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딸이 다니는 교육청 미술영재원 PPT 발표회가 있었다.
일 년을 총정리하며 선생님과 학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이다.
지난 산출물 대회 작품 설명과 개선 방향, 영재원을 마친 소감을 발표하였다.
딸에게 일 주 일 내내 PPT 만들어라 노래를 불렀건만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딸은 바로 전날, 금요일 밤에 PPT 를 만들었다.
언제쯤 미리미리 만들까!
5대1의 경쟁을 뚫고 미술 영재로 뽑힌 20명의 아이들.
지난 일 년 간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고
서로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 선후배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줄곧
'누구나 성장통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출물 대회 주제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화해서 표현하라 였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말하면서 은연 중에 아이들의 아픔이 드러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그런 흔들림과 고민과 아픔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아픔의 종류와 깊이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성장통을 겪고 있다.
누가 아이더러 " 니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어? 나만큼 힘들어? 공부가 제일 쉬워"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도 나름 힙들다.
초딩은 초딩대로, 중딩은 중딩대로, 고딩은 고딩대로 어른만큼 힘들다.
외모 때문에
성적 때문에
진로 때문에
인간 관계 때문에
기타 이유로...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크고 작은 아픔을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참 대견해 보였다.
3월에 비해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영재원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몇 가지를 짚어 주셨다.
나도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였다.
첫째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내용을 숙지, 암기하여 화면을 보지 말고 관중과 아이컨택하며 발표하라.
얼마 전 들었던 연수에서도 이걸 강조하였다.
이걸 잘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다고 한다.
19명이 발표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관중과 소통하는 아이가 있었고
시종일관 화면이나 쪽지를 바라보며 하는 아이가 있었다.
관중을 웃긴 아이도 있었다.
짧은 발표 시간에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PPT의 내용이 아니라 발표자의 언변이다.
자신감 있게 또박또박, 카리스마 있게, 가능하면 유머를 섞어서...
분명 개선해야 할 점이다.
둘째 영재원을 마친 소감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동한 자신이 해 온 작품 활동이 PPT안에 들어가 있음 더 좋겠다.
딸도 이 부분을 간과하였다. 왜? 귀찮아서겠지.
일일이 사진 찾아 작업해야 하니까.
금요일 날, 내가 너무 졸린 바람에 검토를 못 해줬다.
봤다면 사진 넣으라고 조언했을 텐데....
일년 간 작품 자료가 들어간 아이가 몇 있었다.
그 아이들의 PPT는 단연 돋보였고 내용도 알찼다.
미술 하는 아이들이니 PPT를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기억해야 할 점이다.
딸은 초등 미술영재원 보고회 때 아픈 기억이 있다.
이쁜 폰트 쓴다고 잔뜩 멋을 냈다가
막상 보고회 장소에서 글씨가 보이지 않아 완전 당황하여
발표를 대충 해 버렸다.
지금 같으면 임기응변으로 할 텐데
그때만 해도 아직 어려서....
그 일을 계기로 어디서나 잘 열리는 가장 기본 폰트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도 글씨가 깨진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도 이번 일을 통해 가장 무난한 글씨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개선하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닉 부이지치의 말대로
" 실패할 수 있어요. 넘어질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계속 도전하는 거예요"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늦잠도 못 자고, 한 번도 지각, 결석 안 하고
성실하게 다닌 딸과 나는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 줬다.
딸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줬다. 털이 복슬복슬한 옷이다.
가장 늦잠이 많고, 게으른 시기인데
토요일 일찍 일어나 영재원 다니는 게 귀찮고 성가신 일임에 틀림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일단 가면 작업에 빠져 들어 즐겁고 행복했다는 딸의 말을 듣고
너는 미술을 해야 즐겁고 행복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영재는 다른 영재와는 달리 중2가 마지막이다.
다음 주 수료식을 하면 이제 당분간 집에서 끄적이는 것을 제외하곤 미술과 잠시 이별이다.
" 이제 미술 체험할 일이 없는데 기본기 익힐 겸 미술학원 다녀볼래?" 운을 뗐지만
딸은 학원 다닐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럼 기다려야지. 자신이 보내달라고 할 때까지.
딸은 영재원 다니면서 한계를 아직 못 느꼈나 보다.
다른 아이는 자신보다 더 잘하는 아이를 보거나 스스로 한계상황에 도달하여 좌절감도 맛봤다고 하는데...
딸은 아직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어린 듯하다. 어쩌겠나! 기다려야지.
그래도 이제 영재원 수료라고 하니 서운하긴 한가 보다.
이런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 후배를 만나지 못한다는 게 말이다.
제일 좋은 건 주말에 늦잠 잘 수 있다는 것. 그건 나도 좋다. ㅎㅎㅎ
영재원에서 사귄 좋은 친구, 후배들과 계속해서 연락하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성향이 반대인 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이 생긴 것은 바로 좋은 책 덕분이다.
부모가 조급하면 아이를 망친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청소년 소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나름 힘들구나 알게 되었다.
이틀 후면 수능이다.
어제 딸이 선생님께 들었다면서 감독관으로서 지켜야 할 일을 말해주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감독관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는 복장과 행동을 해도 항의가 들어간단다.
그만큼 아이들의 신경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다.
누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나!
바로 어른이다. 부모이다. 이 사회이다.
결과를 떠나서
그동안 먼 길을 힘들게 달려온 아이들, 격려해 줬으면 좋겠다.
수고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