 안는 경험을 합니다. 임신을 못하는 여성들이더라도 '생리'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몸 속에 존재하는 이물질과 같이 지내는 경험을 하지요. 다른 존재를 끌어안는 행위를 통해 여성들은 남성들의 폭력성과는 다른 모성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 박애주의적인 경험을 남성들도 배우게 된다면 이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감싸안는 문정희 시인과 이리가레이의 사상은 지금 찢어지고 분열된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연은 이런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처음 책을 기획했을 때 이 내용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뺐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내용은 선생님이 강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원고를 쓰는 방식은, 이번에 독자와의 만남에서처럼, 강연 내용을 작성해서 핸드 아웃을 돌리고, 강연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그 후에 다시 윤문을 해서 최종 원고를 탈고하는 방식이라는 군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책의 저자는 강신주 혼자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한 시인들, 철학가들, 그리고 강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공저한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저자 강신주'와 그의 저작들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한 순간이었지요. 어쩌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재판에서는 이 글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시 30분에 시작한 강연은 10시 30분이 되어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여러 대화가 있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란 애초에 '불륜(不倫)'이라고 정의하셨지요.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했던 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철학은 해체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현상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나 현상을, 우리를 가리고 있는 '위선'이란 치양막을 확 들쳐냈기 때문에 그런 당혹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미화하는 존재"니까요. 선생님의 그런 공격적인 말씀은 우리가 미화하고 있는 그 치양막이 갑자기 벗겨졌을 때, 그 진실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대답같았습니다. 우리가 불편하지만 진실을 마주해야하는 이유는, 갑자기 마주칠 수 있는 그렇게 홀딱 벗겨질 수 있는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서니까요. 하지만 그 한 순간을 위해 힘들게 진실을 견디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생을 '苦'라 칭했나 봅니다.  

   후기를 읽어보니 선생님과의 대화는 새벽 3시까지 진행됐다고 합니다. 저도 계속 있고 싶었지만, 배고픔의 고통 앞에선 견딜 수가 없더군요. 10시 30분에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배운 것은, 시나 철학이 아닌, '진실'에 마주쳐야 할 '용기'인 것 같습니다.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동녘 관계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강신주 선생님께도요. ^.^; 

 

 

* 덧붙임: 

   강의 중에, "인간에게는 수 많은 자아가 있으며,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그 수많은 자아 중 가장 강력한 자아가 내 안의 여러 자아를 누르고 있는 결과"라고 하신 말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분열증을 앓아야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요. 그런데 여러 예시를 보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2차세계대전만화』를 그리고 <시사IN>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굽시니스트가 '후기'에서 '자아'를 분리한 모습입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 재미있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 또한 사회적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가 있다고 얘기한 걸 보면 문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대신 강신주 선생님의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문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말씀에 위안을 삼아야 할런지... ^.^; 

김혜리: 보통은 그냥 "작가로서 성숙했다"고 표현할 텐데 복잡하네요. 같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순간의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김연수: 왜 소설 쓰는 자아와 제 자아가 다르냐면 창작하는 과정에 단절이 있어요. 처음 사회적 자아로서 뭘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먼저 스토리를 만드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와요. 평소의 내가 얼마나 후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마감을 앞두고 잠도 안 자고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다 뻗어버리는데, 내 자만심도, 습득한 지식도 다 부정하고 아무것도 없이 깡그리 벗겨진 그 상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예요. 그러니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그 작품을 끝내는 순간에는 "이것은 소설임에 틀림없다"는 환희가 들었어요. 독자들도 제 에세이와 소설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에세이와 평소의 저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어려워하는 분도 있어요. 저 역시 독자들을 만나 소설을 설명할 때면 이미 평소의 자아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작품을 말하듯 어색해요.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첫회가 제일 쉬워요. 마감하고 한달 놀고 한달 자료 찾고 마지막 달에 2회분을 쓰려고 첫회를 읽어보면 너무 잘 썼어요. 도저히 이렇게 쓸 수가 없고 남이 써줬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어요. 그렇게 비참해하다가 간신히 쓰죠. 그리고 3회에 가면 또 가까스로 썼다고 여긴 2회분이 훌륭해 보여요. 그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웃음) 

[김혜리가 만난 사람] 소설가 김연수 중에서, 『씨네21』No.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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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3-1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방면에 관심도 많으시고 깊이도 있으시네요. 종종 님의 블러그에 오면 놀랄 뿐입니다. ^^

Tomek 2010-03-16 17:0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깊이는 커녕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걸요... 그저 이런 저런 글쓰기는 제게 있어서 '치유'의 과정일 뿐이예요.
고맙습니다. ^.^;

2010-03-18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실과 환상의 뒤섞임, 그 안에서 살아가기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  

                                                             -「송해성, 공지영의 대담」중에서, 『씨네21』 571호 -

 

   공지영 작가의 저 말은 소설 『퀴즈쇼』와 뮤지컬 『퀴즈쇼』에도 관련한다. 뮤지컬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시간안에 이미지를 나열하고 그 순간에 감정을 고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활자는 음미할 시간이 있지만,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반응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다) 바로 그 차이가 두 매채간에 존재하는 안타까운 '사이'일 것이다. 

   소설 『퀴즈쇼』는 "오딧세이가 된 기분이야"라는 주인공 민수의 대사처럼, 거대한 서사시로 읽힌다. 마치 운명의 여신들이 더이상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민수의 운명을 직조해놓고, 민수는 나쁜 꿈을 꾸는 것 처럼 스멀스멀 더이상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선택을 (계속) 하게 된다. 현실의 시간으로 치면 약 두 달간의 일이지만, 감정의 강도는 마치 인간의 일생을 견딘듯한 느낌이었다. 소설 『퀴즈쇼』는 감정의 "서사시"인 셈이다.  

   뮤지컬 『퀴즈쇼』는 이 (대책없는 분량의) 소설을 별다른 각색없이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었다. 뮤지컬은 상영시간에 맞추어 1부와 2부로 나누었다. 1부는 민수가 외할머니 '최여사'의 죽음으로 집에서 쫓겨나고 고시원에 생활하면서 옆방녀 '숙희'와 사랑하는 그녀 '지원'을 만나는 이야기까지 담았고 2부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뮤지컬에서 1부와 2부의 러닝타임은 각 1시간 정도로 동일했는데, 소설에서의 분량은 1부가 2/3, 2부가 1/3 정도다. 적절하게 끊고 강조했지만, 문제는 무리한 1부에 있다.  

   1부는 민수의 여자친구였던 빛나와 친구 정환의 이야기와 민수가 TV 퀴즈쇼에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설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무대는 최여사의 장례식, 고시원, 인터넷 퀴즈방, 면접장소, 편의점, 홍대 놀이터, 지원의 방으로 나누었고, 이 안에 소설에서 방사형으로 진행되었던 민수의 개인사, 88만원 세대의 일상의 비루함, 부모 없는 고아의 비애, 민수와 숙희와의 관계, 민수와 지원과의 관계가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나열된다. 소설을 읽고 간 사람들이야 이 내용을 알고 있으니 이 숨가쁜 서사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처음 뮤지컬을 접한 관객들에게는 벅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히려 과감하게 각색을 해서 내용을 좀 더 단선적으로 만드는 게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는데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빛나'의 부재가 아쉬웠다. 소설에서 빛나는 민수를 가장 냉정하게 평가하고 사랑보다는 '계산'과 '평가'가 앞선 현실세계의 여자였다(그렇기에 민수가 회사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떠올린 사람이 지원이 아닌 빛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민수에게 있어 잔혹한 '악몽'같은 존재인 그녀가 무대에서 어떻게 형상화될지 궁금했었는데 볼 수 없어 유감이다. 

   이제까지 싫은 소리만 했는데, 사실 뮤지컬 『퀴즈쇼』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경우이다. 일단 인터넷 퀴즈방은 어떻게 묘사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었는데, 무대에 구현된 것을 보고 무릎을 쳤었다. 기발하고 스피디한데도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발한 연출이었다. 숙희와 지현을 동등하게 배분한 것도, 그리고 1부의 마지막, 지금껏 민수가 겪었던 모든 인물들이 '기어나와' 민수를 선택의 '막장'으로 밀어붙이는 묘사도 뛰어났다. 책에서는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감정으로 스산함을 느꼈었다면, 뮤지컬에서는 한번에 폭발하는 강력한 감정을 선사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뮤지컬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2부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활자로 묘사되어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회사와 회사의 인물들, 퀴즈대결이 눈앞에서 형상화된 모습은 상당히 근사했다. 정신없이 벌어지는 '훈련'과 '퀴즈대결'을, 마치 '군무'와도 같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뮤지컬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소설과 뮤지컬의 결정적인 차이는 민수가 회사를 나오는 장면에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지만, '인생은 퀴즈쇼다'라는 명제에서 소설이 '쇼'에 방점이 있었다면, 뮤지컬은 '퀴즈'에 방점이 있다. 그 차이는 민수가 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사유의 순간보다는 즉각적인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매체의 특성상 잘 각색했다는 생각이다. 

   인물들의 묘사는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원래 김영하의 인물들이 가벼운 듯 보여도 특유의 복잡다단함으로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뮤지컬에서는 그들의 단면만을 본 느낌이었다. 이것 또한 매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대신 '유리'의 묘사만큼은 확실히 뛰어났다. 물론 그런 정신나간 인물을 묘사하는 건 캐리커처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하지만. ^^;  

 

 

   오늘 1월 2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뮤지컬 『퀴즈쇼』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번에 재공연할 때는 내용을 조금 빼서 소설을 모르는 관객들이 훨씬 더 쉽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시 컴퍼니 여러분들. 좋은 공연 만드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문학동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 덧붙임 

뮤지컬 중에서 가장 반가웠던 장면은 MUSE의 「unintended」가 흘러나올 때 였습니다. 소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던 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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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는 사실 지루했어요. 같이 본 친구도 지루했다고 하더군요. 쩝. 그리고 주인공들의 가창실력도 사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이춘성 씨 빼고), 무대 구성이나 1부는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죠. 사실 소설 <퀴즈쇼>는 내면의 변화가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우선인 무대를 중심으로 한 뮤지컬로 표현되기에는 쌍방향에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죠. 하지만 국내 뮤지컬이라고 하면 이미 색안경을 끼고 봤던 제 시선을 조금은 거둬가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던 것 같네요.

Tomek 2010-01-12 14:26   좋아요 0 | URL
저하곤 반대셨네요. 전 1부가 다소 산만하다고 느꼈던 반면, 2부는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귀에 꽂히는 넘버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합니다.
고맙습니다. ^.^
 
[펌]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

   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작가 김훈은 이미 문경새재에 관한 글을 『자전거 여행』에서 두 장에 걸쳐 썼다. 게다가 올 10월 『공무도하』를 탈고하고 찾아간 곳도 새재길이다.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길을 독자들과 함게 또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하긴 그는 자신의 안에서 해결되어지지 않은 궁금증이나 관심있는 사유를 에세이와 소설에 반복해서 써왔다. 정다산, 우륵의 악기와 가야의 철기 무기들, 울돌목과 충무공, 남한산성에서의 임금의 치욕, 러브호텔과 그 치양막들 등. 그는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에세이든, 소설이든, 칼럼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사유를 펼쳐왔다. 계속해서 새재를 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다음 작품에서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앞에 보이는 버스 커버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뭐라 써있는 일본말보다는 오른쪽 하단에 있는 숫자가 눈에 띈다. 예전같으면 별 의미없을 숫자가 요즘엔 왠지 중압감을 주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일까? 루저는 앉지 말라는 건가?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몸을 맡겼다.   



   8시 50분에 출발한 버스가 11시 40분에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도착했다. 인솔을 따라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김훈 작가님이 며칠 전 미리 답사를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식당을 예약했다고 했다. 맛이 없었어도 맛있었다고 할 충성스런 독자들이 모여 있었건만, 그날 음식은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화랑 성냥을 보고 사진 한 방 찍다.   

  

   새재를오르기 전 하늘은 어두웠고, 비가 내릴듯 한 모습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씨였다. 날씨 때문에 예정에 있던 문경새재 박물관 관람은 취소하고 바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자, 제 1관문, 주흘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작가님의 즉석 강연이 시작됐다.     

 

   새재길을 걸으며 작가님 뒤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보니 작가님의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좀 특이하신 걸음걸이였다. 팔을 굽히지 않고 쭉 뻗은채로 걸음을 빨리 해 걷는 모습. 이런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비정전』에서 본 것 같다. 


   작가님의 걸음걸이는 아비의 걸음걸이와 비슷했다. 그 때 아비의 저 걸음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생모에게 복수의 심정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빨리 걷는 걸음이었다. 영화는는 카메라가 마치 그런 아비를 붙잡는 것처럼 갑자기 느려진다. 작가님은 왜 빨리 걸으셨을까? 내가 카메라가 되어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계속 걷다가 잠시 마당바위에서 멈춰 '길'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제2관문에서 하실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따라온 YTN취재 때문에 그림이 나오는 장소에서 말씀을 하셨다. 예민한 사람 같으면 헝클어진 일정때문에 살짝 짜증이 날 상황이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으시고 바로 강연에 들어갔다.   

 

YTN취재팀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공무도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제 3관문까지의 오르막까지 계속 쉼없이 걸었다. 가끔씩 내리는 비와 진눈깨비, 그리고 안개라하기엔 너무나 짙은 운무까지. 새재길은 점점 더 현실적이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3관문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지나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위치한 덕분에 『퀴즈쇼』의 '회사'가 생각났다. 나도 곧 우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잠시간의 생태교육을 마치고, 세미나실을 빌려 작가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날 있었던 대화를 동영상으로 옮겨본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자리도 좀 뒤에 앉았던 터라 상태가 참담합니다. 화면은 가급적이면 보지 마시고 볼륨을 크게 키워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마치고 버스에서 문학동네에서 마련한 선물을 받았다. 『풍경과 상처』 소책자와 북마크, 그리고 공무도하 연필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어찌할 줄 몰랐다. 고마운 마음에 아직까지도 어찌할 지 모르는 마음뿐이다. 특히 『풍경과 상처』 는 저 크기에 실제 책이 다 들어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읽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위스키 샘플처럼 바라보면 흡족할 새로운 종류의 책인 것 같다.



   20시 30분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한 것을 끝으로 길었지만 짧았던 김훈 작가님과 함께 걷는 일정이 끝났다. 다른 독자와의 대화처럼 2~3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12시간을 함께 겪고 같이 길을 걷는 경험은 작가-독자와의 관계에서 한꺼풀 더 들어간 느낌이 들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작가로서의 김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김훈을 조금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 조금 더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귀한 기회를 마련해준 알라딘, 문학동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해주신 김훈 작가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덧붙임 

1. 이날 독자와의 대화는 다른 때와 비교해보면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추운 날씨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약 3시간을 걷다가 갑자기 따듯한 실내에 들어와 몸의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독자들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반면 김훈 작가님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꼿꼿이 허리를 펴 앉은 상태로 많은 질문들을 듣고 답변하셨습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강철 체력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작가님도 이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2.  생태학습관에서 있었던 질문 중 두 개가 빠졌습니다. 제가 질문하느라 촬영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간단한 질문이어서 간단하게 적어봅니다.  

첫번째 질문: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은 각각 다른 매체로 각색되었습니다만, 그 내용은 원저작물과 상이합니다. 다른 매체로 각색된 선생님의 작품들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2차 저작물은 그것을 각색한 사람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인정하고 개입은 안한다. 

두번째 질문: 선생님께 있어서 『삼국유사』란 어떤 의미입니까? 

답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중 현존하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둘 뿐이다. 그렇기에 두 책 다 내게 있어 소중하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지었는데 그의 생애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가 나이 일흔에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삼국사기』만 역사서로 인정하고 『삼국유사』 는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삼국유사』 는 마음의 역사다. 

 

3. 오전에 글을 한 번 날렸습니다. 알라딘은 유튜브와 연결이 잘 안되는 것인지... ㅜㅜ  

 

4. 그날 트레킹에 YTN취재팀도 같이 와 취재를 했었습니다. 언제 방송하나 궁금했는데 지난 12월 8일에 방송했습니다. 느즈막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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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09-12-0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가셨군요^^

Tomek 2009-12-08 09:18   좋아요 0 | URL
넵. 운좋게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네요. ^.^;;;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잘 다녀왔습니다.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

 

<일시>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19시 40분
<장소> 누리꿈 스퀘어 18층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지난 금요일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어서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었는데, 기대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는 저 개인의 추억으로 혼자 간직하려고 했으나, 약 8:1의 경쟁률(?)을 뚫고 참석한 자리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신 알라디너분들께 보고 형식으로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이번 만남은 강연과 질의 응답 그리고 사인회로 진행됐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생방송으로 인터넷 중계를 했고, 이미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바로가기 클릭) 그 기사로 후기를 대채할 생각이었으나, 무언가 미흡한 마음이 들어 그때 강연과 질의 응답을 재구성하기로 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제공한 <공무도하> 연필과 오마이뉴스에서 제공한 소책자 메모장 

 

 

어쩌다보니 이런 사진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아래의 글은 제가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김훈 선생님이 강연에서 하신 말을 Tomek이라는 여과기를 거쳐 쓴 것입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 했으나 제 생각이 중간 중간 개입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 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연> 수능날 아침, 고사장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겨우 준비해 왔는데... 저는 소설이나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저는 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세상 잡사(雜事)를 아주 싫어하지만, 세상 잡사를 끝없이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모순된 욕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수능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수능 고사장 풍경을 관찰했습니다. 저는 이자리에서 지금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보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물론 이런 주제가 이 자리에서 말할 게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12일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험지 수송이 이루어졌습니다. 시험지가 담긴 상자 하나에 무장경찰이 두 명씩 들러붙어 각 고사장으로 시험지를 수송했습니다. 

   6시 3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 때 응원부대가 속속 고사장 주변으로 집합했습니다. 응원부대는 고1, 2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표정은 발랄하고 이뻤습니다. 그들은 "수능 대박 / 재수 없다"라는 피켓을 준비하고 응원했습니다. 그들은 고3들의 얼굴을 부비고 안으며 응원하고 들고온 린나이 곤로로 따듯한 커피를 끓여서 먹였습니다. 

   7시 30분이 되자 수험생들이 입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응원은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입실을 한 여학생들은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남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은 여자의 지옥과 같은 '업'입니다.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40년간 피우던 담배를 얼마전에 끊었는데, 이들 남학생들은 제가 40년간 피웠던 담배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수능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 모두 인생의 시작으로서 업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이 수험생들을 데려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수험장에 데려다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내리고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딸은 교문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가 탄 승용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아마도 딸의 아버지 역시 백밀러로 수 많은 인파들속에 묻혀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차가 교통체증과 신호에 막혔습니다. 안타까운 부성을 어쩔 수 없었는지 아버지는 차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딸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 시간 2차선에 있었던 아버지들은 차 창문을 열고 계속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1차선은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도로가 막힐 때마다 항상 1차선에 있는 것은 퀵서비스 차량입니다. 이들은 거리의 야생동물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곡예와 같은 운전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들은 이 도시의 역동적인 생존의 투사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수능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중년, 초로의 어머니들입니다. 어머니들의 애끓는 모정은 다 큰 성인인 아들이 군대를 갈 때도 병영 앞에 따라 갈 정도입니다. 수능 시험이 아니라 대학원 시험을 볼 때도 어머니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편에선 동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인도해 줄터이니, 성령에 기대어 다들 잘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애끓는 모정과 성령의 힘이 발휘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이 수능이라는 제도 앞에선 모두 무력화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들 수능을 잘 본다 하더라도, 수능은 결국 밑에서부터 쳐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능이라는 등급을 만들어 놓고, 대학을 서열화 시킨 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우리는 제도화 시켜놓고, 그 모순된 제도속에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밀어 넣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경찰, 퀵서비스, 해병대 전우회, 헌병까지 나와 시험에 늦은 수험생들을 고사장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이 균등하게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공평한 기회를 우리는 공정거래라고 합니다. 공평한 기회 안에서 강자와 약자가 거래를 하면 약육강식의 결과가 됩니다. 사회의 배려로 균등하게 시험을 볼 수 있는 공평한 기회 안에서 경쟁을 해서 운명에 맞는 서열화를 지닙니다. 불합리한 것은 알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약 10,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시험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들은 스스로의 고민을 짊어지고 방황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일만명의 학생들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만명의 학생은 수능이라는 제도 안에서 잘라서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1교시가 끝나자 각 입시 학원에서 정답을 제공했습니다. 저는 이 신속함이 야만적인 신속함이라 느꼈습니다. 정작 정답이 필요할 학생들은 시험장에 갇혀서 시험을 보고 있을 것인데, 이런 신속함이 누굴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능평가의 문제를 보니, 수능은 개념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사물은 개념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운동의 모습으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에게 사물을 개념화 시켜서 가르치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수능은 평준화 제도라는 틀 안에서 평가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평준화 교육임에도 부모는 내 자식이 평준화 된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그 이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준화 제도 안에서 평준 이상을 원하는 부모의 욕망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준화의 이상은 우리가 쉽게 단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을 우리는 제도로 만들고 아이들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그 제도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쉽게 내칩니다. 

   불합리하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수능을 보지 않은 일만명의 학생들이 개념화된 지식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기대합니다.  

 

 

유일하게 제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라서 올렸습니다. ^.^ (출처: 오마이뉴스)  

 

<질의 응답> 

[질문 1] 본인의 문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게 있어서 문체는 고통스런 글쓰기의 조건입니다. 문체가 확보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책을 낼 때도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데, 이 원고가 제 맘에 들지 않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는데,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허영심이 있다면 주어와 동사만을 사용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말의 뼈대만을 사용해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판소리로 비유하자면 서편제가 아닌, 동편제같은 기교를 배재한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일종의 허영심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요. 원고가 진행되어야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말의 뼈대만을 가지고 글을 쓰면, 평소에 10장 쓰는 것을 1장밖에 못쓰는 것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보고 싶습니다. 

 

[질문 2-1] 소설 『개』는 어떻게 쓰셨습니까? 

   『개』 주인공 '보리'라는 개는 제가 기르던 개의 이름이었습니다. 진도개였는데 너무 사나워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농장에 취직시켜줬습니다. 지금은 농장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저한텐 상당히 좋은 개였으나 제 식구들에겐 힘든 개였습니다. 저한텐 그렇게 충성을 바치고 어리광도 부리는데, 이 개는 여자, 특히 제 딸을 무시했습니다. 딸이 집에 들어오건 말건 누워있는 상태에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보다못한 딸이 몽둥이로 개를 때리는데도 이놈은 그냥 맞고 있습니다. 아마도 '때릴테면 때려봐라' 뭐 그런 심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에 대한 관심이 생겨 도감을 찾아보니, 개의 시각과 청각, 후각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 개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것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개가 되어 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삶을 삶 자체로 느끼지 못합니다. 글자, 매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사이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우리의 삶을 차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몸으로 직접 개입하고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를 통해 우리에게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직접 느끼는 것을 집필 의도로 삼았었는데, 그게 잘 표현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2-2] 작가 김훈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글쓰기란 밥벌이, 노동, 생존입니다. 저에게 글쓰기란 경건하고 심오한 노동입니다. 이것이 보장되어질 때 비로서 글쓰기란 저 자신을 표현해 주는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이 순서가 저에겐 중요합니다.  

   저는 세속의 질서를 지니고 삽니다. 현세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저는 현세적 가치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질문 2-3] KBS 정연주 사장과 YTN 기자들의 해임 무효 승소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법원의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세속적인 질서를 존중합니다. 법관은 개인의 신념이나 정의감, 여론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법과 헌법에 따라 판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가 여론과 정 반대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판결을 따르는 것이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3-1] 선생님은 시민은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민의 불복종은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계기일 때 권리라 생각합니다. 

 

[질문 3-2] 그렇다면 그 특별한 계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민 불복종이 권리가 된 그 특별한 때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하신) 선생님은 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자 모르겠다고 대답)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4] 소설 『공무도하』를 보면 작가 스스로 많은 조사와 취재를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조사와 취재를 글로 만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공무도하』에서는 연민과 서정을 의식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무정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냉엄하게 관찰하는 문체를 고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엔 세상에 대한 연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연민을 감춰서 더 많은 연민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놈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글로 표현할 때, '나쁜놈'이라는 세글자를 쓰면 안됩니다. 직접적인 글 대신에 이 사람이 나쁜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증명해야 합니다. 

   취재나 소재는 극히 일부가 소설이 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버리게 됩니다. 저는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강을 보면, 하류의 조강은 늙은 강입니다. 힘겹게 겨우 겨우 흘러갑니다. 그렇게 바다로 흘러갑니다. 반면에 북한강 상류는 힘이 넘칩니다. 젊은 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연을 느끼는 것을 자연을 취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을 취재하다보니 인간을 취재할 때도, 인간을 하나의 풍광으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문 5] 선생님이 쓰신 『자전거 여행』에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애끓는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애국자이십니까? 

   저는 이념화된 애국심은 없습니다. 『남한산성』에서 애국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절망적인 고립된 성 안에서 있는 그들의 선택을 전 긍정합니다. 개인의 목숨을 강요하는 애국심에 대해선 긍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이유도 가능합니다.  

   『남한산성』에서 남한산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조선 임금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임금이 그 성으로 피난을 오지 않았으면 이들은 계속 자급자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성 안에 들어온 임금을 향해 엄청나게 욕을하고 저항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기록에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이런 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정도 상상력으로 복원했습니다. 이들에게 이념화된 애국심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이들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6-1] 선생님은 예전에 시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정작 시를 쓰지는 않으십니다. 선생님에게 시는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의미인지, 어떤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를 못씁니다. 시를 보면 질투가 나고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경탄합니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보면 산, 꽃, 새 주어가 3개입니다. 그리고 피네, 우네, 지네, 사네 동사는 4개입니다. 고작 이것을 가지고 자연에 동화되지 못하는 인간의 소외를 그렸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게다가 주격조사 '이'.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주격조사 '이' 대신 '은'을 집어 넣으면 이것은 망한 글이 됩니다. 이것은 생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김소월은 이것을 육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입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재주는 사회의 공적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6-2] 선생님께서 편애하시는 것, 예를 들면 힘들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이것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가끔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갑니다. 가서 울타리 사이로 무리진 여학생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그 중 한명이 저를 발견하고 까르르 웃습니다. 그러면 같이 있던 학생들이 다같이 따라 웃습니다. 그 웃음의 전파속도는 실로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 웃는 모습은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에 자주 가는데, 수위 아저씨에게 의심을 받곤 합니다. 다 늙은 아저씨가 학교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여학생들을 쳐다보니까. 요새 하수상한 일들도 많이 생기고. 

   재미없죠? 이상하고. (웃음)

 

[질문 7] 선생님의 <수능 고사장 풍경>에 대한 강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교육제도에 대안이 없을까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할 만한 게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4대강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종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 정말 모릅니다.  

   신문 사설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쭉 말을 하면서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국민이 판단한다는 말은 마치 민주주의의 절차를 대변하는 말 같으나 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허한 말이고 하나마나한 말입니다. 국민이 판단할 거라면, 대체 국회는 왜 있고 사법부는 왜 있으며 대통령은 왜 있는 것입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요즘 대학은 인문주의의 쇠퇴로 위기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학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린다고 하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옳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인간의 위엄과 존엄은 자기 밥벌이가 가능해야 그것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임금 격차나 다른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임금 격차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집근처에서 일 하는 젊은 목수들에게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을 합니다. 스스로의 자부심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젊은이들도 정서적인 관점이 아닌 과학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질문 8] 『공무도하』의 원작 「공무도하가」는 끔찍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소설에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공무도하가」에서 받은 인상과 왜 제목을 차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공무도하가」를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걸 읽었을 때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고 부인도 죽는데 부인의 죽음은 석연치 않습니다. 백수광부를 구하려다 죽었는지 아니면 백수광부가 죽은 것을 알고 투신 자살하려 했는지. 그 둘은 서로 다르잖아요? 이 이야기를 해주자 여옥이 부른 노래가 「공무도하가」죠. 물 너머의 세계로 간 사람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국어선생님은 무조건 개념화된 지식만 가르쳤었죠. 외우지 못하면 맞고. 

   소설에 사랑 이야기가 없다고 하셨는데, 직접 나오지는 않고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사랑'은 처자식을 만들고 인간을 속박시킵니다. 저는 그런 인륜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좌절을 이 소설에서 그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이 새로운 관계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계속 생각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끈적한 것일까요? 

 

[질문 9] 저는 딸과 아들, 두 번의 수능을 겪은 엄마입니다. 이 해결할 수 없는 모순된 제도 안에서 수 많은 갈등을 하며 아이들을 제도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수 많은 학부모들의 이 더러운 비열함을 희망으로 전환시킬 문학작품을 다음에는 써 주셨으면 합니다. 

   수능 고사장에서 돌아와 제가 찾은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습니다. 허클베리는 미시시피의 건강한 반항아이자 문제아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문학에는 이런 아이들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의 직무 유기가 아닐런지. 

   이 땅의 모든 예술 작품들이 이런 모순된 제도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말하고 절규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없을까요. 

 

[질문 10-1] 『공무도하』에서 노목희가 새벽에 냉장고에서 낫또를 꺼내 끓이는 장면을 보고 놀랐습니다. 낫또는 우리에게 친숙한 식품이 아닌데 왜 낫또였습니까? 

   왜 청국장이 아니라 낫또냐고 물으신 건가요? 청국장이면 분위기가 깨지죠. 한 밤에 끓이기도 번거롭고 냄새도 나고. 청국장의 이미지는 같이 오래 산 중년 부부에게 어울립니다. 노목희가 청국장을 끓이면 분위기가 망합니다. 그래서 낫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질문 10-2] 『공무도하』에서 개인적으로 '뻥'터졌던 부분이 고압 산소통과 화장실에 빠져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은 그 부분은 넣을지 뺄지 상당히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삶을 조롱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 또한 삶의 우연이라 생각하고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제가 창작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질문 11] 선생님의 오늘 강연은 예전에 기자 시절에 쓰신 「대학 졸업식 풍경」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작가 김훈은 그 때 기자 김훈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관찰자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심을 배제하고 목격한 것만을 적습니다. 

   대학 졸업식은 난민 캠프입니다. 졸업식이 시작되면 온갖 잡상인들이 몰려들어 음식을 팝니다. 대학 총장은 졸업 축사를 비어있는 팻말 앞에서 합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핫도그를 입에 물고 돌아다닙니다. 졸업식장에서 대학생들은 discipline이 안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훈련이 안 된 사람을 날라리라 부릅니다. 대학 졸업식은 형식이 무너진 교양이 없는 풍경입니다. 

   삶의 형식에 있어서 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식이 무너지면 그 내용도 무너집니다. 형식은 내용을 견디고 버텨내는 그릇입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형식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전 보수주의자 입니다. 

 

[질문 12] 선생님은 글을 쓰실 때 끝을 낼때가 언제쯤인지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이 끝날 때쯤 되면 기진맥진합니다. 그래서 빨리 해결하려 합니다. 제가 소설을 쓰다가 '아, 이제 연필을 던져도 되겠구나.'하는 부분은 그저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여자가 등장하는 부분은 굉장히 힘들게 씁니다. 그래서 『공무도하』에서도 노목희를 빨리 보내려고 했고. (웃음) 특히 『칼의 노래』쓸 때, 여진이라는 여자가 초반에 나오는데, 이 여자가 살아 있으면 소설을 진행하기 힘들 것 같아 가능한 빨리 없앴습니다. (웃음) 

 

    

<사인회>  

   생각 같아선 가지고 있는 소설을 다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고 싶었으나, 많은 분들이 오실 것 같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빗살무늬토기의 추억』과 『강산무진』 두 권만 가져왔습니다. 알라딘과 문학동네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니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책만 챙겨온 셈이지요. 기회가 되면 다른 책에도 사인을 받고 싶습니다. 

  

 

그날 강연과 질의 응답을 적은 메모지 

 

<나는 왜 김훈에 열광하는가?> 

   이날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 김훈은 -굳이 가르자면- 보수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을 긍정하지만, 또한 현실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대통령 선거에서 1번을 투표한 전례가 없는 저와는 이념적으로는 맞지 않는 성향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는 왜 이런 김훈에게 열광하는가? 

   작가 김훈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그런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자신이 모순된 존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알고, 세상을 파악하고 그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어떤 위대한 이상에 짓눌려 살아왔습니다. 돈벌이를 경시하고 저 너머에 있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제 삶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신념과 이상은 항상 돈 앞에서 멈칫거렸습니다. 그러나 김훈은 세속적인 것을 존중합니다. 끼니를 때우는 것에 대한 숭고함, 돈벌이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과 위엄을 그는 글로, 소설로 표현했습니다. 소외당한 것 같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찮게 느껴지는 돈벌이를 그는 긍정했습니다. 이땅의 위로받지 못하는 가장들은 김훈에게 위로를 받고 삶의 숭고함을 찬양 받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존재 이유를 김훈에게서 받습니다. 그것도 우리와 같이 불완전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위대한 김훈에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열광합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합니다. 

   소중한 기회를 준 알라딘과 문학동네, 오마이뉴스 그리고 김훈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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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냉엄하고 엄정한 시선을 잠시 거둔, 미문의 소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8 08:08 
       김훈의 문장은 냉엄하고 엄정하다. 1인칭 시점의 글이건, 3인칭 시점의 글이건 간에, 그는 냉엄하고 엄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기본 조건이야말로 그가 기자시절부터 단련해 온,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 그도 피곤했던 것일까? 늘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의 시선이 『개』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아련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인간이 아닌
  2. <공무도하> '시간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8 08:44 
       처음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의 처녀작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대구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시작하고 <공무도하>에서는 장마전선이 형성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람과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물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 존재는 알고 있으나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다. 마치 우륵의 음률이나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처럼.
 
 
톨트 2009-11-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강연회 였군요. 저는 추위와 감기 때문에 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여튼 저도 김훈 선생의 소설은 대부분 읽었습니다. 배울 게 많은 작가이지요.

Tomek 2009-11-16 12:22   좋아요 0 | URL
감기 걸리셨나봐요. 요즘 감기 독한데.. 빠른 쾌유 바랍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좋은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진행됐습니다. 좀 더 시간이 길었으면 했는데.. 90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10-03-01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2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사 업무 상 13일, SETEC에서 개최하는 <EBS 어린이 영어교육박람회>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KOEX에서 했던 박람회보다는 규모가 좀 작은 편이지만, 현 사교육 영어 '시장'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어린이 영어와 관련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어린이 특히 유아에 대한 영어 교육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입시키는 것은 -몇 몇 재능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모들의 욕심과 욕망이 투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없는 게, 난 그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부모들의 욕망에 기대어 책과 상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기 때문이다. 삶의 모순. 내가 내 신념대로 살려면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경력을 버리기에는 이 사회가 어리숙하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내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대안 없는 모순을 끌어안으면서 나는 그렇게 하루 하루 끼니를 때우나 보다. 

   이번 <영어교육박람회>엔 총 41개 업체가 참가했다. 그 중 4개업체는 어린이 영어 교육과는 관련이 없는 업체였다(그 4개 업체는 쇼핑몰 회원유치, 보험 회원가입, 학원 인테리어, 아동학대 예방 캠패인 기관이다). 나머지 37개 업체 중 가장 많이 전시한 분야는 '어린이대상 영어 전문서적 및 교재'이다. 가장 볼 게 많았고 또 관심있는 분야였다. 

   아이들 손에 맞게 작은 판형으로 만들고 해당되는 주제에 맞는 내용으로 아기자기하게 책을 꾸몄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책이라기 보단 장난감, 교구에 가깝다. 그만큼 '책'을 온몸으로 느껴서 책을 알게되고 결국엔 책을 친숙하게 대하는 것. 위의 책들은 책 위에 책 내용과 관련한 장난감이 같이 있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팝업북의 향연. 평면성을 지닌 책에서 입체성을 지닌 그림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주의도 끌기 마련이다. 책을 통한 신기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더 많이 책과 접하게 될 것이고 책에 있는 내용 또한 익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런 책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과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 하지만 도전해 볼만한 영역이기도 하다.  

   달력처럼 양면을 사용할 수 있고 글의 내용에 맞게 시간을 독자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책. 책이 꼭 양면을 사용헤 펼쳐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책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존경스럽고, 이런 기획을 무시하지 않고 살린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을 한 눈을 가지고 같은 주제로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이런 책을 만드려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 회의와 기획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 그에 비해 난 너무 쉽게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게 아닐까하는 반성을 했다. 

   책이 꼭 사각형일 필요는 없다는 멋진 형식 변형의 한 예.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영어 사교육 시장의 측면에서 봤을 때 작년에 비해 달라진 점은 '화상교육'이 꽤나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업체도 상당히 많이 참가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학원의 역할은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것 같다. 지금 영어 학원이 선생 중심(T-centre)에서 학생 중심(S-centre)의 수업으로 넘어갔듯이, 앞으로는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터넷이고. 물론 현장 수업과 온라인 수업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현장 수업의 효과가 높지만, 이 차이는 앞으로 점점 좁혀질 것이다. 박람회에 참가한 인터넷 기반 프랜차이즈 학원들은 그 차이를 학원수업으로 매우고 있다. 이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번 주말을 이용해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2009년 현재 영어 사교육 시장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니까 말이다. 

 

 

*덧붙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정말 멋진 팝업북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더군요. 몇 장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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