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풍묘 온이"
풍뎅이를 죽인 온이라는 뜻이다.
어제 드디어 온이가 장수풍뎅이를 습격하여 생을 마감시켰다.
지난 번 장수풍뎅이는 여행 가는 동안, 먹이를 넉넉히 주지 않아 아사하였고,
이번 장수풍뎅이는 온이가 앞발로 압사시켰다.
처음에 비하면 아들은 좀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한바탕 푹풍 치듯 울었다.
온이는 풍뎅이를 죽인 댓가로 잠시잠깐 케이지에 가둬 놨다 금세 풀어줬다.
천방지축 고양이가 뭘 알아서 죽였겠냐 싶기도 하고
결국 우리 인간들이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건이지 싶기도 하고
풍뎅이 운명이 그 정도였구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처음보다는 두번 째라서 그런지 아들의 감정 정리도 조금 빨라졌다.
어제는 비가 내려서
" 엄마랑 같이 내일 장례식 해 주자" 약속하였다.
퇴근 후, 수퍼남매와 함께 장수풍뎅이 장례식을 치렀다.
자그만한 상자에 풍뎅이 시체를 넣고, 나무 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고 화단으로 갔다.
첫째 번 풍뎅이가 묻혀 있는 곳에 함께 묻으려고 흙을 파니
관이 나오고 옆으로 튕겨져 나온 풍뎅이 뿔과 다리가 보였다.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다 흙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 옆에 함께 묻어줬다.
우리만 알아볼 수 있게 자그마한 표식을 해뒀다.
집에 오니, 살풍묘 온이는 지가 한 짓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풍뎅이 있던 방문이 열려 있자 기웃거린다.
" 온이야, 이제 풍뎅이 없~거든요. 니가 앞발로 눌러 숨통을 끊어 놨잖아"
온이 뇌속에 그 방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는가보다.
그 방문만 열려 있으면 냉큼 들어가려고 한다.
" 온이야, 그러니까 친구는 잡아 먹는 것이 아니란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친구가 된다는 건 어디까지 동화 속 이야기였던가 싶다.
그래도 이 동화책을 사랑한다.
고양이와 장수풍뎅이의 친구 관계는 현실에선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그러기엔 고양이의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