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퍼 -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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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교과서를 채점하다

반 아이 중 한 명이 수학책에 가득 낙서를 한 게 보였다.

너무 내용이 어두워 잠시 불안한 생각을 했으나

자세히 보니 랩 가사여서 한시름 놓았다.

평소에 공부 잘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녀석인데

이 아이도 이런 갸벼운 일탈(?)을 하는구나 싶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한두 쪽이 아니라 거의 모든 쪽수에다 랩을 적어놨다.

음~ 이건 아닌데.

수학 시간이 지루했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 흠~~ 그 분(사춘기) 이 오셨군!'

 

딸래미도 초6 때 교과서 가득 그림을 그려놨던 게 떠올라

조용히 해당 아이를 따로 불러 조근조근 말했다.

랩을 좋아할 수 있고 깊이 빠질 수도 있으나

수업 시간에 이렇게 하면 곤란하다는 경고를 살포시 줬다.

왜냐하면 이걸 쓰는 동안 수업에 집중 안 했다는 거니깐.

물론 안 들어도 공부 잘하니깐 괜찮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쉬는 시간에 낙서를 했을 리는 없다.

똘똘한 아이라서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 후로 수학 교과서를 채점하지 않아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교과서에 낙서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힙합의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을까!

평소에는 얌전하고 문학소녀에다 자기 일만 파고

반에서 " 암기의 신"인데 힙합에 심취했다는 게 다소 의외였다.

힙합을 좋아해서 암기를 잘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가 시 좋아하는 주인공 도건이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이 책 <싸이퍼>를 읽어보니

전부는 아니지만 도건과 그 아이의 마음을 약간 알 듯도 하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힙합을 좋아하게 되지도

수학책 가득 랩 가사를 적어놓은 그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

힙합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정도는 알게 된 게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1꼭지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와~ 대상 탈 만하네! 이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다.

1꼭지를 읽다보면 합합의 문외한인 사람도 힙합 리듬을 저절로 타게 된다.

비트 박스도 하게 되고 말이다.

책인지 힙합인지 모를 정도로 라임이 절묘하게 맞아 진짜 신기하다.

첫부분이 이렇게 강렬할 수가.

중간과 뒷부분은 어떨까!

너무 궁금해 한달음에 내달렸다.

 

힙합 꿈나무 중2 도건과

허슬을 하며 힘겨운 가운데서도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는 가출 청소년(?) 정혁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는데 스토리도 탄탄하고 짜임새도 있다.

도건의 이야기는 라임에 맞게 힙합처럼

정혁의 이야기는 보통 책처럼 서술되는데

이것 또한 독자로서 흥미진진하다.

또 하나 도건 어머니의 파업과 가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위 세 가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축이다.

 

마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내달리는 중2 도건.

도건이처럼 고등학생 때, 꿈만 보고 내달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하여 여지껏 힙합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낀 정혁.

가족을 위해 현모양처로 살아왔지만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친구를 외면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가출한 엄마.

 

위 세 명은 독자가 걸어가야 할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 명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살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른다.

과연 난 지금, 잘 살고 있는가?

 

현재 청소년인 경우에는 도건의 삶이 가장 와 닿을 것 같고,

현재 직장을 놓고 고민하는 20대 이상한테는 정혁의 갈등이 자신의 삶과 오버랩될 듯하다.

나같은 40대한테는 도건 엄마의 삶이 공감될 거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결국 "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묻고 스스로 답하게 만들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나라가 하도 어수선하여 시간 관념도 없어진 느낌이다.

이제 2016년도 달력도 겨우 2장만 남겨 놓고 있다.

새해 첫날 세웠던 계획과 목표들

얼마나 잘 실천했는지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아직 2달이 남아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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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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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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