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쏜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은 가능한 꼭 지켜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니까.
울 반 아이 중에 가장 참하고 짝을 잘 도와주는 아이한테
무슨 아이스크림 먹고 싶냐고 살짝 물어보니
"설레임"이라고 수줍게 말하였다.
어제 퇴근하면서 미리 수퍼에서 사서 앞교실 돌봄교실 냉장고에 넣어뒀다.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은 언제 아이스크림을 먹는지 궁금해서 술렁였다.
" 음~ 나중에 5교시 더울 때쯤" 이라고 말해줬다.
요즘 우리 교실은 찜통이다.
인조 잔디에서 열기가 그대로 올라와 얼마나 더운 지 모른다.
우리 반 꾸러기 한 명한테는 조금 치사하지만 미션을 줬다.
오늘 하루종일 친구한테 나쁜 말을 안 써야 설레임을 줄 것이라고 협박(?)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설레임 때문에 하루종일 나쁜 말을 안 썼다.
아이스크림은 꾸러기도 착하게 변신시키는 힘이 있나 보다.
점심 시간 끝날 때쯤 돌봄교실에서 "설레임"을 찾아오니
교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이
" 와! 설레임이다" 하며 들썩였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놀다온 아이들은 엄청 더웠는데 시원해졌을 테다.
5교시는 창체 시간이라서 설레임 먹으면서
아침독서시간에 잠깐 소개해줬던 "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1화를 보여줬다.
너무 자기 수준에 안 맞은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 삐삐" 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서 잠깐 줄거리를 들려줬었다.
그 책을 읽어본 아이도 서넛 있었다.
약속한 대로 설레임도 먹고, 삐삐도 봤다.
아이들은 삐삐를 보면서 정말 행복해했다.
삐삐가 하는 행동마다 까르르 웃었다.
어른인 내가 봐도 웃음이 나왔다.
종을 쳐서 화면을 끄자
" 선생님~쉬는 시간까지 더 보면 안 돼요?" 애원을 한다.
" 안 돼. 즐거운 음악 해야쥐~~ 얘들아, 책은 더 재미있으니까 꼭 읽어보세요" 라고 강조했다.
명작은 그렇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삐삐가 그렇다.
내가 어릴 때 삐삐를 좋아했듯이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삐삐를 좋아하였다.
욕심 없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삐삐는 금화로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도 사 주고, 장난감도 사 준다.
" 얘들아, 너희도 삐삐 같은 친구가 우리 반에 있음 좋겠지?"
"네~~" 한다.
힘도 세고 돈도 많고 정도 많은 삐삐 같은 아이가 너희들 친구라면 얼마나 좋겠니?
교도소에서 탈출한 도둑 2명이 삐삐가 금화를 많이 가지고 있단 걸 알고 삐삐 집에 침입하는 장면까지 봤다.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해서
내일 나머지를 보여준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