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마하바라따』를 읽다가 앞에 인용된 따옴표들을 보고 흠칫, 멈췄다. 하나, 둘, 셋... 보면 알겠지만, 뒤에 또 따옴표가 따라온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화자의 화자의 화자의 화자(김기영 감독의 작품인가?)가 이야기 하는 말이다. 잠깐 딴 생각을 하게 되면, 이야기의 미로에서 길을 잃기 쉽상이다. 무슨 <인셉션>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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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낯간지러운 묘사들도 있었지만 경성애사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전체 분량에서 '얼마 안 되는' 표절 논란으로, 기어이 절판이 된 안타까운 소설로 남아 있다.

 

창비가 밝힌대로 신경숙의 소설이 표절이 아니라면, 이선미 작가의 작품 또한 그렇다고 본다. 창비는 신경숙 표절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해당 장면들은 작품에서 비중이 크지 않으며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창비의 논리대로라면 경성애사 또한 표절이 아니다. 그 얼마 안되는 유사성을 문제 삼은 해냄과 조정래 선생만 쫌생이가 된 것 같다. 

 

뭐 어쨌거나, 표절시비로 절판이 돼 안타까운 작품이었는데, 이제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인정할 출판사를 찾은 것 같아 다행한 마음이 든다. (물론 중고서적으로 헐값으로 구할 수 있지만서도.)

 

창비. 경성애사를 재출간할 출판사는 너희 밖에 없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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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서유기』를 읽은 독자라면, 『마하바라따』를 읽으면서 적잖이 당황 혹은 흥미로운 지점을 여럿 발견했을 것이다. 『마하바라따』에 『서유기』의 흔적들이 꽤 많이 보인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데,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이 『마하바라따』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마 (전체는 아니더라도) 『마하바라따』의 여러 흥미로운 단편들이 중국에까지 소개가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나는대로 정리한 부분을 옮겨 본다.

 

   『마하바라따』 1-139~144 (2권 「히딤바」 p.621~635)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락샤사 히딤바와 무적의 비마에게 연정을 느끼는 그의 누이 히딤바아에 대한 이야기는 『서유기』의 기본 플롯을 담고 있다. 숲으로 도망친 꾼띠와 빤다와들을 잡아먹으려는 히딤바를 묘사한 장면은 『서유기』에서 요괴들이 당삼장의 ‘고기’를 원하는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비마에게 사랑에 빠져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히딤바아의 모습은 삼장의 ‘원양(元陽)’을 얻기 위해 구애하는 (여성) 마귀들의 모습이다. 비마와 히딤바가 싸울 때, 옆에서 아르주나가 약을 올리는 행동은 손오공과 요괴가 싸울 때 옆에서 저팔계가 깐족거리는 것과 흡사하다.

 

   심지어 1-145~152 (2권 「바까를 죽이다」 p.641~660)에 걸친 이야기는 『서유기』 47회의 이야기와 같다. 바까라는 락샤사에게 재물과 자식을 바쳐야 하는 브라만 가족의 애절한 이야기는 영감대왕(靈感大王)에게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진(陳)씨 노인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비마와 아르주나의 활약은 손오공과 저팔계로 대체했다.

 

   이 두 이야기에서만 본다면, 빤다와들의 어머니 꾼띠에게서 삼장법사를, 첫째 유디슈티라에게서 사오정을, 둘째 비마에게서 손오공을, 셋째 아르주나에게서 저팔계를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서유기』의 흔적은 더 많이 있다. 『마하바라따』 3-146~150에 걸쳐서 비마는 늙은 원숭이 하누만을 만나는데, 그는 비마의 형이다. 비마는 바람의 신 와수에게서 태어났는데, 하누만 역시 그렇다. 손오공은 『라마야나』의 하누만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라마야나』를 (완전하게) 읽지는 못했으니 그의 탄생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신 그의 동생 비마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우리는 안다. 비마의 탄생과 손오공의 탄생을 비교해보자.

 

『마하바라따』 1-114
   ‘크샤뜨리야란 자고로 힘이 최고라 하오. 이제 가장 힘센 아들을 가집시다.’
   빤두의 말에 꾼띠는 바람의 신 와유를 불렀다. 그에게서 꾼띠는 완력 좋은 괴력의 비마를 얻었다. 힘이 넘치는 비마가 태어나자 하늘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는 모든 장사 중에 가장 뛰어난 장사가 될 것이다.’
   우르꼬다라(=비마)가 태어나자마자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 품에서 미끄러진 아이가 몸으로 바위를 부숴버린 것이다. 꾼띠가 호랑이에 놀라 품 안에 아들이 자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섰는데, 금강처럼 단단한 아이의 몸이 산의 바위 위에 떨어져 바위를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다. 바위가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본 빤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유기』 1회
蓋自開闢以來,每受天真地秀,日精月華,感之既久,遂有靈通之意。內育仙胞,一日迸裂,產一石卵,似圓毬樣大。因見風,化作一個石猴,五官俱備,四肢皆全。便就學爬學走,拜了四方。目運兩道金光,射沖斗府。
   그 바윗돌은 천지가 개벽한 이래 하늘과 땅의 정수(精髓)와 일월의 정화(精華)를 끊임없이 받으며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차츰 영기(靈氣)가 서리더니, 마침내 그 속에 태기(胎氣)가 생겼다. 그리고 어느 날 바윗돌이 쪼개지고 갈라지면서 둥근 공처럼 생긴 돌알을 한 개 낳았다. 바위에서 튀어나온 돌알은 바람을 쐬더니 그 즉시 돌 원숭이로 변했는데 두 눈, 두 귀와 입, 코의 오관(五官)을 다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멀쩡하게 생겨 그 자리에서 기어다니고 걸어다닐 줄 알고, 사방을 두루 돌아보며 절을 하는데 두 눈망울에서 금빛 광채가 쏘아져 나와 하늘나라에까지 뻗쳐 올라갔다.

 

   손오공이 돌'알'에서 나온 것도 의미심장한데, 힌두 신화에서의 창조주 브라흐마 역시 돌알에서 태어났다. (창조주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다니 신기한 일이다.) 『마하바라따』에 적힌 것을 그대로 옮겨 본다.

 

『마하바라따』 1-1
   천지에 빛이라고는 없이 온 사방이 컴컴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을 때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다. 멸하지 않는 생명의 씨였다. 사람들은 이를 세상이 시작되는 신비로운 근원이라 일컬었다.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참다운 빛이요 영원불변의 브라흐마라 했다.

 

   샨따누 왕이 인간으로 태어나 강가 여신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야기 또한 그렇다. 『마하바라따』 1-91 (1권 p.443)을 보면, 마하비샤라는 왕이 희생제를 통해 천상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강가 여신의 맨몸을 보게 됐다. 브라흐마가 이것을 보고 꾸짖으며 ‘다시 죽음이 있는 세상으로’ 보내어, 쁘라띠빠의 아들로 태어나게 됐는데 그가 바로 샨따누다. 후에 강가는 그와 부부의 연을 맺으며 8명의 자식들을 낳고 7명을 익사시킨다. 마하비샤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사오정과 저팔계의 경우(『서유기』 8회)와 흡사하며, 마하비샤의 현신인 샨따누와 강가의 러브 스토리는 황포 노괴(黃袍老怪)와 보상국(寶象國) 셋째 공주 백화수(白花羞)의 이야기(『서유기』 28~31회)와 같다. (아이들의 비극적인 죽음 역시, 그 의미는 다르지만, 같다.)

 

   62~63회의 구두부마(九頭駙馬)는 가루다를 차용했음에 틀림없다. 원래는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머리 아홉 달린 새 구두충(九頭蟲)과 장자의 대붕(大鵬)을 적절히 변형시킨 것으로 여기지만, 『서유기』에서 보이는 그 거대한 위용과 엄청난 위압감은 온전히 가루다의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히 비교해보고 싶지만, 아직 『마하바라따』가 완간이 다 된 것도 아니고, 중국 문학이나 싼스끄리뜨 문학 그 어느 것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내가 해보기에는 시간도, 능력도 없으니, 보다 자세한 관련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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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내 의지로 내 지갑을 순수히 열며 처음 샀던 것들이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기억 나는 것도 있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점점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감에 따라 이런 거도 이제는 추억을 지나 망각이 될 듯. 지금 이 순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해서 한 번 나열해본다.




   처음으로 구매한 책. 이 때가 아마 1988년? 국민학교 5학년 때 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연과 허석(지금은 의리의 김보성으로 개명했지만!)이 주연한 영화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워낙에 많이 읽어서 인지, 첫 부분에 나오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상큼한 오이맛"이라는 구절이 아예 뇌리에 박힌 희한한 소설. 작가 임정진은 후에 『있잖아요 비밀이예요』라는 소설로 이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90년에 발표한 『인생이 뭐 객관식 시험인가요』이후로는 이전에 보여줬던 참신함을 넘어서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처음 구매한 잡지가 아닐까 싶다. 1995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99권을 발간한 『키노』는 내게 영화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준 유의미한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렇게 교조적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배움을 구할 때 제 때 맞추어 나타났던 스승과도 같은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읽고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모여서 그것이 역사가 되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던 『키노』편집부의 바람은, 적어도 나는 지키고 있으니, 그래도 괜찮은 한살이 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986년, 국민학교 3학년, 일요일 대지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봤다. <영환도사>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었는데, 이 영화가 <강시선생>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강시가족>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본다면 어떤 감상일지 잘 모르겠으나, 이 때에는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극장 안 매너도 굉장히 좋았었는데, '굉장한 장면' - 그러니까, 깜짝 놀래키거나, 혹은 경탄할만한 놀라움을 안겨준 장면들 - 이 나올 때는 탄성을 내고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영화가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당시에는 그런 낭만도 존재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혹은 당연히) 표는 간직하고 있지 않다.




   처음으로 샀던 비디오 테이프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가격이 쎄서 정품으로는 몇 편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빌려 보기 마련이다.) 메탈리카 5집의 제작 과정과 이후 투어 기록, 그리고 뮤직 비디오가 수록된 이 비디오는, 아직 케이블 TV도 개국하지 않아 뮤직 비디오를 보려면 대학로나 신촌에 있는 MTV카페를 가던가, 아니면 KBS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하는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틀어주던 뮤비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비디오 테이프와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VCD. 당시 VCD는 삼성과 LG가 양분했었는데, 콘텐츠의 질로는 LG의 승리였다. 삼성은 출시된 비디오를 그대로 VCD에 떠서 판매하는 양아치 짓을 했다면, LG는 원본을 그대로 담고 새 자막을 입혀 출시를 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비디오 테이프보다 더 화질이 떨어지고,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적어, 최소 두 번에서 세 번 CD를 교체해 줘야 한다는 불편함이랄까? 결국 이 자리는 DVD가 대체했지만, 그래도 비디오와 DVD를 연결해주는 VCD의 고마움을 잊지는 못한다.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가 처음 산 DVD인 것 같다. <블루>를 워낙에 좋아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차세대 매체로 좋아하는 영화를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비디오 테이프와 별 다름 없는 화질과, 그 때와 똑같은 오류로 점철된 자막이 날 절망케 했지만, DVD로 인해 비로소 영화는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소장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바라보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의 기쁨이다.




   아마도 1989년? 처음 샀던 카세트 테이프다. 정말 단순히,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산 앨범이다. 이 사람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얼마 전 검색으로 알았으며, 이 앨범이 그나마 히트를 쳐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으로 안다. 지금은 테이프가 늘어져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나름 여러번 들었던 것 같다.




   처음 산 LP. 마이클 볼튼의 앨범을 처음 샀는지, 김현식 6집을 처음 샀는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이 앨범은 1991년 봄에 처음 턴테이블에 올린 기억이 있고, 김현식의 앨범은 봄과 여름 사이로 기억을 해서 이 앨범으로 골랐다. LP의 사이즈야 말로 음악의 예술성을 시각화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카세트 테이프나 CD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거대함, 그리고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 놓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려놓는, 그 모든 음악을 듣는 행위를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었던 그런 모습들.




   그리고 1993년, 처음으로 산 CD. 80분에 가까운 열 다섯 곡을 한 장에 채워 놓는 것이 바로 CD의 미덕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음악을 '진열'할 거의 마지막 저장소가 된 CD. 아마도 음악이 '목록의 나열'이 아닌, '앨범'으로써 음악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CD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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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2-08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미아리 대지극장! 저도 알아요~ㅎㅎ
작은아버지집이 그 근처에 있었어요. 저는 그 극장에서 혼자 <태양은 가득히>를 보았던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그나저나, 초등학교 3학년이 혼자 영화를 보았다니! 오우~~
마이클 볼튼의 음악도 열심히 들었던 추억이 있는데...지금은..잘 생각이 안 나네요..ㅠㅠ (이게 다 과도한 음주의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Tomek님! 추억돋는 멋진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Seong 2014-12-09 11:31   좋아요 0 | URL
대지, 명화, 화양, 홍콩영화의 성지였었죠. 이후에 UIP직배영화도 간간히 상영하고... 무엇보다도 A와B 사이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그나저나 <태양은 가득히>라면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네요. ^^

고맙습니다. :)

무무키 2020-05-3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라임! 이라니 30년 만에 처음 그 이름을 듣는 것 같네요. 보통 추억의 팝 가수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일이 있는데 데이빗 라임! 이라니요. 재미있어서 댓글 달아요.
 

     

 

   이번에 새로이 출시되는 왕가위(王家衛)감독의 <열혈남아>의 한자 표기가 잘못 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블루레이와 디브이디 공히 "旺角下問"으로 되어 있는데, 오기다. "旺角卡門"이 맞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원래 이 영화의 원제는 <몽콕하문>이다. 그런데 수입사에서 이런 이상야릇한 제목으로는 흥행이 별로일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시 유행한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분위기에 편승해 조금은 촌스러운 제목의 <열혈남아>로 개봉이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빅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기이한 사실은 왜 <旺角卡門>이 <몽콕하문>으로 불리게 됐는지다. 이 제목은 일반 홍콩영화처럼 사자성어가 아니라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旺角'은 홍콩의 번화가인 '왕자오'를 가리키고 '卡門'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의 음차어이다. 해석을 하자면 <왕자오 (거리)의 카르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왕자오'는 영어식 표기인 '몽콕'으로 '카르멘'은 그냥 한글 음차 '하문'인 국적불명의 사자성어로 둔갑했고, <열혈남아>의 원제는 <몽콕하문>으로 굳어지게 됐다.

 

   아마도 <旺角卡門>이 <旺角下問>으로 둔갑하게 된 이유에는 제작사의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그런 게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몽콕하문을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卡'자가 대개 '?'로 표기된다. 그 '?'를 확인하기 귀찮아 '하'자 중 가장 유명한 '下'를 표기하고, 그 옆에 표기된 '門'자 조차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아 '問'으로 표기한 게 아니었을까. (혹시 아래한글 자동 한자바꾸기로 돌려 첫 번째 변환 단어를 넣은 것은 아니겠지...) 기왕에 원제를 표기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표기하던가(IMDB나 Wikipedia 정도만 검색해도 정확한 제목이 나온다), 그도 아니면 검수라도 한 번 했으면 됐을 것을. 아니면 한글제목 옆에 작게 표기라도 하지, 아웃케이스, 슬리브, 디스크, 소책자 보이는 곳마다 오타를 큼직하게 박아놨으니... 이러다 <春光乍洩>은 <春光社說>로 출시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든다. 


   설마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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