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를 봤다.

사도세자는 언제 들어도 눈물샘을 자극하게 만드는 슬픈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영조-사도세자-정조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세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영조가 세자를 뒤주에 가두면서 했던 대사에 잘 나타나 있어 보인다.

" 이건 가족의 문제다" 라고 말이다.

다른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영화 사도는 철저히 영조와 사도, 즉 부자간의 갈등을 다루겠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당파 싸움의 희생양으로 사도가 죽었다는 정치적인 관점 보다는

철저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부자 간의 갈등이 결국 이런 비애를 남겼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영조의 모습에서 욕심 많은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40세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기에

핏덩이 때 세자로 책봉하고

그 때부터 제왕교육을 한다.

처음에는 영특하고 영조의 기쁨이 되었던 세자였건만

대리청정을 하고나서는 실망을 더 안겨준다.

아버지의 격려는 커녕 매번 호통과 핀잔을 들은 세자는 더 의기소침해진다.

그 후,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영조는 영조대로 공부를 멀리하고 그림과 무술에 마음을 쏟는 세자가 실망스럽고

세자는 세자대로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버지가 무섭다.

" 너의 존재 자체가 역모다"라는 영조의 대사를 들으며

둘의 관계가 얼마나 어긋나 버렸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존재 자체가 역모라니...

아버지도 아들도 한 치의 양보없이

자신의 것만을 내세우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

영화 대사처럼

영조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로 자신의 오점을 남겼고

사도세자는 광인으로, 허약한 정신력을 가진 비운의 세자로 기억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들이 조금만 더 상대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자식이기도 하고 어미이기도 한 내가 보건데

일단 아버지인 영조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니었나 싶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일단 부모가 기다리고, 기대를 낮추고, 십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조는 궁궐에서 부자 사이는 자애보다는 호통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자가 자신보다 더 좋은 왕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하지만

결국 그게 세자를 옥죄는 무서운 쇠사슬이 되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격려하기보다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모습으로

아들의 숨통을 죄는 무서운 아버지이다.

아들 세자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 점점 울화병에 걸리고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하지 못한 채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세손은 참 다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신경전을 보면서

세손은 아버지 앞에서도 할아버지 앞에서도 참 현명하게 대처한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영조와 사도 세자를 보니 더 안타깝다.

왜 서로의 단점만 보려고 하였을까!

왜 좀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왜 자기 것을 요구하려고만 했을까!

왜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을까!

왜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을까!

 

영조의 모습에서 나를 되돌아본다.

혹시 나도 수퍼남매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완벽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욕심 많은 엄마는 아닐까!

아이를 위한다면서 결국 나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본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팔다리 멀쩡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자라면서 부모의 욕심은 점점 비대해진다.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것은 기본이고,

이왕이면 남보다 뛰어나고 더 나아가 최고가 되길 바란다.

영조가 아들이 최고의 왕이 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자꾸 내 안에서 그런 욕심이 꿈틀댄다.

영화 <사도>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못된 욕심을 가라앉게 하는 특효약이었다.

 

몇 해 전 외고 다니던 학생이 유서에 썼다는 말이 생각난다.

" 이제 됐어?"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 세상 부모들은 지금 이 아이가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또 일상을 살다보니 어느새 그런 감사가 사라졌다.

 

부모의 욕심이 싱그러운 아이를 점점 시들게 하고 있는지 매일 돌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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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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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1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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