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진로희망을 기록하는 난이 있다.

5-6학년만 해당된다.

아이의 특기 및 흥미, 진로 희망(학생, 학부모)를 적어오도록 통신문이 나갔다.

생기부에 올리려고 아이들 통신문을 확인하면서 참 씁쓸했다.

통계를 내 보니 이렇다.

 

일단 아이의 꿈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는 6명,

아이의 희망과는 다른 진로 희망을 적은 부모는 10명.

예를 들자면 이렇다.

우리 반에 똘똘한 여자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특기는 피아노 연주이고,

따라서 진로 희망을 피아니스트라고 적은 반면

학부모는 공무원이라고 적었다.

피아니스트와 공무원, 너무 간극이 심하다.

 

아이의 진로희망과 불일치한 학부모가 적어 놓은 진로희망도 일부 직업군에 쏠려 있다.

의사, 한의사, 수의사 포함  4명

교사 4명

공무원 3명

 

10년 전에 6학년을 가르칠 때나 지금이나 학부모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새 공무원을 희망하는 학부모의 수가 늘었다.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결과를 보면서 참 씁쓸하다.

대부분 학부모 연령대가 나보다 어린데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20년 후의 의사, 교사, 공무원 이라는 직업이 과연 지금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의 특기, 흥미와 상관 없이 부모의 진로 희망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보인다.

자신의 진로 희망에 

국회의원을 적은 아이도 있고, (정치인 쓴 아이는 처음 봤다. 옛날 우리는 대통령 적은 아이가 꼭 있었는데 말이다)

역사학자를 적은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진로희망을 갖게 된 이유를 보면서도 약간의 희망을 본다.

돈 많이 벌기 위해서는 한 명도 없었고

자기가 좋아서

남을 돕고 싶어서

이렇게 적은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학군이 공무원 아파트가 있어서인지

초1인데도 "공무원" 이라고 장래 희망을 적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공무원이라고 적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는데...

공무원 이라는 낱말 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말이다.

초1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알아서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어른들이 대부분 공무원이고

어른들이 "공무원 되라"고 세뇌를 시켜서일 거라고 추측한다.

 

결과를 보면서 참 씁쓸하다.

오늘 아침 뉴스를 봐도 청년 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던데....

지금 아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확률이 엄청 높은데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고는 아직도 몇 십 년 전 생각에 머물러 있으니

아이들이 감당할 갈등이 얼마나 클까!


그나마 아이들한테서 희망을 본다.

얘들아, 너희는 너희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즐기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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