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가 영화화 된 것은 여러 편이 있다. IMDB를 검색하면 Macbeth라는 타이틀로 51편의 작품이 뜰 정도니 가히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본 작품은 고작 세 편에 불과한데, 그 세 편 모두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부족함을 무릅쓰고 조금 끼적여볼까 한다.
1948년에 제작된 오손 웰즈 감독, 주연의 <맥베스(Macbeth)>는 정말 굉장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같은 해에 제작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주연의 <햄릿>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사를 뒤흔든 작품들 혹은 걸작들을 가장 쉽게 판별해내는 방법은 책에 쓰인 말이 아니라, 그 해에 나온 영화들과 비교해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은 배우들의 영화다. 영화는 가능한 배우들의 호흡을 자르지 않기 위해 롱테이크로 일관한다. 카메라는 배우들을 비출 뿐,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화면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보인다.
반면, 오손 웰즈의 <맥베스>는 영화적 문법으로 가득 차있다. 그 역시 세트에서 극을 진행하지만, 카메라는 인물을 쫓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기나긴 내레이션과 컷이 바뀌지 않는 장소의 이동 그리고 제때 떨어지는 방백과 대화는 수학적 계산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이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극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오손 웰즈는 연극을 영화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연기한 맥베스의 모습에서, 영화사의 천재였지만 할리우드의 저주로 그 자리에서 쫓겨난 불운의 인물이 겹쳐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1957년에 제작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집의 성(蜘蛛巣城)>은 『맥베스』를 일본의 전국시대로 각색한 영화다. 구로사와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획 중이었는데, 오손 웰즈의 <맥베스>를 보고 이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없다고 탄식을 하며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었다. 그 후 이 프로젝트는 구로사와 감독이 제작을 하고,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으나, 도호영화사에서 구로사와 감독이 연출할 것을 부탁해 결국 그의 필모그래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거미집의 성>은 『맥베스』와 같은 이야기지만, 세부묘사는 조금 다르다. 일례로 맥베스가 뱅쿠오를 죽이는 이유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자신의 추악한 행동이 결국엔 뱅쿠오를 빛나게 할 것이라는 공포, 그리고 자신이 차지한 왕위가 언젠가 뱅쿠오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하지만 구로사와는 조금 다르게 묘사했다. 와시즈는 영주가 되었지만, 미키의 자식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어차피 와시즈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와시즈의 부인이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와시즈는 영주의 자리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탐욕을 느끼게 되고, 그는 미키를 살해한다. 와시즈의 탐욕이 없었다면, 이후의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탐욕이 없었다면, 와시즈는 영주를 살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맥베스』의 이야기로 탐욕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을 이야기했다.
(유명한 사족이지만 다시 반복한다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화살 장면은 특수 효과가 가미되어 있지 않은 실제 상황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실제 궁수를 배치하고 활을 쏘았다.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 도시로는 활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고 싶어 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도망 다니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이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연기가 아닌, 실제 공포였던 것이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The Tragedy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축약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담아냈다. 위의 두 편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잔혹하다는 점이다. 세 마녀들이 사라지고 <맥베스>라는 타이틀이 흘러나오면 살벌한 전쟁터가 보여진다. 그리고 맥베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은 전쟁 포로들의 사형 집행장면을 무심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보는 장면이다. 코더의 영주가 죽는 장면이나, 덩컨 왕의 살해 장면, 그리고 목이 잘려 칼에 꽂힌 채 이동하는 맥베스의 시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지 않았지만, 로만 폴란스키는 그 참혹한 장면을 화면에 담아냈다.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맥베스의 지령을 받은 군인들이 들어와 아들을 죽인다. 계속 흘러나오는 비명소리. 맥더프의 아내는 밖으로 나간다. 군인들은 하녀들을 윤간하고 있고, 밖에서 놀던 아이들은 토막 난 채로 죽어있었다. 이 장면은 로만 폴란스키가 실제로 겪었던 그 사건을 연상시킨다. 1969년 8월 9일 로만 폴란스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과 그의 패거리가 폴란스키의 집에 들어와 아내 샤론 테이트와 곧 태어날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 사건 이후로 연출한 영화가 바로 <맥베스>다. 앤서니 버제스가 전쟁 때 자신의 아내가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기억을 잊기 위해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집필한 것처럼, 로만 폴란스키는 <맥베스>를 통해 그의 참혹했던 과거와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다른 사족이 하나 더 붙어있다.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덩컨 왕의 아들 도널베인이 마녀들의 예언을 듣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에서 스코틀랜드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옥은 어둡듯이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