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본 순간, 오래 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퍼뜩 떠올랐다.

물론 그 영화도 볼 기회를 놓쳐 지금까지 못 보고 있지만서도.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날이 과연 있을까 싶다.

소나 돼지는 사람에게 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가축이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와 돼지가 도축되고 있을텐데.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 이름도 작가의 이름 그대로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돼지를 잡는 사람이다.

늘 아버지한테서는 돼지 냄새가 난다.

교회에 가는 날만 빼고 말이다.

아버지는 신실한 세이커 신자다.

(조사를 해 보니 기독교 중의 퀘이커 교도라는 게 있는데 

퀘이커 교의 분파 중 하나가 세이커 이다.

근검 절약, 검소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무리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함석헌 씨가 세이커 교도 였단다. )

비록 글을 몰라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교리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한 마디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로버트는 다른 과목은 모두 우수한데 국어 과목은 늘 형편이 없어 낙제 직전이다. 

늘 자신을 놀리는 급우와의 갈등으로 학교를 박차고 나온 날 일생일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헤매던

로버트는 우연히 옆집 소가 송아지를 낳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게 되고,

바지를 홀라당 벗어가면서까지 송아지 출산을 도와주게 된다.

송아지를 낳고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어미소를 보고, 어미 입에서 혹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어미 입 속 깊숙하게 손을 집어넣어 그 혹을 꺼내려다

화가 난 어미소한테 물려 뼈가 다 드러나도록 물리기까지 한다. 소도 위기에 처하면 무는가보다.

물론 혹은 꺼냈다. 로버트의 팔뚝은 뼈가 드러난 채 너덜너덜해졌고.

로버트의 이런 용감한 행동이 정말 고마워 이웃은 예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세이커 신자인 아버지는 선물을 안 받으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로버트가 한 일이 장하기 때문에 허락한다.


로버트는 돼지 이름을 핑키라고 지어준다.

로버트와 아기 돼지 핑키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돼지가 그렇게 애교가 많을 줄 몰랐다.

읽으면서 <꼬마 돼지 베이브>가 자주 연상되었다.

로버트는 아기 돼지를 데리고 품평회도 나가 가장 "예절 바른 돼지상"을 받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져가는 핑키한테서 전혀 발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새끼를 낳지 못하면 죽일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수없이 많은 돼지를 잡아 죽이는 것을 목격했고,

아버지는 이 고장에서 제일 가는 도축업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핑키를 죽여서 먹어야 하는 걸까?

그게 최선인 걸까? 

로버트는 " 이제 네가 엄마와 이모를 돌보고 이 농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언 같은 아버지를 말을 듣고

뭔가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늘 돼지 냄새가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합*체>에서 난장이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체 처럼 말이다.

마지막 부분, 돼지를 갓 잡아 피가 줄줄 흐르는 아버지 손에 로버트가 뽀뽀를 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한테서 나는 냄새는 진정한 노동의 냄새라고 했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도 어릴 적 아버지가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새치가 많아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그렇잖아도 늦둥이었는데 머리마저 백발이니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 같아 보였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면, 짖궂은 남자 애들이 나더러

" 니네 할아버지 오셨다" 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 할아버지 아니라 우리 아버지거든" 앙팡지게 말하였지만 상처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왜 머리가 하얘서 남자애들한데 놀림을 당하게 하는지 밉기도 하였다.

염색이라도 좀 하지.


고등학생 때였던 듯하다.

학교가 좀 멀어 아버지가

짐 자전거 뒤에 날 태우고 힘들게 패달을 밟아 학교로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학교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그 때 아버지 등에서 질펀한 땀 냄새가 났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후론 아버지의 백발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어쩌면 로버트나 나처럼 한번쯤은 부모님을 부끄러워한 기억이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보면 로버트처럼 부모를 진정 이해하고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되는 듯하다.

깨닫는 순간은 물론 개인차가 크다. 

로버트처럼 13세에 깨닫기도 하지만 철이 늦게 드는 사람도 있다. 끝내 못 깨닫는 사람도 물론 있다. 

부모를 진정 사랑하고 존경하게 순간은 자신이 부모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난 수퍼남매 키우면서 부모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어릴 때 가졌던 부끄러움이나 앙금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아! 우리 부모가 정말 위대한 분들이었구나! 날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저절로 깨닫게 된다.

지금은 부모가 살아계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자라면서 하지 못했던 말, 

요즘 아버지를 뵐 때마다 안아주며 이 말을 하곤 한다. 

" 아버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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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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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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