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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ㅣ 새싹 인물전 11
김선희 지음, 한지선 그림 / 비룡소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569돌 맞은 한글날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가보니
"한글 큰잔치"를 하고 있어 좋은 구경을 했다.
그 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중고등 여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거였다.
딸 말을 들어보니 요즘 유행이란다.
그런 유행이라면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니 적극 찬성이다.
나머지 하나는 한글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들이었다.
대상은 자음을 이용해 동물을 꾸민 것이었는데
친근한 동물 곳곳에 자음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딸도 출품해 보라고 할 걸...
시내에 나가니 한글날 기분이 오롯이 느껴졌다.
한글날 하루 전이었다.
아이들이
" 선생님, 내일 쉬는 날이죠?" 하길래
" 쉬는 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글날인 게 중요한 거야" 라고 말해주며
60분 이상 걸려 새싹 인물전 <세종대왕>을 끝까지 다 읽어주었다.
다 읽고나니 완전 방전되어 오후에는 내내 해롱해롱했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몇 시간 동안 음독했을까!
새삼 선조들이 존경스러웠다.
보통 때는 10-20분 정도만 읽어주고 끝내는데
다음날이 한글날인데다
책을 읽다 멈출 수가 없어 끝까지 읽다보니 나중에는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읽는 내내
남자애들은 적절한 리액션을 하며 관심을 보이는데
여자애들은 내용이 어려운지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인지 딴 행동을 하는 아이가 몇 있었다.
보편적으로 여자애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자보다 늦게 생기는 듯하다.
역사는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는 듯하다.
부모가 아이들과 사극도 함께보고, 역사책도 읽어주면서 서서히 흥미를 이끌어 주는 법이 좋을 것 같다.
마침 국어 시간에 듣고 요약하기, 보고 요약하기 등 메모의 중요성과 메모 방법을 공부하고 있는 터라
들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적당히 메모하라고 하였다.
어차피 독서 일기도 써야하고 말이다.
이야기는 태종의 아내, 즉 세종의 어머니가 꾼 태몽부터 시작된다.
태양을 꿀꺽 삼킨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왕비의 품에 들어오는 꿈이었다.
열 달 뒤,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태어난다.
태종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첫째 양녕대군은 시도 잘 짓고 글도 잘 썼으나 아버지처럼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좋아했다.
둘째 효령대군은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이며 부끄러움이 많아 나랏일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셋째 충녕대군은 책을 좋아하여 한 번 본 것을 외울 정도로 총명하며 마음이 어질고 착했다.
넷째 성녕대군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알다시피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이 된 무서운 사람이다.
하여 그는 자신을 이을 다음 왕의 조건으로 어질고 착한 것을 꼽았다고 한다.
거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 바로 셋째 충녕대군이었다.
이렇게 충녕은 스무 살 남짓된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조선은 태평성대를 누리는데....
책에서는 세종과 함께 했던 신하가 여럿 등장한다.
음악가 박연,
천문학자 이순지,
육진을 완성한 김종서,
과학자 장영실,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
좋은 리더는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재능을 잘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여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 할 때
세종은 그러한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세종과 함께했던 사람을 보면 단박에 그걸 알 수 있다.
신분, 나이 등을 떠나 그 사람의 재능과 됨됨이를 보고 그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왕으로서 도와준 덕분에
태평성대를 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종이 다스렸던 30년 동안
문화, 예술, 정치, 학문, 과학 등 모든 분야가 발전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세종이 신하를 향하여 크게 노하는 일화도 실려 있다.
세종하면 온화한 모습만 떠올리곤 하였는데
불의한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일화 하나를 소개해본다.
어떤 대감이 길을 가다 노비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사정을 물어보니 권채 라는 양반이 노비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궁에 돌아온 대신은 이를 세종에게 아뢴다.
이에 세종은 권채를 당장 잡아들여 죄를 묻는다.
권채는 노비가 도망가서 법대로 했을 뿐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고 한다.
권채는 바로 집현전 학자였다.
세종이 느꼈을 배신감....
세종은 권채의 이런 행동을 보고 더 노발대발하여
양반이라 할지라도 노비를 자기 맘대로 벌 주지 못 하는 법을 만들도록 한다.
또 하나 세종이 두 아들과 한글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대신들은 세종을 반대하기에 이른다.
중국의 것을 최고로 치던 그들에게 우리나라 글을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반대는 매우 극심하였다.
이에 세종은 대신들에게 또 한 번 분노한다.
"그대들은 언제까지 중국의 눈치만 볼 것인가?
중국이 큰 나라인 것은 사실이나, 중국의 말과 우리말이 다른데
우리말을 적을 글자를 만드는 게 어째서 잘못이란 말인가!"
이 부분 읽을 때 통쾌하였다.
중화 사상에 찌들어 있던 대신들을 꾸짖는 세종의 카리스마, 멋지다.
전에 봤던 사극 <뿌리 깊은 나무>도 생각나고 말이다.
신하들의 엉청난 반대에도 세종은 한글 창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일화를 통해 세종이 온화함 속에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백성의 아픔을 공감하는 리더,
아랫 사람의 잘못을 따끔하게 야단칠 수 있는 리더,
재능을 알아보고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리더,
옳은 일이라 생각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리더,
반대 의견이라 할지라도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 리더,
항상 공부하고 노력하는 리더,
그의 리더십을 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