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이황 - 새 시대 큰 인물 47
오민석 지음, 이관수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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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나 에 이황이 나온다.

액면 그대로 이황을 아는 초3은 별로 없을 듯하다.

부연 설명으로 지폐 1000원에 그려진 할아버지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이가 몇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은 근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소재로 그 가사 속에 나온 인물로 역사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

이름은 알고 있지만  어느 시대, 무슨 일을 하였는지는 모를 거라 예상된다.

아마 다른 아이들은 교과서를 통해 이황을 처음 알게 되는 아이가 대부분일 듯 싶다.


아무튼 국어 교과서에 나온 본문 때문에 나도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알아야 하니깐.

이황에 대한 배경 지식이 나도 별로 없던 터였는데 잘 됐다 싶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내용은 성리학의 대가, 도산서원, 주리파 정도이다.

그 때도 성리학이 무엇인지

왜 이황이 주리파인지

"퇴계"라는 호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다만 중요하고 시험에 나오니 무조건 외어라 식이었다.


아이들에게 성리학이 무엇인지 부터 짚어줬다.

성리학이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중국에서 시작하고 발전한 학문인데 

조선시대 선비는 이 성리학을 최고의 학문이라 생각하고 배우고 익혔다.

이황은 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서 조선 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다.

이황과 이이가 서로 성리학의 대가란 것은 공통점이고

서로 인간의 본성을 보는 데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하여 이황은 주리파라 하고, 이이는 주기파라고 칭한다.

시대적으로 이황이 앞서 태어났고 이이가 후대에 태어났으며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있다. 

책에서는 스물을 넘긴 이이가 초로의 이황을 찾아와 삼일 밤낮을 머물고 갔다고 나와 있다.


이황은 150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황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형제가 많았던 이황은 홀어머니 밑에서 " 아비 없는 자식" 이라는 놀림을 받지 않도록 

아주 엄격하게 자랐다.

이황을 가르친 사람은 다름 아닌 작은 아버지인데 아주 엄격한 스승이었다.

6세 때 동네 노인으로부터 천자문을 깨친 후로 이황은 취미가 책 읽기와 공부하기였다.

하지만 그런 이황이 세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고, 30세가 넘어서야 관직에 오른 것은 매우 의외였다.

막연하게 이황은 일사천리로 과거 급제 하고, 관직에 올랐을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다.

이황은 평생 동안 사랑하고 의지하던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여러 번 겪었다.

아버지에 이어, 그토록 자신을 믿고 격려해주고 응원하던 부인이 둘째를 낳자마자 이승을 떠났다.

이어 평생을 의지하던 홀어머니, 함께 공부를 하던 둘째 형님, 둘째 부인 또한 아이를 낳다 죽고,

20살을 갓 넘긴 둘째 아들까지 잃은 슬픔을 겪었다. 

이런 수많은 시련과 슬픔, 아픔을 통해 더욱 더 학문의 깊이가 깊어졌지 않았을까 싶다.


이황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멸시를 당하지 않게 스스로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라는 어머님의 충고를 평생 받들었다.

한시도 몸을 흐트럼짐 없이 단정하게 하고 늘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쁜 조정보다는 

고향에서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진 양성에 힘쓰며 책 쓰는 일을 더 좋아했던 이황은

벼슬을 하라는 임금의 청을 무려 53번 거절하였다고 한다.

세상은 그가 학문을 연구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벼슬에서 스스로 물러나 조용한 곳에서 지내기를 원했던 그는 

호를 "퇴계" 라고 짓는다.

물러날 퇴, 시냇물 계

즉 물러나 지내는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70평생을 한결같이 학문을 갈고 닦는 데 바친 이황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제자한테 공부하는 자세로 앉혀달라고 하여

평소에 공부하던 그 모습 그대로 꼿꼿하게 앉아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던 이황도 세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였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였다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높은 벼슬을 하였음에도 평생 청렴결백하게 살았던 분이기도 하다.

일화로 너무 검소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줄 집이 없어

아들이 처가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자녀들에게 엄청난 부와 혜택을 물려주는 지금 사회지도층은 이 부분에서 한번 자신을 반성해야 하지 않나 싶다.

처가 살이를 하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선비가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힘 주어 말한다.

정작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돈과 지위가 아니라

이황이 평생을 통해 보여준 강직하고 올바르며 청렴결백한 순전한 마음이 아닐까!


표지에 매화가 그려진 이유는

이황이 평소에 매화를 가장 좋아하였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도 혼자 남겨질 매화를 생각하며 물을 주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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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완기 2015-11-1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우리나라 위인 중 진정으로 알고있는 어린이가 많지 않은것 같아요.
어릴 때 부터 윗 위글처럼 알고 있으면 큰 자양분이 될것입니다.

수퍼남매맘 2015-11-17 15: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암기만 했지 이번에야 이황 선생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네요.
생각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분이란 걸 깨달았어요.
아이들도 이황 선생처럼 공부를 즐겨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5-11-1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8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