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갔더니 3.3 삼겹살 데이라고 해서 삼겹살을 세일해서 두 근을 사왔다.

요즘 같이 체력 소모가 많은 날에는 고기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한 마디로 오르락내리락 데이였다.

그야말로 정신 없는 날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사연이 이렇다.

오늘 교과 시간이 2-4교시까지 연달아 3시간 들어 있는 행운의 날이었다.

그런데 그게 결코 행운 만은 아니었다.


본교는 생활지도 교육상

담임이 교과 교실 까지 아이들을 인솔해 가서

수업이 끝나면 담임이 복도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인솔해 교실로 데려오는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무슨 유치원도 아니고 ㅠㅠ 이런  반발심이 들지만)

아이들 간의 사고가 주로 담임이 부재한 쉬는 시간, 

또는 교과 이동 시간, 점심 시간 등에

벌어지기 때문에 보험 든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걸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해 보니

아이들도 나도 참 바쁘다.

담임 입장에서 진득하게 교실에 앉아 잔무를 하면 좋은데

교과 교실까지 데리고 가서

교실로 데려와야 하니 교과 시간에 업무 처리하는 게 비효과적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오늘처럼 교과가 연달아 있으면

자기들끼리(회장 인솔 하에)

다음 교과 교실로 이동하면 되는데

굳이 교실까지 와서 다시 이동해야 하니 동선이 길어진다.

학교 방침에서 내부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하니 따르지만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자율성이 너무 결여된 게 아닌가 싶다.

저학년도 아니고 최고의 6학년인데....


물론 이동 시에 사고가 벌어지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측면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깐.


6학년은 교과 수업이 많다 보니

담임도 교과인 듯한 느낌이 든다.

애들과 차분히 수업하고, 대화하고, 래포를 형성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야기하다 보면 얼른 이동해야 하고....

6학년 담임 기피 현상으로 수업 시간이라도 줄여주자 해서 교과 수업을 많이 배정하였으나

일장일단이 있다.

교과 시간이 많다 보니 담임- 학생 과의 유대감 형성 기회가 너무 없다.

자주 봐야 친해지는데 말이다.


학년 초에는 교과서 수업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서로 이름도 익혀야 하고, 자기 소개도 해야 하고,  학생들과 학급 규칙도 정해야 하고, 여러 가지 기본 학습 습관 숙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교과 시간에 쫓기다보니 그런 활동이 제대로 잘 안 된다.

아침독서만 해도 설명할 것들이 엄청 많은데

설명하다 말고 교과실로 가야 하니 맥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끝까지 잘 끼울 수 있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3월 한 달이 일년의 학급 농사를 좌우하는데

아이들과 서로 합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안타깝다.


아이들이 어제보다는 좀 긴장도가 풀어진 것 같다.

어제는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있어

6학년이 맞자 싶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 시간 자유놀이 하는 걸 보니 이제 좀 적응이 된 듯하다.

남자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는데 꽤 잘한다.

6학년답지 않게 참 순진하다.

끝까지 가야 할 텐데.


이 아이들이 5학년일 때, 학급에서 서로 친구에게 경어를 쓰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여 우리 반도 실시해 보면 어떨까 싶어 논제에 붙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서로 경어를 쓰면 언어순화에 좋고 시비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6학년이니 담임 마음대로 결정 안 하고 너희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찬반 토론을 거쳐 민주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작년에 경어를 사용한 아이들의 생생한 소감부터 들어봤다.

아이들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선생님 안 보는 데서 반말 쓰고, 경어 같지 않은 경어로 기분 나쁘게 하고...

교사 눈에는 좋아 보이고 효과가 있는 듯 보였지만 그건 아니었던가 보다. 

3명을 뺀 나머지 아이들이 경어 쓰기를 반대하였다. 좀 놀랐다.

만약 내가 아이들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면

우리 반 역시, 선생님 앞에서만 경어를 쓰는 척하고

사각지대에서는 서로 반칙하고, 반칙을 묵인하는 꼴이 될 뻔 했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다.

만약 서로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상처 주거나 교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면

그 때는 경어를 쓰기로 하였다.


교과 3시간, 6학년 전체 생활지도 1시간. 

담임인 나는 아이들과 2시간 함께 한 날이었다.

같은 반 친구 이름 익힐 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아이들에게 아침독서할 때 사용하라고 책 읽기 관련된 명언이 담긴 책갈피를 하나씩 선물해줬다.

원래 생각은 자신이 직접 만들게 해서 난 코팅만 해서 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짬이 안나 계획을 바꿨다. 


매일 10분씩이라도 읽다보면 언젠가는 끝까지 읽게 된다.

빨리,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의미를 생각하며 정독하라고 조언해 줬다. 

"그 날 읽은 쪽수에 책갈피 끼우는 것 명심합시다.

접거나 책 날개로 덮어버리면 책이 빨리 상합니다.

졸업할 때까지 책갈피 잘 간직하길 바랍니다. "

아이들 중에 작년에 도서실에서 나눠준 책갈피를 아직 갖고 있는 아주 착한 아이가 있었다.

흐뭇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부디 그래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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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0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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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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